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는 나라
양 얼처 나무.크리스틴 매튜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중국이라는 나라, 워낙에 땅도 넓기도 하지만 지형이 험난한 지역이라면 문명의 혜택(?)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곳도 있을 터이다. 그렇게 외부와는 단절된 중국 서쪽 끝 쓰촨성과 원난성이 맞닿은 곳에 '루구호'라 불리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이 책을 쓴 양 얼처 나무가 원제로 썼던 'Leaving Mother Lake'이 바로 이 호수다.  




백두산 정도의 높은 곳에 위치한 (해발 2690m) 이 호수를 중심으로(그러고보니 백두산 천지같은 곳이다), 바위 산에 흩어져 살고있는 '모쒀족'이라는 부족이 있다.
이들 부족이 독특한 이유는 20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자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모계사회라는 점이다.
그건 여자를 중심으로 가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지, 남자가 전혀 살지 않으며 3-4만명 정도되는 사람들을 여자들이 통제하고 정치를 하고 경제를 이끌어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화라는것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그 제도라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일테니, 그들에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오래된 역사가 존재 할 것이다.

이 책은 모쒀족의 딸로 태어나, 우연히 노래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생전 처음 접해보는 바깥세상의 문명에 반해 가출을 하고, 혼자 힘으로 베이징 음악학교까지 졸업한 양 얼처나무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 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책을 내고 일본과 미국에서 가수와 모델 활동까지 하고, 몇년 전엔 이혼한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에게 "당신은 당신에게 일절 도움이 안되는 사람과 결.혼.생.활.을 영위해 온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청혼까지 한 아주 이쁘고 당찬(?) 여자이다.

그렇듯 그들 모쒀족에겐 결혼이란 제도가 없다.
중국 혁명의 여파로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결혼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할머니와 이모할머니, 어머니와 이모, 외삼촌과 아들과 딸이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대를 잇고 집안을 다스리는건 여자이지만, 말을 타고 대상(隊商)을 따라 바깥세상에 나가 물물교역을 하고, 경전을 공부하여 라마승이 되고, 산에 올라가 야크를 치는 일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하는 일이다. 물물교환으로만 살아가기에 돈도 없고, 그 어떤 문명 혜택도 없고, 학교는 물론 부족의 언어만 있을 뿐 그들만의 문자도 없다.

사랑은 계절과 같아서 왔는가 하면 또 가버리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모쒀족 여자들은 평생에 걸쳐 여러 애인을 갖고, 많은 자녀를 낳기도 하며, 아이들의 아버지가 다 다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머니 집에서 자라고 모계의 성을 물려 받으며 사촌들(이모네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같이 사는 남자는 집안 여자들의 형제나 외삼촌 뿐이다.
-본문중에서-    

 

소녀가 월경을 시작하게 되면 온 동네 사람들과 '치마의식'이라는 성년식을 치르고, 비로소 여자로서 방(꽃방)을 따로 갖는 대접을 받는다.
남자는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방은 없으며, 밤이 되면 남자가 여자의 방을 찾아오고 그 남자가 마음에 들면 여자는 문을 열어준다. 어떠한 서약이나 재산 분배도 없고, 자녀 양육문제도 거론되지 않으며, 자신을 찾아온 남자가 자신만을 사랑해 주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성적인 자유와 사랑, 경제적 안정과 혈통유지,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흥미로운 점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이런 방식에서 충만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손의 보존이라는 부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비록 질투와 상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사실을 떠벌리는 것은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로 치부되기에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여자들은 하루가 되든, 한 달이 되든, 오직 사랑하는 동안만 관계를 맺을 뿐, 남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여자는 그의 가방을 문걸이에 걸어 놓는다. 그것을 본 남자는 더 이상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여자의 뜻을 알아차리고 순순히 돌아선다. 선택권은 당연히 여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럼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있어 남녀 모두 일생에 몇 번의 상대를 바꿀 수 있지만, 한번에 2명과 동시에 연인관계는 될 수 없다. 서로에게 구속되는 일이 없으므로 젊은시절엔 연인이 자주 바뀌지만, 대개 중년 이후로는 한명으로 정해지고 평생을 가기도 한다.

우리들의 상식으로 볼 때는 꽤나 난잡한 성생활인 듯 보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어쩜 이상적인 남녀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장래, 경제적인 독립, 친정과 시댁과의 관계 혹은 세상의 곱지않은 시선들 때문에,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배우자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굴레는 서로에게 또 다른 지옥일 수도 있는 결혼이란 제도가 나 역시 싫기도 한 이유이기에 모쒀족의 전통이 참으로 아름답다.  


 

저자 양 얼처나무와 그녀의 어머니 

이런 독특한 문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픈 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도로도 깔고, 학교도 생기고, 상점도 생기고, 은행도 생기고, 빈부의 차이가 생기고, 티비와 전화와 냉장고가 들어왔다.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는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그 전통만큼은 계속되어지길 은근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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