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오병욱 지음 / 뜨인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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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나는 뭔가 내면에 꽉 차 있는 말들을 아무 곳에나 미친듯이 써대곤 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머리를 강하게 때린 한 구절 때문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곱씹게 하는 문장을 여기저기 써놓기도 했었다. 하루하루가 눈물나게 재미있고 또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힘들고.. 그리고..

젊은 날은 그런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기쁨과 슬픔이, 나뭇잎처럼 나부끼고 시냇물처럼 반짝이며 흘러가는 것. 슬프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눈물과 웃음.     - 본문 중에서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를 읽으며 폭발하듯 쏟아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의 치열함과 설렘과 또 그 시절의 많은 일들을....  

누구나 가슴속에는 낡은 책상서랍이 있고 지우개 달린 몽당연필과 잃어버린 구슬과 쓰다 만 편지, 지우지 못한 낙서, 들켜버린 일기장이 있고 망설이던 고백과 허망한 맹세,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고 크지 않은 여행가방과 돌아가고 싶지 않던 여행과 젖은 우산과 잃어버린 장갑이 있고 쓰러져 가는 눈사람과 사라진 무지개와 별똥별이 있고 허물어진 모래성, 떠내려간 종이 배, 날아간 파랑새가 있고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바람, 아물 것 같지 않던 상처,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는 나부끼는 깃발이 있고 커다란 바위가 있고 드높은 나팔소리와 아련한 북소리가 있고 아직도 터지지 않은 조그만 폭탄이 있고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녹슨 비수가 있고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한숨과 숨기지 못한 눈물과 맴도는 회상, 돌아가고 싶은 미련, 산맥 같은 그리움, 그리고 침묵..., 한 번도 입 밖으로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있다.   - 본문 중에서

가슴속에 나부끼던 깃발이 어떻게 된지도 모르겠고, 누군가를 그리워한 것도 얼마나 오래 전 일인지 모르겠고.. 쓰다 만 편지의 주인공도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내면에서 요동치던 말들이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에서 아름답게 쏟아져 나왔다. 한문장 한문장이 반짝반짝거리며 빛을 내더니 나에게 와서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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