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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평점 :
작가이자 비평가, 그리고 <미술 순례자>라고 불리는 마틴 게이퍼드의 특별한 예술 기행을 그린 을유 출판사의 <예술과 비평>은 저자가 19명의 예술가들을 그들의 도시에서 직접 만나 그들의 삶과 예술에 샅샅이 파헤쳐주는 책이다. 각 장 마다 멋진 작품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고, 저자가 본 것과 배운 것을 통해 영감까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 같이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보러 자주 갈 수 없을 때 함께할 때, 그 기쁨이 두배가 되는 책이다.
저자가 만난 19인의 세계 중에 내가 가장 궁금했던 세계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세계였다. 작품을 위해 본인의 살점을 자르고 거의 질식에 이르는 상황마저 견딘 그가 궁금했다. 왜 이렇게 자신의 몸을 훼손해가면서 까지 활동을 하는지.
그녀의 목적은 고통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몇 시간을 앉아 있으면 극도로 고통스러워요.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곧 의식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오면서 고통은 완전히 사라지죠. 전혀 아프지 않아요. 오히려 고통이 사라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죠. 마음에 달린 일이에요. 고통은 문과 같고, 그 바깥에는 놀라운 자유가 있어요." P.62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익숙해지기 위해 고통을 선택했다는 말에서 힘이 넘어선 경외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용기에 감탄에 감탄을 더한다. 저런 인사이트가 생기기까지 얼마만큼의 고통과 경험을 쌓아 올렸을까.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의 말을 곱씹고 삼키고 체화할 상황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큰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나 내가 감히 넘지 못할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을 때와 같은 상황 말이다. 그때마다 되뇔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린 일이고, 고통이라는 큰 산을 한번 넘어서면 그 바깥에는 자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버텨내라고. 진정한 해방을 맛보기 위해 부딪히고 또 부딪혀보자며 나 자신을 다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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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세계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도 있었지만, 저자의 말 역시 깊이와 힘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가 써 내려간 글 중에서 단연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대목이다:
"물론 예술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려면 거의 항상 돌아다녀야 한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P.14
직접 경험해본 자 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라며 그의 멋짐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 책은 특이하게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작가들이 거주하는 곳의 지도를 보여주는데, 그 지도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뿐이다. 예술 작가들은 <뻔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 혹은 그들이 만나자고 했던 장소를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넘고 물 건너 <작가들의 장소>를 찾아내고, 그들을 기꺼이 인터뷰하고 말겠다는 저자의 불굴의 의지를 존경한다.
나는 언제쯤 나의 분야에서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최고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떤 경지에 올라야 아무렇지 않게 풍요로운 경험은 항상 돌아다니는 것이 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도 책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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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읽어본 미술 책 중 작품과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가장 세세하게 표현한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무래도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기 때문도 있고, 또 저자 본인이 작가이자 비평가이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과 깊이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영감이 둥둥 떠다녔다. 작품을 직접 만든 작가들의 말에서 영감 한 보따리,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한 저자의 말에서 영감 한 보따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영감인 내가 작품을 보고 나만의 해석을 덧붙여서 만든 나만의 영감 한 보따리. 이렇게 세 보따리의 영감을 얻고 나니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