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 - 쉽게 재밌게 읽는 옛 그림 길라잡이
윤철규 지음 / 이다미디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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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동네 서점에는 늘 자습서가 있었다. 자습서 중에서도 핵심개념만 정리한 서브노트형 참고서를 나는 무척 좋아했는데, 머릿속에 나무를 키우듯이 목차로 가지를 그리고 핵심 키워드를 달아 두면 공부하는 데 너무 유용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 내내 교과서 아닌 책을 읽고 만화책을 달고 살던 내가 공부를 꽤 했던 이유는 바로 이 개념나무 때문이었다.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그때의 서브노트, “아, 이 책 참 마음에 든다.”

평이한 제목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집은 책, 옛 그림에 대한 지식을 정리할 요량으로 펼친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는 ‘알찬’ 책이었다. 한국의 옛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쉬운 책’을 추천해 달라 한다면 나는 아마 이 책을 건네리라.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게 1장 《옛 그림의 용어》, 2장 《붓과 먹 쓰는 법》, 3장 《화론과 화론서》, 4장 《중국의 화파》, 5장 《조선의 화파》, 6장 《옛 그림의 종류》로 구분한 목차가 개성 없어 보였다. 그 아래로 줄줄이 이어진 미술사의 기본개념들이 너무나 보통스러웠다. 그러나 책의 진가는 늘 알맹이다. 목차가 책의 80%라고 생각하는 나마저도 이 책의 알맹이를 보고는 감탄할 수밖에. 솔직히 너무 좋아서 저자 정보를 찾아봤다. (대단한 분이시구나! 역시!)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 페이지 절반도 차지 않을 듯한 단편적인 내용은 짧지만 핵심을 담고 있고, 짝해 나온 이미지도 적절하다. 그러나 이 수많은 개념어들은 한편 이 책의 품질을 보증한다. ‘배관기’라던가 ‘홍운탁월’, ‘황자구 수법’ ‘예황식 산수’ 등은 그간 내가 전혀 몰랐던 용어였다. 두꺼운 미술 임용고사 교재를 달달달 외웠던 나에게 이건 꽤 신선한 경험이다. 미술 임용고사를 공부해봤던 사람에게 이런 책은 또 다른 의미로 소중하다.

개인적으로는 미술 임용고시 생들이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전에 읽어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건 부담스럽지 않게, 기쁘게 기분 좋게 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미술의 몸과 혼을, 그걸 설명하는 용어에 소중한 감정을 가진다는 건 미술 지식을 달달 외우고, 소화하고, 생활에서 찾아내고 적용하면서 기뻐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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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
여경 지음 / 들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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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제목을 잘 뽑을 수 있을까.”

책 을 볼 때면 이 책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첫인상을 생각한다. 『사표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은 바로 그런 ‘혹하는’ 책이다. 제목만 그렇게 당기는가 하면 그도 아닌 것이, 내용 역시 가볍지 않고 충실한 것이 책장을 넘기는 나를 만족시켰다. 좋은 제목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밀도 있는 내용 역시 그냥 나오지 않는다. 둘 중 하나는 나올 수 있어도 두 가지 다 나오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이 책은 두 가지 다 충실한 책이다. 어디 내놓기에 부족하지 않은 책.

나날이 ‘공무원’이 좋은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시대의 불안정이 커질수록 안정을 추구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는 나쁘기도 하고 한편 좋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대로 살지만, 한편 본능대로만 살고는 못 견딘다. 그래서 ‘이 좋은 직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기업으로 들어가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사람은 의외로 아주 많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자기에게 공무원이 안 맞는다는 걸 알았을까, ‘그 좋다는’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그 좋다는’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일단 세상에 나가고 나면 내 삶이 오롯이 내것이 되기 어렵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원하는 대로 살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공무원 생활을 할 때는 늘 내일이 불투명하고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내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조직이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는 사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갈수록 더욱 확고해져갔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근무하는 생활 패턴을 고수해야 할까? 각자에게 맞는 패턴대로 살 수 없을까?’ 그 의문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움을 구하면서 서서히 해소되어갔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정말 그렇게 되도록 이뤄가는 일 사이의 간극은 매우 컸다.” (P.173)

