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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ㅣ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가 있다. 바로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다. 이들은 완전한(perfect) 신이기에 인성(人性) 또한 인간보다 완전한 인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보다 더 결점(인격적 결함)이 많고, (그로 인해)실수를 많이 한다. 이런 신들의 실수로 인해(아니, 인간을 향한 신들의 질투가 더 적절하겠다.) 우리 인간들은 완전한 모습에서 ‘반쪽이’를 빼앗기게 되고,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것을 되찾기 위해 일생을 소비하고 있다.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라는 이름으로 빼앗긴 ‘반쪽이’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의 근본이 이상하다. 많이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지금으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은 모습들이 그 먼 옛날, 수세기 전에 나타난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면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 하나도 나타나질 않는다. 아들이 어머니를(오이디푸스 이야기), 또는 딸이 아버지를(엘렉트라 이야기), 오누이간에, 자매간에 이뤄지는 근친상간은 기본이고, 동성애, 심지어는 인간이 동물을 통해 욕정을 느끼는 모습(미노타우로스 탄생 이야기)도 나타나며, 자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 환상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나르키소스 이야기) 등. 그 어느 것 하나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하려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12가지 사랑의 테마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전체를 살펴보면, 이 네 가지 종류의 사랑으로 나눠진다.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결말이 좋게)이루어진 사랑’. 이 사랑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마지막 '이루어진 사랑'을 제외한 모두가 비극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극단적 비극이다. 12가지 이야기 중 단 한 사례만 ‘이루어진 사랑’이다.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결말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 모두가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에는 신들의 개입이 있다.
신들은 시종일관 인간 세상에 관여하며, 오히려 인간 세상을 더욱 더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들의 관여는 이런 것이다. 예를 들면, 남신(男神)이 지상의 아름다운 여인에게 푹 빠져서 여인을 유혹하고, 사랑을 나누다가 자신의 아내인 여신(女神)에게 들켜서 그 여인을 숨기기 위해 이리저리 수습을 하다가 결국엔 그 여인을 소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그 여인은 평생을 소로 지낼 운명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올림푸스 으뜸 신인 제우스의 이야기이다. 이뿐인가? 신이 엉뚱한 상대와 사랑을 나누고 기괴한 존재를 만들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은 제우스의 아들인 헤르메스의 이야기이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해볼까? 한 남신이 역시 지상의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버지인 신이 그 아들을 보고 딴 마음을 품다가 그 사실을 아들이 알게돼 수치로 인해 자살을 한다. 아폴론의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아폴론은 미소년을 곁에 두길 좋아해 많은 실수를 잘 저지른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완전한 존재인 올림푸스의 신들. 이들은 자신들의 질투로 인간의 ‘반쪽이’를 빼앗고, 그 빼앗은 ‘반쪽이’ 마저 자신들의 소유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적잖이 파렴치하고, 비열한 존재가 바로 올림푸스의 신들이다. 이런 신들을 숭배하고, 섬기는 인간의 모습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말하지 않아도 가관이다. 프로이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 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근친상간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일들이 이야기 속에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우리의 기준으로 정상적으로 보이는 12가지 이야기 중 유일하게 이뤄진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의 사랑이야기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사실, 베르툼누스의 구애 과정을 살펴보면 이들의 사랑이야기도 그리 정상적이지는 않다.)
현재의 모습을 돌아본다. 트렌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주장하며, 버젓이 활동하면서 오히려 스타가 되는 이 시대, 커밍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며, 떳떳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 시대. 수세기 전의 신화 속 이야기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것이 과연 옳게 돌아가는 것일까?
얼마 전, 국내에 동성애자의 최초 공개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과 함께 그들은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차별적인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한국 동성애자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서약식 공개를 결심했다"고... 글쎄 이것이 언제까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그 이전에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의 성에 대한 정체성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