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면 쉽게 잊지 못한다작가 역시 그렇다책을 읽다가 너무나 나다운 이야기를 읽으면 얼어붙는다. ‘그녀의 기질, ‘그녀의 에피소드, ‘그녀가 사랑한 책들 모두가 나와 같았다그래서였다 그녀의 신간을 읽어야만 했던 이유
 
나는 여간해서 놀 줄 모르는 모범생이다아침 7시 반까지 실기실에 가서 성실하게 그림을 그렸고시험 때마다 하루걸러 밤을 꼴딱꼴딱 새우며 4.0이 훌쩍 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며, 130여 명 가까이 되는 학생 중에 4등으로 교직이수를 했다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고생고생을 하긴 했지만 취업 후에는 단 한 번의 결근 없이 직장을 다녔다아무리 아픈 날에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수업에 들어가 꾸역꾸역 일정을 마치다 쓰러지기도 했다미련할 정도로 모범적으로 산다성실하게 산다이게 나다운 삶이다
 
그러나 모범적으로 살지 않아도 나다운 삶이다저자 곽아람은 모범적으로 살던 자기 삶을 잠시 스톱하고 뉴욕에서 연수를 받기로 한다어학연수를 하는 것도심각한 공부를 하는 것도박사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그저 뉴요커로서의 을 살아보기로 한다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일거기에서 그녀는 나다움을 찾아낸다. 특별히 새로운 일을 해낸 게 아니다. 그녀답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오가며그림을 공부하고그림 이야기를 하고배우고 성장하는… 이전의 그녀답고 지금의 그녀다운 일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주제는 뚜렷하게 나다움이지만 내가 이 책에서 느낀 단 하나의 감정은 새로움보다는 부러움이었다.
 소련의 한 미학자가 아는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건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했어. 책이나 음악과 달리 그림은 복사본을 소유하는 게 의미가 없잖아. 장소 특정적이라 그 도식의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림과 관람자 간의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는 거지. 어떤 그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그런 관계 때문이라는 거야.” (P.60) 뉴욕 맨하튼에 살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가며 지낼 수 있다니, 호퍼의 그림을 안팎으로 살아볼 수 있다니. 뒤러의 그림을 파고들 수 있다니. 플로린 스테트하이머의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있다니. 이건 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다. 나와 너무도 닮은 기질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범생 인생이 성실하게 놀듯 살아본 1’, 영화처럼 그림과 함께 노닐며 살았던 1년, 미국그것도 뉴욕에서 1년을 노는 듯(?) 보낼 수 있다니 부럽기 그지없다
 
나는 아직 그녀처럼 놀아볼(?)’ 생각이 없다. 여전히 아등바등하고 미래를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 덕에 사회경제적 기반을 잡지 못해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하고 싶은 것이 새로이 불타오르지 않았기 때문이 더 크다얼마 전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내가 한 대답이란 고작 프로독서러가 되는 것’ 정도였으니그마저도 며칠을 골머리를 썩어카프카처럼 밤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뭐였는지 헤아리고 헤아려 찾아낸 열망이었다지금은 다른 것보다 책 읽는 게 가장 재미있다물론 이마저도 언제나 자리를 내줄 준비를 하고 있다나도 푹 빠진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생길 수도신나게 놀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모르니. (지금으로썬 BTOB가 될 확률이 가장 크다.) 어찌되었건 저자는 대단한 사람이다. 자기 욕망을 확실히 인지하고 실제 그렇게 살아보았으니. 

가끔 기회가 되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얘들아미술쌤이 많이 특이하긴 하지그런데 말야늬들이 잘 모르는 게 있어사람들은 다 특이해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사람들은 자꾸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한 모양에 끼워맞추거든그런데 기준이 되는 사람이란 건 존재할 수 없어그건 불가능한 거야그러니까 너희들이 조금 다른 친구들을 욕하고 왕따 시키고 그러다 싸우고 그러는 거 아냐근데늬들이 나를 보고 저 선생 진짜 특이해, 근데 저러고도 꿋꿋이 잘 사네. 저 성질 가지고도 안 꿀리네. 좀 멋지네.라는 생각을 하고 나면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제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걸 좀더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늬들이 나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해. 이걸 자뻑이라고 욕해도 나는 상관없어.” 기실 나는 그리 일반적인 교사다운 데가 하나도 없는 교사다. 선배교사들은 그러지 말라고 (그러면 승진 못 한다고) 하시지만 이건 내가 타고난 기질이라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그랬고 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공감 못 받으면 어때, 제대로 일하고 월급만 받으면 된다.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부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주황색 잉크로 살포시 인쇄된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라는. 나도, 나도, 나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발이 재빨리 가닿았으면 좋겠다. 다시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자지러지게 웃고 크게 소리 지를 수 있으면 좋겠다. 눈치 보지 않고 애교 뿜뿜을 퍼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도 내 마음은 열여덟 싱싱한 자신만만한 그대로이니, 내가 바라는 어떤 모습이어도 좋겠지만, 지금 나 그대로 에너제틱하게 무어라도 할 수 있다. 요즘 이것이 내 관심이고 내 확신이다. 
“지금 무엇이어도 나는 나다.”  그저 사는 일에 충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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