한편, 나이가 더 들면 이 우물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난 건, 뮤지컬 《모차르트》의 노래, 「황금별」이었다. 황금 별을 보고만 있으면 뭐하겠나, 이 성벽을 넘어야 나답게 살 수 있는걸. 『사표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의 저자는 마지막 기회를 가뿐히 넘은 똘똘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한편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진 사람. 말로만 나불나불 현실에 불평 많은 나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일. 열 말 할 것 없다. 결국, 용기는 행동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35KliysB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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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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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학을 했다. 교사는 직접 수업을 가르치지 않고 EBS만 연결해 놓고 ‘논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들린다’ 근데, 정말 그들 말대로 좀 ‘놀았으면’ 좋겠다. EBS 서버가 멈췄다. 로그인이 안 된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서 중복 가입이 되었다. 선생님이 승인을 절대 안 해준다. (알고 보니 클래스 수강신청을 안 했다.) 화면이 클릭이 안 된다. (알고 보니 매뉴얼 pdf를 보고 클릭하고 있었다.) 결국 학생 몇 명보고는 학교에 오라고 한다.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문제다. 이 부분을 하라고 매뉴얼 캡처까지 해서 보내주지 않았냐 하면, 그냥 안 열어봤다고 한다. 단 1분 숨돌릴 틈 없이 계속 울리는 전화와 팝업 메시지에 에너지는 쭉쭉 내려간다. 뉴스에서까지 이 아수라장을 ‘콜센터’라 표현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나만 그렇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근데, 이 아수라장을 겪은 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의외의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행복하다.” 일상과는 다른 모양으로, 일상을 시작하게 되어 감사함이 들었다. 고생해도 행복했다.

미국 콜로라도 가상의 마을 홀트에서 오랫동안 철물점을 경영해 온 대드 루이스, 온몸에 암이 퍼졌다고 한다. 루이스는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이 올 때까지 편안하게 살을 헤아리도록 한다. 그런 대드 루이스를 가운데 두고, 작가는 그의 아내, 딸과 아들, 홀트 마을의 이웃의 오래된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서술한다. 켄트 하루프의 작고 얇은 책 『밤에 우리 영혼은』만 알고 있던 나는 묵직한 하드커버의 『축복』을 보고 적지 않이 당황했다. 긴 시간의 참 많은 이야기가 드라마틱 하게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덮을 때까지 감정의 고조와 희한한 사건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와 현재의 일상, 그것이 이 책의 처음과 끝이다. 그리고 이 일상이 저자가 전하고 싶은 축복이다.

대드 루이스와 그의 가족, 이웃들은 번지르르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상처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으며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알리기 어려운 비밀도 많다. 원하지 않게도 그게 알려질 때면 견디기 힘들도록 괴롭다. 대드의 50대 딸은 자기가 낳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이제는 형편없는 남자친구만 그냥 만나고 있다. 그냥 자기를 만나러 오니까 사람이 그리워서 개념 없는 남자라도 만나보는 것 같다. 아들은 동성애 성향으로 말 못 할 고민을 가지고 여장을 하는 일로 학교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한다. 이런 트러블로 인해 아버지와 등을 돌린 프랭크는 집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드가 죽어가는 걸 알았어도 프랭크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옆집 윌라와 에일린 모녀도 외롭고 쓸쓸하다. 에일린은 오래전 교사로 일할 때 유부남 교장 선생님과 벌인 사랑 말고는 변변한 따스함도 없다. 열 살 앨리스는 엄마를 잃고 갈 곳이 없어 버타 메이의 집으로 온다. 흔히 말하는 조손가족이다. 라일 목사는 홀트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아내는 바람이 나서 남편을 버렸고, 아들은 사랑의 실패로 방황하다가 자살 소동을 벌인다. 홀트를 떠나야 하는 라일 곁에는 아무도 없다. 과거 대드는 철물점 직원 클레이턴의 횡령을 발견하고 그를 해고했는데, 클레이턴은 자살을 했고 아내는 대드를 원망했다. 대드는 조건 없이 클레이턴 가족을 금전으로 지원한다. 대드뿐 아니라 각자 말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지고 그럴듯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사연이 아름답게 회복되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이런 사연을 끌어안고 하루를 견디는 게 현실 임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을 하루 이틀 더해가고 그 가운데 무언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지속하는 일이 축복임을 우리는 자꾸 잊는다.

