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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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은 대체적으로 시집에서 가장 유명한 시의 제목을 따서 짓는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에서도 그 시를 가장 먼저 읽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시를 읽었는데, 웬일인지 이번엔 나의 1순위가 시집의 제목을 가진 시가 아니었다.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시는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시집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이 시를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 시를 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토록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왕 엄마가 휴가를 받아서 오시는 거라면 반나절, 아니 24시간을 바랄 법도 한데,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으면 단 5분만이라도 만나면 "원이"없다고 하겠나. 


그리고 그 5분 동안 하고 싶은 것이, "엄마!" 하고 소리 내 부른다음, 딱 한 가지 억울했던 일을 말하고 엉엉 울겠다니. 도대체 어떤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일까. 


짧은 시지만 엄청난 궁금증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나였으면 이 주제로 어떤 시를 썼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시 after 시, 계속 읽다 보니 단숨에 시집을 다 읽었고, 맨 마지막에 <정호승> 시인이 쓴 발문을 읽고 비로소 <정채봉> 시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책을 읽으면서 그 글을 쓴 작가에 푹 빠지기보다, 캐릭터나 콘텐츠에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시집을 읽고 나서는, 이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썼을 작가에게 푹 빠졌고, 그가 누구인지 더 알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그가 쓴 one and only 시집이 내 손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그가 살아생전 남긴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이다. 



이 시집을 내 품에 올 수 있게 도와준 <샘터>에게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달하고 싶다.


초판 1쇄 발행: 2006년 5월 30일 

개정증보판 1쇄 인쇄 2020년 12월 8일 


초판에 이어 개정 증보판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 14년. 

누군가는 놓칠 수도 있었던 시집을 품에 안고 펴내기까지 걸린 시간, 14년. 


이 시집을 품에 안을 수 있어서 사뭇 감사함이 그득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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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느질 수다 에디션L 1
천승희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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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똥 손이다.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잘하지 못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다이어리를 꾸민다던지, 등 좋아하기만 하지 잘한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따라서 섬세한 스킬을 요구하는 바느질은 언감생심 꿈도 꿔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학교를 안 다닌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내가 한국에서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가정 시간에 빵점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테니. 


그래서 늘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처럼 나도 똥 손에서 벗어다, 금손이 되어 이것저것 척척 잘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지만, 똥 손 of 똥 손인 나는 손재주의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내가 이번 생에 손재주를 포기하면서 다짐한 게 있다. 내가 금손이 되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대리만족은 할 수 있으니 책이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련 갖지 말고, 금손러들의 작품들을 마음껏 감상하고, 우러러보자고. 



그래서 <나의 바느질 수다>의 작가, 천승희 작가님은 내 선망의 대상 중 한 사람이다. 


어쩜 그렇게 바느질을 깔끔하게, 예쁘게 잘하시는지, 자투리 천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더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바느질>이라는 스킬은 정말 사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다양해서 제일 부러운 분야 중 하나이다. 인형 옷부터 시작해서 필통, 가방, 이불 등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내"가 직접 만든 것에 대해 애정을 듬뿍 쏟는데,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것들을 매일매일 사용하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 느껴보고 싶었는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 손으로 만든 물건들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쉼 없는 내 삶의 힐링을 가져온 책이다. <나의 바느질 수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바느질을 하면서 --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 떠는 가벼운 수다처럼,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궁리 출판사>의 L 시리즈 -- Love of My Life -- 의 책들에 눈이 간다. 

"나를 더 사랑하고 아끼게 해 준 인생의 키워드를 찾아서"라는 모토를 담은 시리즈. 안 그래도 바쁘게 돌아가는 삶 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것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유독 큰 힐링을 선물해 준 책. 앞으로도 힐링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보고 싶은 책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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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재수.오은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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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을 읽었지만, 시와 만화가 함께 만나 한 책을 이룬 건 처음 보는 신세계였다.

생각만해도 낭만적인 만남. 만화가의 붓과 시인의 펜이 만나 이 같은 작품을 탄생 시켰는데,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책이다.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프롤로그' 와 마지막 시, '나의 오늘' 이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내가 매일같이 안고 사는 고민이다.  내 안에 수없이 자리 하는 다양한 문. 이 문을 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저 문을 열면 좀 더 나을까, 하는 고민을 하루에 수십번도 더 하지만 부질 없는 고민임을 안다. 결국 하나를 선택 해야한 다는것도 잘 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고민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도 갖고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이 상황, 답답하기도 하지만,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누군가와 이 무게를 나눌수 있음에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나의 오늘'에서는 "나는 내내 나일거야" 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사실 내가 하루동안 하는 선택은 무수히 많고, 그 선택 끝에는 다른 결과들이 나를 기다리고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 나는 나다. 행복한 사람도 나, 성공한 사람도 나, 실패한 사람도 나다. 나는 내내 나일테니까.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더 사랑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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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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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전시회를 최소 10번은 갔던 나. 코로나 이후로 전시못봐서 너무 우울했는데, 

이렇게 방구석에서 명화를 감상 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방구석 미술관 1권에서 외국 작가님들을 만나 그들의 예술 세계를 향유했다면, 

방구석 미술관 2권에서는 한국 작가님들을 만나 우리나라의 예술과 그들의 예술관을 깊게 탐닉해볼 수 있었다. 


너무 멋진 작품들을 내 침대 위에 누워 감상하려니 송구스러울 정도.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마무리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큐알코드를 통해 작가님들의 목소리을 들을 있었던

소름 after 소름. 거기에 저자의 친절한 큐레이션까지 더해지니

실제로 미술관에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서 버츄얼 공간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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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쟁탈 3,000년 - 전쟁과 평화의 세계사
조너선 홀스래그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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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업은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이지만,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기에, 고등학생 아이들에게는 역사 관련 과목들을, 대학생들에게는 정치외교학과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시험대비를 위해서 단기속성으로 AP나 SAT II 준비를 위주로 해주기 때문에, 장황한 역사 속 세계사, 유럽사, 미국사를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데, 역사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전쟁을 빼놓고 역사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하루는 전쟁에 대해서 모아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만났다. 

권력 쟁탈 3,000년 - 전쟁과 평화의 세계사


이 책은 내용이 무려 536페이지, 참고문헌이 70페이지, 그리고 색인이 30페이지다. 맞다. 벽돌 책이다. 서기전 1000년부터 서기 2000년까지 방대한 타임라인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세계사의 큰 그림은 거뜬히 그릴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가르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한국어로 세계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로 세계사를 학습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 이름과 지형 이름을 영어로 알고 있는데, 한국어로 설명을 할 때 영어로 이름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수업 준비를 할 때 늘 사전을 찾아서 한국어식 이름으로 노트를 적었어야 했다. 지금은 한국식 이름들도 익숙해져서 사전이 필요가 없어졌지만, 내가 강사 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결론: 전쟁의 공포가 평화를 만든다" 부분이다. 책의 시작부터 주어지는 질문, "왜 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번번이 밀려나는가?"에 대한 답변이 주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 때 학생과 함께 읽었던 논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아프리카가 성장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전쟁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아프게 하기 때문에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가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과 지도자들은 한때 전쟁을 염원했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읽고 한 때 전쟁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Just War (정의로운 전쟁론)이라는 것은 없다. 


역사에 완전한 도덕적 우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 중)




책은 역사를 사랑하시는 분들, 역사를 가르치시는 분들,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 그리고 나처럼 AP World History 준비시켜야 하는 강사님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책이 굉장히 친절해서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기초를 다진다고 생각하고 읽으셔도 도움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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