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 2026 5·18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시선 527
백무산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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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님은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통해 80년대 뜨겁게 타올랐던 노동운동의 현장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추구한 것은 무엇이고, 시인을 포함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의 시는 혐오와 진영논리, 인간중심의 사고가 가져 온 파괴적 결과에 대해 시인 특유의 뒤집어 보기를 통해 우리의 낡고 경직된 생각에 경종을 울린다.

 

“사람은 무엇을 하면 할수록 /왜 무엇을 할 수 없는 땅이 되어가는지”(멈추어서 할 일들)

 

시인은 인간이 착취하는 대상에 대하여 거꾸로 그 대상이 되어 말을 건다. 인간 너네가 쓰레기이고 재난이라고.(부르면 그이름으로 온다) 맹목적이고 관습화된 확신에 가득찬 인간이 얼마나 큰 증오를 몰고 오는지를.

 

스타벅스의 5.18 비하가 문제 되는 요즘에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으로나마 남으려면 소수자에 대한 조롱과 혐오에 대해 넘지 말아야 할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저 몇 마디 혐오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학살의 문턱을 넘어버리기도 하지”(문턱)

 

백무산 시인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이기적 행태를 파헤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본인과 우리가 걸어 왔던 노동 현장과 사회운동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

지금까지 싸워 온 노동현장에서 우리가 바란 것은 무었이었고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여기 서 있는 우리는 회의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지만 우리가 믿고 걸어 왔던 그 길이 최선이었고 아름다웠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가야만 했던, 갈 수밖에 없었던 / 기약하고서는 끝내 가지 못한 숱한 길들“(갈 수도 있었던 길)

 

삶은 우연과 필연이 섞여 이루어진다지만 기약하고서는 가지 못한 길은 회한으로 남았고, 가야만 했던 길과 갈 수밖에 없었던 길은 기쁨도 있었지만 좌절과 절망도 가져다주었다.

 

”다 떠나고 저문 뒤에도/ 피어날 꿈 그것 하나만 남아/ 그 쓸쓸한 길을/ 누구나 겨울꽃 하나 품고 가지 않나“(겨울꽃)

 

그토록 소중하게 품었던 희망이 시인의 가슴을 아리게 파고든다.

깃발이 넘실거리던 광장에서 사람이 하나 둘 떠나갈 때, 그 쓸쓸한 빈자리가 자신의 불구처럼 여겨져 시인은 조용히 껴안고 흐느껴 운다.(신라의 달밤) 시리고 아픈 가슴에 겨울꽃 하나를 꼭 품고서.

 

그 겨울꽃 하나의 희망은 시인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시인을 조금씩 살아주기도 한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시인이 꿈꿨던 세상을 시인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 자리를 지켜주고 살아주어 시인이 지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너로 인해 희미하게 알게 되네/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조금씩 살아주기도 한다는 걸/서툴고 어리석고 나를 모르는 나니까/어디선가 나를 불러주고 대신 살아주어/간신히 내가 나로 살아 있는지도 몰라“(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시인은 현장에 남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와 여전히 연대의 손을 놓치지 않는다.

 

”어둡던 그 시절 질척한 수렁이 아니라/태양 가득하던 짧았던 젊은 날의 파도 소리였어“

 

시인의 시선은 지난 시절의 아쉬움과 그리움을 포개어 더 너른 바다를 향한다. 지난날의 절망도 좌절도 덧대어 이전보다 더 강인한 결의로.

 

”하지만 사랑은 사랑을 모르지/...그대가 버린 것이 내가 얻는 기쁨이 되기를/....한울님은 한울림을 모르지/사랑은 사랑을 모르지“(사랑은 사랑을 모르지)“

 

시인은 너가 행하는 그 조용한 사랑이 천지사방에 한울님을 부르고, 바로 네가 그 한울림이라고 말한다. 사랑인지도 모르는 사랑을들불처럼 태우는 사랑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지만/부르지도 않는데 오는 것은 없다/....아무도 울지 않으면/ 광야는 열리지 않는다/바람도 울고 새도 울고 풀들도 울어야 한다“(닭 모가지를 비틀면)

 

시인은 다시 마음을 다잡아 길을 떠난다.

 

”허허벌판은 나의 이력서/살아 있는 것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내가 붙든 건 언제나 죽은 새였지/후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니 온통 후회뿐이지만/다만 나를 바람 앞에 세우기 위해“(바람 앞에 서기 위해)

 

1990년 노동자들이 차가운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외쳤던 노동해방과 인간해방.

시인은 또 다시 그 거친 바람 앞에 선다.

모두가 한울님인 세상을 위하여.

우리 다음에 오는 세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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