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방구석 문화여행자를 위한 58가지 문화 패키지 여행
한민 지음 / 부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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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버버하는 나, 아무리 생각해도 슈퍼맨이 왜 미국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를 읽는 내내 그게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다른 책 같으면 초반에 나왔음직한 ‘떡밥’이 이 책에서는 중간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진짜 재밌는 이유다, 슈퍼맨이 왜 미국으로 갔는지.


니체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초인’을 요즘은 원어 Übermensch 그대로 ‘위버멘쉬’라고 한역한다. 그러나 오래전 책에서는 한문으로 초인(超人), 어떤 책에서는 영역으로 Overman 혹은 Superman으로 번역한다. 언젠가 ‘슈퍼맨’으로 설명한 위버멘쉬를 보고 얼마나 웃음을 터트렸는지. 위버멘쉬나 초인보다 슈퍼맨은 훨씬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인간형이었다. 짱짱.


슈퍼맨이 미국으로 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차 세계대전과 이에 힘 얻은 경제 문화 성장으로 미국은 강대국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미국은 몰락하고 경제공황까지 이르러 더 이상 이전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슈퍼맨이 등장했다는 것”의 시사점은 투사(投射)다. 자존심 상한 미국인들이 이런 초능력 영웅들에게 자신들을 투사해 욕구를 해소했다는 것, 마치 자신들이 슈퍼맨이 된 듯 대리 만족을 느꼈다는 것이다.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에는 이렇듯 심리학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천 개의 문화에 따른 에피소드를 제안하며, 그 안에 숨은 심리를 분석한다. 즉, 이 책은 문화 심리학 책이다.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초반부의 오리엔탈리즘, 왜곡된 동양 문화 내용은 이미 내게 낯설지 않았다. 영화 300의 아하수에로 왕 표현, 이집트 피라미드 노예 이야기, 동양문화의 외계인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뒤틀린 문화 인식은 모두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다. 문화별로 무지개색을 구분하는 숫자가 다른 것,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대상이 꼭 아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 동양과 서양의 귀신, 한국과 일본의 귀신 성향이 다른 것 역시 문화가 지각의 해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민 교수의 ‘전공’이 드러난다. ‘신명’이 그의 주특기다. 우리나라 문화적 심리 개념 중 하나인 신명은 몰입을 특징으로 한다. 이 몰입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어떠한 상황이나 행위에 빠져드는 것”. 한국인들이 그렇게 노래방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나라에 유교를 대신할 두 사상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들어오면서 미국에 대한 거대한 의미 부여가 일어난 과정, 한의 욕망과 의지 같은 이야기들은 리듬감 있게 흘러간다.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이 좋다. 이런 게 저자의 능력이다. 연구자들이 이렇게 잘 쓰기 쉽지 않은데….


‘문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 ‘역사적 특수주의(historical particularism)’, ‘문화 유물론’, ‘주체성 자기와 대상성 자기’,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같은 심리학 용어들은 개념을 표시할 때 쓰는 파랑 플래그로 붙여두었다. 다음에 한 번 더 읽어보려고.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하기 어렵다. 기억나는 건 문화뿐, 문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투사한다, 문화는 지각의 해석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허탈함, 엉뚱한 나. 아닌 척하지만 여전히 나는, 날 구해줄 히어로를 간절히 바라왔다는 것. 니체를 열 번 읽으면 뭐 하나, 역시 나는 구제불능, 전형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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