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밤, 어제의 달 - 언젠가의 그 밤을 만나는 24개의 이야기
가쿠타 미쓰요 지음, 김현화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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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따라 흥미롭게 생각되는 글들은 <하나의 토픽> 혹은 <작은 물건>에 대한 책들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작은 것을 가지고 백 페이지가 거뜬히 넘는 책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헤엄친다. 질문이 질문을 낳는 와중에 영감이 떠오르면, 적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생겨나 내 <영감 노트>에 내 생각을 끄적이다가 다시 독서하다가를 반복하는 재밌는 루틴이 생겼다. 


더 재밌는 건, 대체적으로 그런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하나같이 끝내주는 관찰력을 가지고 있고, 이 곳 저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이 탄생하고, 그런 글들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오늘 읽은 책, <천 개의 밤, 어제의 달> 역시 작가가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마주한 24개의 밤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네팔의 밤, 일본의 밤, 이집트의 밤, 이런 식으로 각 나라에서 마주한 다른 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당시의 상황, 누구와 있었고 어떤 향기가 났는지까지 서술하는 장면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에게도 <밤>에 대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작가 역시 어렸을 적에 <밤>을 무서워했다는 점이 나와 닮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감정선이 돋보이는 부분들에 유독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나보다 더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고, 덕분에 나는 가보지 못한 곳의 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이 책에 실은 24개의 밤 중, 내가 경험해보고 싶으면서도 두려움이 앞서는, 두 개의 감정이 실랑이를 벌이게끔 만든 <밤>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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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의 민낯을 만난 밤 


밤은 검정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잿빛 속에 허허벌판만이 펼쳐져 있었다.
등 뒤에는 게르가 있지만,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고 인기척도 없다.
지구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외롭지는 않았다. 굉장한 기분이 들었다. 밤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 생물과 마주한 채 나는 홀로 서 있었다.
P.29


-몽골에서 보낸 밤을 작가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밤이 사뭇 궁금해졌다. 어떤 느낌이었길래 밤이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느껴졌을까. 지구에 홀로 남겨진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예전에 찜질방에 갔을 때 캡슐 안에 들어가 마사지를 받는 체험을 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일까? 다낭 호텔 수영장에서 탔던 긴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올 때 느꼈던 찰나의 고독함 같은 느낌일까? 

이상하다. 지구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은 소감이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니.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 이름이 <밴타블랙>이라고 기사에서 읽었던 것 같다. 

내 눈앞에 밴타블랙이 펼쳐진 느낌이었을까? 정말 단 한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것이 야외라니. 나 같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울 것 같은데, 그 감정, 나도 느껴보고 싶다. 


(이 구절을 보고 작가의 필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2.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없이 한가로웠던 나의 그 여행도 앞으로 절대 반복할 수 없으며, 두 번 다시 똑같은 곳에 갈 수도 없다는 것을.
P.148


-내가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너무 똑같아서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던 구절. 

여행이라는 건 늘 여행 준비를 할 때, 짐을 쌀 때, 그리고 공항으로 갈 때가 가장 설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여행에 갈 때마다 늘 거치는 루틴이기 때문에 설레는 것 같다. 여행을 하는 내내 시간이 가는 게 아깝고, 내가 왔던 곳에 다시는 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 그 장소는 거기 그대로 있겠지만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때의 내가 아닐 거라 생각하니 -- 아쉬움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 


그래서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아쉬움이 공존하게 되는 것 같다. 

두 번 다시 똑같은 곳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로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뭐, 그렇게 생각하면 내 삶에서의 모든 시간이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니.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간마저도 과거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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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밤>이라는 시간이 <낮>이라는 시간보다 더 좋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보낸 24개의 밤을 훔쳐보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을 테니. 


<낮>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각오하고 읽으시길.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밤>이 더 좋아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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