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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왕영호 지음?"
"집보다 여행(21세기북스)"이라는 책자를 집어 들고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확인한 뒤 저자의 이름을 살피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은 이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책장에 여행관련 서적을 모아놓은 칸에 찾아보니 조그만 파란 책이 눈에 뜨인다. "PHUKET(푸켓)", 저자 왕영호(찰리).
그래… 2003년 태국의 푸켓섬으로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 가이드 같으면서도 여행철학을 담고 있는 묘한 느낌의 책을 만났고 책자에 소개된 홍대 앞의 여행카페 '아쿠아'에 가보기도 했다. 그리고 왕영호 씨는 바로 이 "푸켓"이란 책의 저자이자 카페 아쿠아의 사장이었다.
이 년쯤 지나 피피섬을 포함한 동남아 일대에 밀어닥친 쓰나미 뉴스를 보며, 푸켓에서 만난 선한 눈의 사람들과, 그동네의 전문 관광정보를 제공하던 아쿠아의 사람들이 간혹 궁금해지곤 했었는데… 만날 사람은 다시금 이렇게 책으로 만나나보다.
왕영호씨가 지은 "집보다 여행(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이라는 책은 어느 멋진 나라의 도시를 3박 4일간 여행하면서 엑기스만 느끼고 오게 해주는 그런 여행서는 아니다. 대신 이 책은, 누구보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삶의 모든 것으로 삼고 지내온 저자가 여행을 통해 사색하고, 고민하고, 성찰을 얻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글을 읽어보면 저자는 삶에 필요한 많은 지식들을 여행에서 얻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얻었으며, 이제는 깨달음 이후의 후반전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수 년간 '실용서'와 '목적을 위한 글읽기'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으며 간혹 '빨리빨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혼자서 어딘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약속없는 휴일 오전 커피숍에서 읽을 책을 고민한다면 "집보다 여행"이라는 이 책은 여유롭게 느끼며 읽어볼 한 잔의 따뜻한 차가 아닐까...
책의 내용 중 "기록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장에 공감하는 내용이 있어 몇 문장을 인용하며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마무리한다...
"불필요한 정보와 기록은 더 중요한 것을 잃게 한다. 그 순간에 더 집중함으로써 행복의 밀도와 질을 높이는 것을 방해하고, 너무 잡다한 것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정말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기록할 가치가 없는 것을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정작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지혜와 통찰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중략)
눈과 두뇌의 진정한 역할은 주변의 모든 정보를 다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내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데에 있다. 기억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천재라고 부르겠지만 실제로 그는 바보나 다름 없다. 그는 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늘 과거 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자책해야 할 것이다. (중략)
현명한 여행자라면 덜 기록한다. 대신 순간순간을 더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한다. 나와 세상이 하나됨을 느낀다. 그리고 기록하지 않아도 기억될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진정 기록할 가치가 있는 감동과 지혜가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변화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