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오년 시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
수능을 한 달여 앞두었던 그 날의 내 다이어리 맨 앞장엔
문구 하나가 적혀있었다.
난 고등학교 시절 내내 이 명언을 가슴에 품었고
덕분에 마음을 비운채 수능도 편히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결국 난 원하는 과에 입학을 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벅찬 설렘과 함께
스스로가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
난 복학을 미룬 채 내가 원하던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온갖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했건만 벌써 지쳐버린 내 심신은 무얼 말하는가?
화가 나고 짜증이 밀려오고 가슴이 답답하다.
거대한 현실이 날 짓누른다.
4년 전 항상 내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던 그 말은
이제 현실의 쓴 맛을 갓 본, (그것도 아주 약간,)
현실과 맞설 용기를 잃어버린(얼마나 맞서 싸웠다고?) 지금의 나를 지켜주지 못하게 된걸까.
오늘 우연히 다시 접하게 된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묵혀있던 이 말 -
찬찬히 한 글자 한 글자 되새기며 곱씹어본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 후 내가 나에게 말했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엄살이랑 투정 그만 부리고 일어나 바보야. 뭐가 두렵니?"
이천구년 지금의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정성스레 문구를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