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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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다.

이진숙의 책은 늘 그렇다. (500페이지!) 시류에 타협하지 않아 크고 두꺼울 뿐 아니라, 내용도 가볍지 않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진숙이라는 이름 하나에 담긴 묵직한 신뢰는. 이진숙의 책이 나올 때마다 기대를 가지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나의 핵심 지인 몇몇이다. 물론 나 역시 그 ‘신뢰’ 그룹의 일부다. 전작 『러시아 미술사』도 좋았지만, 『시대를 훔친 미술』도 너무 좋았다. 대단하다.

한 장의 그림이 나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당대의 흐름 가운데 길어올라 세계의 냄새를 담고 생각을 입힌다. 그래서 『시대를 훔친 미술』에 나오는 핵심 그림들은 그 시대의 정수를 담은 한 컷이다. 1416년 플랑드르의 랭부르 형제 「배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에서 시작하여 1993년에 독일에서 재현된 케테 콜비츠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까지, 저자는 28개의 키워드 그림을 제시하며 시대의 23순간을 밝히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책에 싣기 쉽지 않았을 수많은 근작 작품들이 인상적이었으며, 뒤쪽으로 갈수록 아는 듯 하면서 잘 몰랐던 내용들을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근현대미술로의 접근성은 쉽지 않다. <민족주의의 발흥>부터는 정말로 뿌옇던 것들에 벽돌을 놓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대한제국의 사람들’이 나왔을 때 억! 소리가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쩜 나 자신이 한국인인데 우리나라 미술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요만큼도 하지 못했다니. 나도 모르게 미술사의 중심에서 우리나라를 너무나 멀리 제외하고 있었던 것.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함께 일제의 만행과 러일전쟁을 이야기하는 매끄러운 말솜씨라니. 저자 이진숙은 정말 대단하다. 흠을 잡을 수가 없다. 고급정보를 실은 묵직한 책이라 대중이 어려워할 거라는 걸 굳이 흠으로 잡아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거기에 체코의 민족주의에 알폰스 무하를 끌어내는 솜씨란... 대박 대박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주르륵.

실은 이건 미술책이라기보다 역사책이다. 『시대를 훔친 미술』이라는 감각적인 제목도 좋지만 내가 이 책을 설명해야 한다면 ‘시대를 반영한 미술’ 혹은 ‘시대를 훔친 미술’같은 제목을 붙이리라. 역사의 면면을 키워드처럼 잡아 유연하게 흐르게 한 책이라 저자의 센스와 세계관, 다채로운 인문학 지식에 대한 칭찬이 주가 되겠지만, 이런 지식이 켜켜이 쌓인 두꺼운 책의 가치는 요즘에 있어 더욱 귀하고 대단하다. 이 책은 세 번 이상 읽어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안다. 무조건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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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반 고흐 이야기
최연욱 지음 / 소울메이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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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묻는 질문에는 늘 두 명의 화가가 후보에 올랐다. 장 프랑수아 밀레와 빈센트 반 고흐. 이전에는 두 사람이 팽팽했으나 요즘엔 고흐가 우위를 차지하는 느낌이다. ‘이발소 그림’의 대명사였던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가 화려한 색깔과 율동적인 터치의 고흐 그림에 밀리고 있으며, 몇 년 전 《러빙 빈센트》영화에 이르러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할까?’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는 그런 알쏭달쏭 가운데서 고른 책, 어떻게 (전기도 아닌데) 반 고흐 하나로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지?라는 궁금증도 포함해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는 반 고흐의 삶을 32개의 꼭지를 잡아 좁고 깊게 파들어간 책이다. 이런 책 제목과 내용이라면 32개의 꼭지를 상위 목차 없이 흐름만 고려해서 나열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잘 세분한 목차를 보고 놀랐다. 하긴, 얇은 미니북도 아닌데 목차가 너무 구분 없어도 안되는 게 맞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고흐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배워온 내게 이 책의 80% 이상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나의 반 고흐 나무는 가지가 더 붙고 이파리가 더 무성해졌다고나 할까. 특히 이 책의 진수는 뒤쪽 20%다. 뒤로 갈수록 내가 잘 몰랐던 테오의 죽음 원인, 일본인들의 반 고흐 사랑 정보가 나오는데, 우키요에에 미쳤던 반 고흐를 역으로 일본인들이 사랑해 준다는 게 참 좋았다. 사랑을 주고 나중에는 받게 되는 사랑의 순환이 내게는 너무 좋았다. 물론 고흐가 살아생전에 누군가가 고흐 그림의 가치를 알아주면 더 좋았겠지. 그러나 그리되지 못했기에 지금 받고 있는 고흐의 사랑은 더 기쁘고 애틋하다. 누군가가 (가족이었던 테오와 요한나 봉어) 고흐를 철석같이 믿어주었기에 이 그림의 가치가 묻히지 않았다는 것. 이것 역시 사랑 말고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천지 외면한 것 같은 고흐에게 사랑 하나는 남아있었다.

