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을 접하고 곧바로 찾아간 지인의 상가에서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급작스런 부친상으로 황망해하는 아들과 딸들을, 친척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꾸짖고 있었다. "상주가 복장이 그게 뭐냐"는 것이었다. 캐주얼 차림의 맏아들이 응대를 했다. 장례업체에서 준비 중이니 곧 갈아입겠다는 해명이었다. 그래도 남자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양복이라도 입어야지, 등산 가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냐."
대단한 참견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달려왔다가 망연자실 슬픔에 빠진 자식들에게 정장을 챙겨 입을 경황이나 있었을까?
참견 없이 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명절 때마다 절감한다. 자기 시댁에는 들르기만 하고 나타나 온갖 참견을 해대는 시누이가 있고, 합격이며 취직, 월급, 결혼처럼 아픈 곳만 꾹꾹 찌르며 참견해야 직성이 풀리는 친척도 있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 게 당연한데도, 자기 기준 혹은 자기도 불가능한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대며 참견을 한다. 심지어 친구나 후배가 사귀는 이가 마음에 안 든다며 헤어지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