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프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살아 있는 게 더 끔찍할지 모를 새하얀 스탁필드의 겨울은 이선 프롬의 발목을 족쇄처럼 옭아맨다. 가난한 집안은 그가 꿈꾸던 세상으로의 도약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짓누르기에 충분했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로 이어지는 병간호로 인해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죽느니만 못한 삶이 된다.

 

이선은 어머니의 병간호를 맡던 사촌 지나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떠날 기미를 보이자 스탁필드에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휩싸여 지나에게 결혼을 제안했다. 충동적인 제안은 평생을 그를 옥죌 족쇄가 된다. 사랑 없는 결혼. 이선은 이내 곧 지나에게 냉담해지고 지나는 병치레를 하며 '투덜'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숨 막히는 현실은 이선으로 하여금 맷과의 새로운 삶과 자유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욕심으로 지나의 발목을 잡아 스탁필드에 가둬두고 짐짝 취급하는 이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의 투덜댐이나 다름없었다. 꺼져가는 자신을 향한 눈빛이 조카 매티를 향해 반짝이는 걸 보며 지나는 어떤 심정을 느꼈을까. 맷이 지나의 그릇을 깨고 이선이 맷의 행동을 변호해 주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에 신음하는 이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스탁필드에 남기로 결심했던 지나의 마음이 곧 그 그릇과도 다름없어 보였기에. 스탁필드의 사람들은 이선 프롬이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 을 난 거 같다며 그의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운명을 동정하나 나로서는 청교도적 사회상 속 가난과 은근한 가부장적 환경에 짓눌린 탓에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속병이 난 지나가 가엾기 짝이 없었다.

 

가난과 운명에 짓눌려 이상을 좇지 못한 한 남자의 기구한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들 하나, 그에 의해 발목이 끊어진 또 다른 삶에 더 눈길이 갔던 이야기. 운명은 가혹했고, 그들은 결코 그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어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내면의 울림을 외재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면서 세상과 개인을 매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소설 <언어의 무게> 주인공 레이랜드는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을 문학 작품과의 분투 속에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 더 나아가 언어와 삶과의 연관에 관해 아주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영향 아래 문학과 언어는 그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고 더 나아가 생계 수단이 되었다. 지적이고 진보적인 출판사 딸 리비아와 사랑에 빠진 그는 리비아가 활짝 열어준 세상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출판사를 물려받은 아내 리비아는 카리스마 있고 연대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리비아와 레이랜드 슬하의 딸과 아들 또한 각각 의사와 법조인인 엘리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엘리트 집단의 언어를 통한 특권의식화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이는 주인공 레이랜드에게 오진을 내리고도 사과하지 않는 의사의 오만함, 안락사 문제를 둘러싼 작가의 중심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작품은 단어의 음성학적 차이에 따른 다른 느낌 표현의 차원을 넘어, 언어가 한 사람의 영혼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으로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다루고 있다. 특히 러시아라는 제국의 압제 하에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인물의 사연과 그가 모국어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썼던 부분이 굉장히 뭉클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안락사 문제를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루는데 죽기 직전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이의 죽음을 조력한 자에게 '처벌을 내린다' 라는 게 합당한가에 관해 작가가 굉장히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레이랜드는 오진으로 인해 아내가 물려준 출판사를 잃었지만, 이는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을 알아야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언어와 삶의 관계를 통찰한 주인공이 이제 스스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창작 행위를 하게 되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임에 분명하다.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한 사람에게는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생애 소중한 인연과 기억을 놓지 않겠다는 투쟁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레이랜드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스, 토크하다 - 팩트 뉴스를 넘어 토크 뉴스의 시대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85
엄기영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는 왜 팩트fact 가 아닌 의견opinion 을 요구하는가. <뉴스, 토크하다> 는 늘어가는 '토크 뉴스' 포맷이라는 현상 분석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설명한 책이다. 본 책은 현상 분석 이후 크게 시청자 입장에서 토크 뉴스를 좋아하는 이유와 방송국 입장에서 토크 뉴스를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방송국 입장에서의 이유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 등에 비해 비용은 많이 들지 않으면서 시청률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궁금했던 부분은 시청자들의 입장이었는데 여태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지점을 언어화해주어서 명쾌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한 <팩트> 를 원하지 않는다. 이는 평균의 함정처럼 팩트의 함정 또한 존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객관성이란 진실성, 관련성, 균형성, 중립성을 담보로 하나, 인간의 인지편향에 따라 혹은 이해 관계에 따라 객관적 보도라는 건 신화myth 에 불과하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어차피 편향된 정보를 접하게 될 거라면 내 입맛에 맞게 팩트를 여과한 <의견> 을 원하게 된다.