고흐가 사랑받은 이유가 꼭 그림 때문일까? 나는 고흐가 남긴 기록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량의 스케치와 더불어 900통이 넘는 편지는 고흐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좋아하는 누군가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을 충족한다. 그래서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아가 고흐를 사랑하게 된다. 고흐는 살아생전 사랑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받을 씨앗을 뿌려두었다. 그의 씨앗이 봄을 맞아 싹트고 꽃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봄을 맞고. 그리하여 무성한 사랑을 거두고 또 거두는 것이다. 이런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로. 누가 뭐래도 기록이 이긴다. 고흐가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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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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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쓰셨군요.”

미술책 작가 슈퍼셀럽 이소영 작가의 신작 『미술에게 말을 걸다』를 읽으면서 내 입에서 나온 감탄은 다름 아닌 칭찬 of 칭찬. 344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에 대충 들어간 내용이 없이 실한 읽을거리에 깜짝 놀랐다. Part 1과 Part 2로 구분한 간결한 목차와 함께, 미술과 친해지는 ‘일상’, ‘작가’, ‘스토리’, ‘시선’, ‘취향’ 다섯 가지 키워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책은 목차를 숙지하는 것이 필수, 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잘 숙지한다면 『미술에게 말을 걸다』가 아무리 두꺼워도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있을 것.

『미술에게 말을 걸다』의 가장 큰 장점은 쉽다는 것. 책표지를 넘기고 책장을 넘기며 읽어봐야 쉬운지 안 쉬운지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라, 그냥 책표지만 넘기면 바로 읽고 싶은 쉬운 책이다. 이건 이소영 작가의 최고 장점, 뭘 쓰고 만들어도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나로서는 아무리 바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부러운 자질이다. 하루 만에 두꺼운 책 한 권을 훌렁 읽어버릴 정도로 문체도 쉽고 설명 역시 구체적이다. 구석구석 들어간 이미지를 보면서 생각이 많았다. 이런 신식 이미지는 저작권료가 많이 들었겠다. 이 화가와 어쩌면 안면이 있을까. 고화질 이미지를 구하느라 힘들었겠다. 다양한 이미지를 구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그런 잡다한 생각들. 그 다양한 이미지 중에 내 마음에 쏙 든 그림은 「법순과 푼수의 수표」, 1910, LH 토지주택 박물관. 모댁의 하녀인 병든 김푼수를 아내로 데려가려고 보통 여자 노비의 여섯 배인 300냥을 주인에게 지불한다. 이 사랑의 거래(?)를 두 남녀의 손을 그려 기록하는데. 나 역시 동일하게 믿는다. 모든 시각 예술은 예술 작품이며, 내 마음에 와 닿는 의미를 정확히 알 때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이소영 작가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갖춘 것 같다. 접근성. 개인적으로는 짧을 수도 있는 Part 1이 가장 좋았다. 다섯 개의 키워드로 구성된 Part 2는 이미 미술 전공자인 내게 낯익어서 그럴 것이다. ‘일상’, ‘작가’, ‘스토리’, ‘시선’, ‘취향’ 키워드를 어찌나 잘 잡았던지 부럽부럽 감탄감탄. 미술에 관심 많은 고2학생이나 미대생이 아닌 대학생에게 딱 좋은 책. 또 다시 완성도 높은 좋은 책을 하나 손에 쥐어 반가웠다.

“그러므로 책을 읽다가 저와 생각이 맞닿은 부분, 반대인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고, 사색 속에서 저와 논쟁하세요. 그러면 자기만의 관점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힘이 생기고, 사유가 역동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미술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익숙해지실 겁니다. 한마디로 미술과 좀더 친해지실 수 있을 거예요.”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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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 - 쉽게 재밌게 읽는 옛 그림 길라잡이
윤철규 지음 / 이다미디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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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동네 서점에는 늘 자습서가 있었다. 자습서 중에서도 핵심개념만 정리한 서브노트형 참고서를 나는 무척 좋아했는데, 머릿속에 나무를 키우듯이 목차로 가지를 그리고 핵심 키워드를 달아 두면 공부하는 데 너무 유용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 내내 교과서 아닌 책을 읽고 만화책을 달고 살던 내가 공부를 꽤 했던 이유는 바로 이 개념나무 때문이었다.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그때의 서브노트, “아, 이 책 참 마음에 든다.”

