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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 은밀한 개인주의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노엘 에르프 지음, 임세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 이 책에 대한 나의 견해를 감히 표현하기 전에, <주석>과 <찾아보기>를 포함해 정확히 1127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쓴 저자 두 분과 내가 읽을 수 있게 한국으로 옮겨주신 임세은 번역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이 책을 세상에 나오게 해 준 <을유문화사>에게도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현대 예술의 거장, <에릭 로메르>의 책을 6월 초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제야 끝냈다. 벽돌 책은 웬만해선 잘 읽지 않지만 --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을 바엔 차라리 얇은 책을 여러 권 읽자는 게 나의 소견 -- 이 책만큼은 내가 꼭 읽어야지, 이겨내야지 다짐했더란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처음 받자마자 내 눈에 띈 스티커 -- 시네필의 서재에 없어서는 안 될 책 --이라는 문구가 내 가슴에 팍 하고 꽂혀버린 것이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2015년이 되던 해에, <1일 1 영화>를 보겠다고 나와의 약속을 선포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1일에는 365개의 포스팅이 넘는 리뷰가 나의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되어있었다. 하루에 영화 한 편을 꼭 사수하기 위해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미친 사람처럼 영화를 봤었다. 그때 이후로 영화는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나는 나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영화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은 그대로다. 때문에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의 삶을 집중 조명한 <은밀한 개인주의자> 덕분에 나는 영화 속 세계에 다시 한번 푹 빠질 수 있었다.
"로메르가 은밀한 곳에 있기를 좋아한 것은 자신의 충동을 불신하고 모든 과잉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극단적이거나 급진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를 싫어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치를 믿고 원칙을 확신했다." P.33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키워드는 단연 "원칙"이었다. 에릭 로메르에겐 그만의 원칙이 있었고, 그는 원칙을 사수하기 위해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과연 <그> 답게 그만의 가치관을 고집했다.
진짜 너무 멋있다.
누구나 그렇듯, 삶을 살다 보면 엄청난 유혹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에 나만의 원칙이 제대로 세워져 있다고 한들, 검은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지만 로메르 감독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갔다는 것.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라는 것. 그런 점에서 나는 그가 원칙이라는 가치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평생을 살았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로메르는 계속해서 단편 영화를 감독하고, 무엇보다 글을 썼다." P.968
-나는 로메르가 <쓰는 사람>이었다는 점이 제일 인상 깊다. 영화감독이자 쓰는 사람. 내가 선망하는 직업 두 개를 다 이룬 사람인지라 그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멋있는데 원칙을 고수하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삶 자체가 영화 같아서 더 멋있는 사람.
"<리베라시옹>에서 "당신은 영화를 왜 찍습니까?"라는 질문에 에릭 로메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예술을 할 때 분명히 찾을 수 없었던 행복을 영화를 할 때 발견합니다." P.986
-그는 자신의 행복의 원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평생을 <영화감독>이자 <쓰는 사람>으로써 끊임없이 창작의 고통을 즐기며 새로운 작품들을 세상에 꺼내놓았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이야기가 수많은 영화감독들 이야기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끝으로, 1127장의 대단한 막이 내리고, 내 마음속에 계속 맴돈 그의 한마디.
"내 삶은 항상 평범한 것이었다. 난 모든 사람에게 있을 법한 그런 생각을 했다."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