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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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손상되거나 부정당할 때 삶의 동기를 상실한다.” 김찬호, 「1장_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3, 치욕과 폭력의 악순환)」, 『모멸감』, 문학과지성사, 2015

직장에서 사건이 빵 터졌다. 원치 않는 일이고 마음 아픈 사건이다. 머리로는 정리해도 가슴으로는 정리하지 못한다. 감정, 그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감정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쥐고 흔드는가. 살 수 없게 하는가. 가슴을 부여 쥐고 몇 번을 쓸어 보아도 이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경험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아도 그중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나 역시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이라는, 너무나 직관적이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感情)’ 김찬호의 『모멸감』은 이 감정을 세세하게 분석하는 데 1장을 할애한다. ‘수치심’과 연결된 이 감정, 치욕이 일으키는 폭력, 자본주의 하에서 이 감정이 어떻게 극에 달하는지. 돈 앞에서 감정을 굴복하는 감정 노동의 폭력까지 이 감정 하나에 주렁주렁 얽히고설킨 수많은 감정의 덩어리들을 보여주고야 이 ‘모멸감’은 정의된다.

곧이어 2장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왜 이 ‘모멸감’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지를 사회, 문화, 역사적 근거를 들어 분석한다. 신분제가 붕괴되었으나 이것이 권력과 자본으로 대체되면서 또 다른 신분을 만든 상하 관계, 집단주의하에서 일어나는 비하와 차별을 3장까지 연결 지어가며 이야기한다. 곧이어 4장과 5장에서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자존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며 약간의 제안을 한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자존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환대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환대할 것. 내게는 그것이 하늘에서 내게 준 지령(指令)처럼 보였다.

정성 들인 구조와 인간적인 문장들이 오래 남아서 한번 덮은 책을 다시 펼쳐본다.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부제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인이 쓴, 한국 사회의 모멸 현황과 감정의 근원을 파헤친 책이라는 것. 이 나라에서 모멸감은 너무나 쉽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산재한 평범한 현상이며,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다양한 현상과 근거를 들어가며 서술한 김찬호의 성실함이 참 돋보인다. 적재적소에 인용한 사회학, 자기 계발서, 시, 고전문학 등에서 발췌한 글들 역시 감동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너무나 쉽다. 게다가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런 글들은 참말이지, 닮고 싶을 뿐이다. (한숨)

책의 마지막에 첨부된 음악이 신선했다. 한 작곡가가 이 텍스트의 열 부분을 주제로 했다는 열 편의 음악을 아직 다 들어보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공감을 음악으로 읽는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이 역시 또 다른 이 책의 리뷰일 테니. 언제나 누군가의 리뷰는 나를 기쁘게 한다. 공감, 그것은 모멸감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강력한 감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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