켄트 하루프는 대화를 표현할 때 대상의 이름을 반복해서 드러내지 않고 ‘그는’ 혹은 ‘그녀는’을 주어로 사용한다. 대사에는 따옴표를 쓰지 않고 줄줄이 이어 쓴다. 읽기에는 불편하지만 보기에는 부드럽고 심심하다. 이것 역시 저자가 의도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었지만 저자의 의도라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고요한 효과가 있다. 드라마틱 한 전환 하나 없는 이 밋밋한 소설 『축복』은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삶이 가장 확실한 축복임을, 그중에 가장 빛나는 축복은 사랑임을 잊지 않고 강조한다. 그냥 사는 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죽음을 앞두고야 우리는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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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 수업 -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
윤광준 지음 / 지와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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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자 아닌 전공자’, 미술을 전공해놓고 석사나 박사 학위는 없지만, 그래도 미술로 밥 먹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건데,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말로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약간 희미한 소양 수준은 ‘전공자’ 타이틀을 달기에 늘 불안하다. 저자가 자신을 빗대 설명하는 ‘딜레탕트’ 같은 사람이 나다. “딜레탕트란 좋게 말하면 예술 애호가지만, 나쁘게 말하면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많이 알지는 못하는 사람, 어딴 분야를 깊이 탐구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심미안 수업』은 이런 내가 “나만 알고 있으면 좋겠네.” 생각으로 여러 번 읽는 책, 너무 어렵지 않게 설명한 예술을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 수준 있는 예술 교양서다.

예술 입문자를 위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꼭 미술 뿐 아니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같은 모든 영역에서 자기 영역의 매력을 알리기 위하여 달콤한 말로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책이 쏟아진다. 온라인 세계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이 예술 영역은 더 치열하다. 자기를 드러내기는 더 쉽지만 그만큼 자기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너무 넓어진 온라인 세계에서 쓰레기 정보와 알곡 정보가 뒤섞여 오해받기 더 쉽다. 세상이 좋아졌지만, 이 책의 키워드인 ‘심미안’을 갖기까지는 더 험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저자 윤광준은 ‘심미안’을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를 인간의 욕망 차원에서 해석하여 인간이 최종적으로 추구하게 될 욕망이 ‘예술의 욕망’임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최초 욕망이 예술의 욕망임을 기억한다면, 인간의 원초적이고 최종적인 욕망이 예술이며, 예술의 욕망은 생을 지탱하는 에너지이며 목적임을 이해하게 된다. 예술 제일주의가 아니라, 예술이 우리 삶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Part 1의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일 테지만, 이 책을 ‘수업’답게 하는 구성은 Part 2,3,4,5,6을 구성하는 아름다움의 과목이다.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과목은 저자가 고른 예술의 대표과목일 테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이 정도만 잘 알아도 예술을 보는 눈이 밝고 선명해질 것.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면 나는 이런 가이드라인을 덧붙이고 싶다. 일단 이 책의 첫 파트를 꼼꼼하게 읽자, 자칫 어렵게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난 후에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중에서 관심이 가는 분야를 먼저 읽자. 그 다음 두 번째 관심이 가는 분야를 읽고, 조금 어려워진다 싶으면 다시 Part1로 돌아가 예술의 의미와 힘, 심미안의 기쁨을 상기하자. 그리고 다시 먼저 관심 있는 분야를 한 번 더 읽거나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보자. 『심미안 수업』은 후루룩 읽으면서 덮어버리기엔 너무 귀한 책이다. 두고두고 펼쳐봐야 할 책이다. ‘심미안’의 힘을 돋우는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롤로그에는 저자가 자기 과거의 경험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미적인 가치를 아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삶을 통과한 경험이 『심미안 수업』을 쓰게 한 이유이며, 『심미안 수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같은 결의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심미안(審美眼)’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고풍스럽지만, 과거 우리 세대에서는 매우 익숙한 말이었다.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보다 우월한 능력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단어였다. ‘아름다움을 살피는 눈’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심미안을 갖게 되는 건 결국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적인 가치를 느끼는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무기가 된다. 그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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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100% 활용법
요한 이데마 지음, 손희경 옮김 / 아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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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유명해진 데는 그 자신의 일도 있었지만, 12살 차이 나는 ‘*십억 자산가’ 아내의 이야기가 한몫, 아니 두 몫을 했다. 그렇게 귀에 꽂힌 아내의 직업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회사의 대표이사. 사람들은 놀랐을 것이다.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는 회사가 그렇게 많은 돈을 운영한다는 걸. 이걸 다른 말로 풀자면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사람들이 미술 전시회에 어마무시하게 관심을 가지고 모인다는 의미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쌓인다는 의미다. 이제 사람들은 새로운 미술품 전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가봐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이제 미술관은 무엇보다 힙한 장소다. ‘인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사진이 잘 나오는 미술관’이라는 ‘Instagram-ready Museum’ 신조어가 생길 정도이니.

