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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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남기는 기록에 실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는 역사를 기록한다.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무가 남기는 나이테를 정확히 세기만 하면 역사가 읽힌다." P.5


어렸을 적, 과학시간에서 나무의 나이를 알아보려면 나이테를 보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었다. 자연의 신비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구나 싶었고, 앞으로 내가 살면서 배우게 될 <과학>이라는 세계의 무궁무진함이 나를 설레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설렘은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나이테를 연구하는 학문인 연륜연대학을 전공한 세계적인 연륜연대 학자 발레리 트루에가 썼다. 사실 이 책을 통해서 <연륜연대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는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알아내는 과정일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은 후, 나는 깨달았다.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기후의 변천사부터 과거 제국들의 흥망성쇠까지 역사, 기후, 사회, 미술, 그리고 음악까지 폭넓은 학문을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책은 총 16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너무 길어서 하나하나 나열할 수는 없고,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5장으로 추려서 적어보겠다.

1장: 사막 한가운데서 천문학자가 나이테 연구를 시작한 이유 

2장: 나무를 베지 않고도 안전하게 나이테를 세는 방법 

9장: 나이테가 넓어지면 폭풍은 잦아들고 해적선은 날뛴다 

12장: 칭기즈 칸의 정복과 아즈텍의 멸망을 부르는 숲 

16장: 우리의 과거, 나무의 현재, 지구의 미래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16장을 끝으로 <부록>같이 추가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나는 이 뒷부분을 세세하게 살피느라 책 본문을 읽는 만큼이나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곡 목록>부터 <이 책에 나온 나무 종 목록>까지. 그리고 <추천 도서>와 <용어 설명>은 내가 책을 덮고 나서 구글링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용어 설명>은 영어 단어까지 있어서 본의 아니게 한국어 공부를 했다. Moraine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으나, 한국어로는 <빙퇴석: 빙하에 의해 운반된 암석, 모래 등의 퇴적물>이라고 부르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의 연장선으로써 의미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외진 곳에서 혹독한 날씨를 감내하며 자라 온 오래된 나무를 찾아다니는 나이테 과학자들은 종종 경외심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인적이 드문 어느 곳에서 숨 막히는 경치와 마주치곤 하는 것이다. 나이테 과학자들에게 이 일을 하면서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필드라고 답한다. 애초에 이들을 이런 연구로 끌어들인 게 필드 작업이고 또 계속해서 돌아오게 만드는 것도 그것이니까." P.54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는 멋진 풍경을 그저 "보는 것만" 좋아한다.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고통을 감내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다만, 워낙 벌레를 싫어하는지라 산에 갈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예쁜 풍경을 보고 싶으면 <영상앨범 산>이나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각종 자연/힐링 영상을 찾아보곤 하는데, 이 부분을 읽고 감히 나이테 과학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적게는 1000년, 많게는 5000년을 살아낸 나무들을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내심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영상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이 우선적인 사람인가 보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을 쓰는 지금, 인간이 바꿔 버린 기후는 우리가 인류의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정복해야 할 큰 적이 되었다. 수 세기에 걸친 과학적 발견과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앞에 놓인 기후 변화에 대한 선견지명이 생겼다. 나이테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에 과거 사회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뿐 아닐 나이테는 속삭임과 고함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거나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발견하도록 격려한다." P.301

- <인간이 바꿔 버린 기후는 우리가 인류의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정복해야 할 큰 적>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현재의 편안함을 아무렇지 않게 누릴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연과 환경이 훼손되었을까. 이제는 인간이 자연에게 돌려줄 차례다. 우리가 함부로 뺏어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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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무의 나이테>가 가진 것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린다. 나이테가 가진 이야기와 지식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깨끗한 공기와 종이 그 이상이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나무에게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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