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에서도 상하를 따져 행동한다. 반면에 중국에서 아랫사람은 오로지 공적인 일에만 윗사람에게 복종한다. 이러한 예는 중국인 왕효령이 쓴 <<한국 리포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작년에 중국에서 공무원 연수단이 경희대에 왔을 때 지도교수님과 연수단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성장(성은 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급인 사람이 경리한테 라이터를 달라고 했는데 경리가 자기 라이터를 상사한테 던지는 장면을 보고 우리 교수님은 너무도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중국이다. 직장 내의 위치 때문에 생기는 서열이기 때문에 일을 할 때에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종할뿐, 일을 떠나서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고있다. 왕효령, <<한국 리포트>>(가람기획, 2003) 208쪽

한국인 교수가 크게 놀란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라이터를 던져주는 중국인의 행동을 대단한 무례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히 긋지 않는 까닭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무조건 최대한의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윗사람을 잘 섬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라이터를 공손히 가져다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불까지 붙여 주려고 한다. 반면에 중국인은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까닭에 아랫사람은 공적인 일에 한해서만 윗사람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아랫사람이 사적인 일에 충성을 바친다면 그것은 비굴한 행동이다. 이처럼 동일한 사태를 두고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

군에서는 대대급 이상의 부대장에게 전용차량과 운전병을 지급한다. 부대장은 차량과 운전병을 공적 업무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만약 부대장이 술을 좋아하여 밤늦도록 술집을 순회하는 경우에 운전병은 계속 부대장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에 대한 초보적인 구분조차 하지 않는 까닭에 부대장과 운전병은 그러한 사태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비록 운전병이 자신의 처지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엄청난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는 한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오늘날 한국인은 유사신분관계로 묶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아랫사람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노비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이는 일이 많다.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아랫사람은 일과시간에 공노비의 역할을, 일과시간을 넘어서는 사노비의 역할을 아울러 수행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니 한국인이 민주공화국의 국민 자격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왕조시대의 노비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간다는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 사회의 곳곳에는 조선시대 노비보다도 못한 처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그렇지만 유사신분관계에 젖어 있는 까닭에 이것을 깨닫는 일조차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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