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가 없어진 시대를 써 나가는 책은 날짜 대신 번호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번호는 하나씩 줄어들어 0이 되고, 0과 함께 책을 덮으면 진한 여운이 털썩, 밀려온다. 마치 책 표지의 모습인 것처럼, 소설 속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다 다시 한번 털썩, 생각이 멈춘다. 당분간은 다른 소설을 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멈춰 있는채로 있었으면 한다.재난 상황이란 설정 아래,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는 숫자 0과 함께 다시 또렷하게 떠오른다. 무지개색, 빨간색, 숯색, 회색 그리고 다시 빨간색. 부디, 우리 모두 다시 살아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