미술관 매니아로서는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미술 전시회의 즐거움을 아무리 말해도 몰랐던 예전보다 미술 전시를 이야기하며 맞장구를 칠 사람이 많아져서 좋지만, 한편 항상 한산하던 미술관이 북적거리고 시끄러우니 굉장히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미술 전시회의 관람객 여럿은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기보다 작품을 좋은 배경으로 하여 ‘인생샷’ 찍기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도 정말 좋은 현상이다. 일단 미술관에 와서 사진을 찍어야 기분좋게 작품을 볼 것이고, 또 미술관에 오고 싶어서 여러 번 오다 보면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게 될 거니까. 그리고 그게 감상의 깊이가 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실, 미술 감상은 얕은 게 아니니까. 사실 미술 감상은 어렵다면 너무 어려울 수 있는 고차원의 세계니까. 그걸 처음부터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다. 사실 나도 아직 멀었고. 미술 감상에 관한 책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미술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백이라면 그림 감상에 연관한 책은 열 정도라고 할까. 더 접근성이 좋은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미술관 100% 활용법』은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었다. 전자책의 간편함이 좋아 가능하면 전자책을 사는 나지만, 요즘 다시 종이책에 대한 갈망이 올라온다. 집중도의 차이도 문제지만, 물성의 차이도 크다. 표지나 내지의 질감을 만져볼 수는 당연히 없고, 표면의 광택이나 묵직한 두께와 무게감을 상상하려면 구글링을 열심히 해야 한다. 책의 내용을 담기에 마땅한 몸이어야 균형 있는 책일 테니. 가장 큰 낯섦은 후루룩 전자책을 넘겼는데, 의외로 금방 끝이 보였다는 것. 『미술관 100% 활용법』은 미니북이었다. 구글이미지를 검색해보니 비스듬하게 찍어 두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하나 나오는데, 하드커버였다. 작지만 무게감 있으며 권위 있는 디자인이다. 내용 역시 사실 그러하다. (전자책을 보는 사람은 이렇게 실물감을 알 수 있는 북디자인 사진을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 요한 이데마는 30개 이상의 짧은 꼭지를 통해 미술관에 가기 전 염두에 둬야 할 얼마간의 조언을 자유롭게 펼친다. 사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이 (목차 없는) 32개의 꼭지다. 이 개념만 제대로 이해해도 이 책의 알짜배기를 다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한 이데마는 틀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무엇보다 자유롭게, 자율성을 드높여서 미술관의 모든 환경을 즐기면서. 미술 감상은 정답이 없고, 작품이 자기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라고 권유한다. 경험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미술 감상이다. 책의 구성과 형식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서로서의 어려움, 대한민국의 미술관에서는 적용이 가능할까 싶은 낯선 분위기가 아쉬웠다. “그저 미술관 안에 있다고 해서, 위대한 미술 작품 앞에 서 있다고 해서, 또 그것을 감상한다고 해서 당신의 미술 경험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아무튼 그 작품을 이해하거나 그것에 감동함으로써 미술과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가져야만 한다.”

작은 책 이야기가 나왔느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이렇게 작은 책일수록 구체적인 책의 내용을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상에 포스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개인이 책을 잘 읽은 것은 좋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포스팅을 보고 책의 좋은 내용에 감탄하고, 정작 책을 안 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작은 책일수록! 온라인의 자료가 가볍다는 건 아니지만 책은 그만큼 정제된 정보이고, 책이라는 틀로 묶여 세상에 나왔기에 접근하는 데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직접 돈을 주고 책을 사는 금전적인 대가일 수도 있고,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기다려 빌려 보는 노력의 대가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책을 만든 저자와 번역한 역자와 출판사에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 가장 중요한 걸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삼천포로 빠졌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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