평이한 제목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집은 책, 옛 그림에 대한 지식을 정리할 요량으로 펼친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는 ‘알찬’ 책이었다. 한국의 옛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쉬운 책’을 추천해 달라 한다면 나는 아마 이 책을 건네리라.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게 1장 《옛 그림의 용어》, 2장 《붓과 먹 쓰는 법》, 3장 《화론과 화론서》, 4장 《중국의 화파》, 5장 《조선의 화파》, 6장 《옛 그림의 종류》로 구분한 목차가 개성 없어 보였다. 그 아래로 줄줄이 이어진 미술사의 기본개념들이 너무나 보통스러웠다. 그러나 책의 진가는 늘 알맹이다. 목차가 책의 80%라고 생각하는 나마저도 이 책의 알맹이를 보고는 감탄할 수밖에. 솔직히 너무 좋아서 저자 정보를 찾아봤다. (대단한 분이시구나! 역시!)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 페이지 절반도 차지 않을 듯한 단편적인 내용은 짧지만 핵심을 담고 있고, 짝해 나온 이미지도 적절하다. 그러나 이 수많은 개념어들은 한편 이 책의 품질을 보증한다. ‘배관기’라던가 ‘홍운탁월’, ‘황자구 수법’ ‘예황식 산수’ 등은 그간 내가 전혀 몰랐던 용어였다. 두꺼운 미술 임용고사 교재를 달달달 외웠던 나에게 이건 꽤 신선한 경험이다. 미술 임용고사를 공부해봤던 사람에게 이런 책은 또 다른 의미로 소중하다.

개인적으로는 미술 임용고시 생들이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전에 읽어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건 부담스럽지 않게, 기쁘게 기분 좋게 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미술의 몸과 혼을, 그걸 설명하는 용어에 소중한 감정을 가진다는 건 미술 지식을 달달 외우고, 소화하고, 생활에서 찾아내고 적용하면서 기뻐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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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
여경 지음 / 들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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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제목을 잘 뽑을 수 있을까.”

책 을 볼 때면 이 책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첫인상을 생각한다. 『사표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은 바로 그런 ‘혹하는’ 책이다. 제목만 그렇게 당기는가 하면 그도 아닌 것이, 내용 역시 가볍지 않고 충실한 것이 책장을 넘기는 나를 만족시켰다. 좋은 제목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밀도 있는 내용 역시 그냥 나오지 않는다. 둘 중 하나는 나올 수 있어도 두 가지 다 나오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이 책은 두 가지 다 충실한 책이다. 어디 내놓기에 부족하지 않은 책.

나날이 ‘공무원’이 좋은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시대의 불안정이 커질수록 안정을 추구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는 나쁘기도 하고 한편 좋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대로 살지만, 한편 본능대로만 살고는 못 견딘다. 그래서 ‘이 좋은 직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기업으로 들어가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사람은 의외로 아주 많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자기에게 공무원이 안 맞는다는 걸 알았을까, ‘그 좋다는’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그 좋다는’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일단 세상에 나가고 나면 내 삶이 오롯이 내것이 되기 어렵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원하는 대로 살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공무원 생활을 할 때는 늘 내일이 불투명하고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내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조직이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는 사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갈수록 더욱 확고해져갔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근무하는 생활 패턴을 고수해야 할까? 각자에게 맞는 패턴대로 살 수 없을까?’ 그 의문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움을 구하면서 서서히 해소되어갔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정말 그렇게 되도록 이뤄가는 일 사이의 간극은 매우 컸다.” (P.173)

한편, 나이가 더 들면 이 우물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난 건, 뮤지컬 《모차르트》의 노래, 「황금별」이었다. 황금 별을 보고만 있으면 뭐하겠나, 이 성벽을 넘어야 나답게 살 수 있는걸. 『사표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의 저자는 마지막 기회를 가뿐히 넘은 똘똘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한편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진 사람. 말로만 나불나불 현실에 불평 많은 나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일. 열 말 할 것 없다. 결국, 용기는 행동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35KliysB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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