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 개요 프로이트 전집 15
프로이트 지음, 박성수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학 개요』| 박성수 (옮긴이) | 열린책들 | 2004 - 프로이트 전집 15” 中「나의 이력서」(Die Medizin der Gegenwart in Selbstdarstellung, 1925)에 대한 리뷰이다.  「나의 이력서」는 짧은 분량 탓에,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세세한 면모를 간취하긴 어렵지만, 그의 사상의 성좌를 그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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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생애는 곧 (초기) 정신분석의 역사다. 프로이트 자서전,「나의 이력서」는 그 자신이 이끌었던 정신 분석의 내적 성장과 외적 운명을 시차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신=의식’라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정신적인 것은 우선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정신분석학의 대전제는 단지 머릿속에서 지어낸 궤변에 불과하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사색을 즐겼던 데카르트 후예들의 과분한 염려와는 달리, 정신분석은 신경증을 진료하던 현장에서 얻은 구체적인 관찰과 시행착오로 성장한 학문이다. 프로이트를 충실히 만나려면, 무엇보다 신경증 치료법 전환이 정신분석 이론을 한 단계씩 성숙시켰던 매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신분석의 태동이 1885년 봄 프랑스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 샤르코가 진행했던 히스테리에 관한 실험에서 시작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거기서 프로이트는 최면 암시로 인위적인 히스테리적 마비와 수축을 만들어낼 수 있고, 여자들만의 생리적 질병으로 치부되던 히스테리가 남자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정신에 가해진 어떤 조작이 (히스테리와 동일한) 신체 이상을 만들어냈다 것은 히스테리가 정신 질환일 가능성을 추론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 후 프로이트는 전기 치료법과 최면술을 병행하다, (이후 결별하게 되는) 브로이어 박사에게 배운 일명 ‘굴뚝청소’라 불렸던 (최면을 이용한) 감정정화법을 신경증 치료에 적용하고, 그 임상결과를『히스테리 연구』로 발표한다. 아직까지는 히스테리에 대한 관찰 내용만을 서술한 데 지나지 않았고, “증상의 유지를 위해 사용된 일정량의 정동이 잘못된 길에 들어 그곳에 갇혀 있을 때 이를 정상의 길로 인도하여 발산되도록 소산하려는 것이 그의 치료적 목적”이었다. 환자를 지배하는 정동적인 환상을 ‘말로 표현하게’ 해 억압된 정신활동을 발산시키면, 증상이 호전되곤 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배후에 막연한 정동적 흥분이 아니라, “현재의 성적 갈등이든 과거의 성적 체험의 여파이든, 한결같이 성적 흥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치료 과정에서 숱하게 경험한다. 게다가 감정 정화를 위한 최면술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그는 1892년 가을부터 최면술을 ‘집중의 기술’로 대체하고,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환자의 역할을 풀어놓는 ‘자유 연상법’을 채택한다. 이를 통해 정신분석은 급속하게 성장하는데, “최면으로 인해 이제까지 가려져 있던 [정신적인] 힘들의 작용이 드러나고, 그것을 파악함으로서 이론은 보다 안전한 기반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자유연상법을 도입하면서부터 프로이트는 환자들이 의식에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저항’에 직면한다. 이를 역으로 추적해서 얻은 결론이 바로 ‘억압이론’이었다. 소위 정상인들의 정신적 갈등은 의식이 허용치 않는 본능이 패배하면서, 덩달아 에너지 집중도 중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경증에서는 본능적 충동과 의식적 저항 사이의 경합이 다른 결과로 빠지고 만다. “자아는 불쾌한 본능적 충동과 처음 충돌하게 되면 말하자면 움츠러들어, 그것이 의식에 들어와 직접 발산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이로 인해 본능적 충동은 그것의 에너지 집중량을 완전히 유지하게 된다”. 즉, 의식에 의해 억압된 본능적 충동은 단지 의식 밖으로 은폐되었을 뿐, 에너지량 자체는 그대로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아는 억압된 충동을 틀어막느라 용을 쓰다가 황폐해지고, ‘무의식화된 억압된 충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발산과 대리충족의 길을 찾으면서 신경증을 유발한다는 것. 이제 “치료의 목적은 잘못된 길에 들어선 정동의 소산이 아니라, 억압을 찾아내어 전에 거부되었던 것을 받아들이거나 폐기하도록 하는 판단 행위로 억압을 대체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자신의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토대로 한 연구 및 치료 방법을 ‘정신분석Psychoanalyse’이라 불렀다. 
 

이와 더불어,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법의 도입 이전부터 신경증이 성적 충동에 기반한다는 것을 자주 겪게 되면서, 병의 원인을 환자의 아동기까지 찾아들어가고, 유아 성욕이라는 사실에 직면한다. 유아는 성적 쾌락을 (구순기, 항문기, 남근기로 점차 나아가는) 제 자신의 신체에서 찾는다. 이러한 자가 성애의 단계 이후, 아이는 어머니에게 성적 원망을 집중시키고, 아버지를 경쟁자로 적대시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며, 거세 위협으로부터 아버지라는 이름의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에 진입한다.

유아 성욕은 ‘순정하고 순진한 유아’라는 그간의 ‘믿고 싶었던 이미지’를 뒤집어버린데 1차적으로 기여했지만, 그 보다는 성욕 개념 확장이라는 측면에 진정한 의의가 있다. 요컨대, “첫째, 성욕을 성기와 맺는 밀접한 관계에서 분리시켜, 쾌락을 목표로 하는 2차적으로나 생식에 봉사하는 보다 포괄적인 신체기능으로 보았다. 둘째, 우리의 언어사용에서 사랑이란 모호한 말로 불리는 다정하고 호의적인 모든 충동을 성충동으로 간주하였다.” 이것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핵심인 무의식화된 억압된 충동의 성격을 밝히고 그것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다. 

1900년에 출판된『꿈의 해석』은 정신분석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킨다. 이것은 예지몽이나  기껏 정신의 경련으로 치부했던 꿈이라는 현상을 근대과학 영역에 편입시킨 좁은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누구나 꾸는 꿈이 “이미 신경증적 증상과 같이 구성되어 있”고, “자아 속에서 일어난 억압된 본능적 충동과 검열하는 힘의 저항 사이의 타협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모두 (예비) 신경증을 앓고 있는 셈이다. 신경증 환자와 정상인의 차이는 기껏 “물질들의 큰 차이가 동일한 원소들의 결합 비율의 양적 변화”에 따라 다른 것과 진배없다. 『꿈의 해석』 이후에야, 정신 병리학의 보조학문에 묶여있었던 정신분석은 인간 정신구조에 대한 보편적 탐구로 확장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억압되는 것에만 머물렀던 프로이트의 지적 관심은 ‘억압하는 것’, 즉 자아 보존 본능으로 확장되고, 이것은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으로 세분되며, 더 나아가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의 반복강박에 이른다. 말년에 접어들면서 그는 정신분석을 예술 작품의 해석에 응용하기도 하고,『토템과 터부』,『문명 속의 불만』등의 저작을 통해 종교와 인류의 기원을 연구한다. 이것은 보편 이론 체계 구축을 운명으로 짊어진 모든 학문의 행로에 충실한 결과였으며, 인간에 대한 통시적 이해의 한 축을 풍부하게 하는데 기여한 것이기도 했다. 프로이트 이후에도 정신분석운동은 그의 적자와 탕자들에 의해 계속 되었고, 인간 주체는 의식 중심의 달콤한 독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심연을 마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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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재 2014-09-1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분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