 

사람들은 '객관적' 이라는 뉴스 보도를 보고도 해소되지 않아 생겼던 의구심과 의아함을 긁어주는 이들을 찾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지지하니, 곧바로 정치에도 반영이 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니 정치 효능감이 생긴다. 물론 이는 장점만 가지고 있진 않다. 정체성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히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뉴스만 찾게 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타자화시킨다.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일종의 재미를 찾게 되고 양당 체제라는 환경 속에서 내 편이 아닌 이들은 밟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지는 곧 경쟁이 될 것이다. 더불어 듣고 싶은 것만 듣게 하는 확증편향은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청자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는 앵커와 패널의 <전문성> 이 담보되어야 한다. '사실' 만 전달하는 매개자로서는 특별한 전문 지식이 필요 없지만, 뜨거운 감자와 같은 정치 현안에 관해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창 영어를 공부할 때 자신의 이름을 딴 코미디언이나 앵커 쇼를 주야장천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점차 그런 양상으로 변해간다는 분석이 흥미로웠다. 한편, 이는 표현의 자유를 그 어떤 권리보다 중시하는 미국이기에 개인이 어떤 정치적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씁쓸함도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토록 <당연하지 않은> 불행을 겪고 있는 원인에 관한 진단을 <68혁명의 부재> 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68혁명이란 무엇인가. 매체의 발달과 함께 '자유세계의 수호자' 인 미국 또한 일개 제국주의 국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세계의 젊은이들은 부조리absurd 하고 비도덕적인 기성세대의 체제에 의문을 가지며 반기를 들게 된다. "금지를 금지하라,"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등의 구호로 상징될 수 있는 68혁명은 당대 기성세대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보이지 않는 억압을 전복시킨 세계사적인 흐름이었다.

 

혁명의 여파는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적용이 되었다. 우선, 교육에서는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익혀 사회 체제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사회화' 과정보다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드는 '비판'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다.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정의 권력(Definitionsmacht)’ 의 문제를 성찰하게 하며,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 계층의 지식이기에 무분별한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임을 인지시킨다.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도 다양한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비판적 견해> 를 표명하도록 가르친다. 헌법 제1조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Die Wu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는 선언 하에 다시는 나치와 같은 인간 존엄 침해를 정당화하는 세력이 등장하지 않도록 일상의 파시즘부터 뿌리 뽑으려 했다.

 

교육과 언론을 비롯한 제도 속으로의 행진을 감행하던 혁명의 불길은 성의 정치학으로도 번지게 된다. 사람들은 성교육을 등한시하면, 내 안에 살아 있는 본능이 악마화되고 죄의식이 내면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세계사적 해방의 물결을 불러일으킨 1968년이 한국에서만 <억압과 굴종> 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정치적으로 '빨갱이' 로 몰릴 가능성이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요구에 응했다고 이야기한다. 베트남전으로 인해 산업화의 가속화를 밟은 나라는 베트남전의 실태를 은폐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베트남전으로 말미암은 68혁명의 물결 또한 차단했다.

 

결국 이에 따라, 한국 사회는 비판 교육은커녕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를 일상의 민간인에게도 적용하게 된 셈이다. 이렇듯 일상에서도 군대 문화를 접하게 된 한국인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 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더불어, 인권 감수성 부재, 비판 없는 소비주의 문화의 팽배, 생태 감수성 부재와 더불어, 이 사회가 심각한 자기 착취를 요구하며, 착취의 결과로 생기는 온갖 불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고 이야기한다.

 

68혁명 당시 가장 유명한 구호 중 하나는 바로 ‘정치 투쟁의 최전선은 내 안에 있다’ 라고 한다. 나를 이루고 있는 나의 사유, 감정, 감수성, 욕망, 무의식이 <내 것> 이 아니라 나를 호명하여 노예로 만든 <체제의 것> 이라면,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연 '해방' 이라는 게 가능은 한가라는 역설적 의문.

 

폭력은 가치란 이름으로, 익명의 상식(혹은 사물)이란 이름으로 점점 개인의 외부에서 내면으로 위상을 달리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인지조차 못하는, 자기 계발이라 불리는 폭력적 자기 착취가 실상 지배 체계의 한 형태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만약 소외 당한 삶을 전복시키지 못하면 끊임없이 배제당하며 착취당할 테니 우리는 이 현상을 <인식> 하며 타자의 고통과 억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고, 인식을 위해선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말씀까지.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차이나는 클라스> 에서의 강연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크레마클럽에 있는 걸 보고 냉큼 일독을 시작했다. 사실 통일 파트는 썩 그렇게 공감이 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를 살아오면서 내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던 포인트들을 쉬운 언어로 풀어주셔서 상당 부분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탈리아 환상문학 중 하나라는 <연기 인간>.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기에 기대를 품고 읽게 됐다. 물론 앞서 인스타에 포스팅했듯 비유를 이해하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연기 인간은 33년간 어두운 굴뚝 속에 존재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존재다. 그는 세상 속으로 나오기 전 페나(pena, ‘고통’), 레테(rete, ‘그물’), 라마(lama, ‘창’)와 함께 있었다. 그들 각각은 연기 인간에게 "마음의 고통을 낱낱이 말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포획한 그물을 낱낱이 말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꿰뚫을 창을 손에 쥐기도" 했다. 그들은 빛이 있기 전 검은 세상에 웅크리고 있던 연기 인간에게 전쟁과 사랑과 철학으로 얽힌 인간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연기 인간은 그들 셋의 이름을 따 사람들이 자신을 ‘페렐라’ 라고 부르도록 한다. 그는 아주 <가벼운> 존재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증명을 요구받을 때마다 "나는 아주 가벼워요." 라는 말로 답한다. 그리고 그 가벼움은 쇠와 납과 강철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와 대조된다.

 

탑과 건축물로 이루어진 지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온몸을 휘감는 강철 전투복과 휘황찬란한 보석들은 인간과 사물을 제도와 관습이라는 세속의 땅에서 발을 떼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권력은 자본과 결합하고, 무능한 왕은 초자연적인 연기 인간의 권위를 빌려 왕국을 통치할 법전을 만들고자 한다. 군중은 페렐라를 세상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인물로 떠받들었다가 마녀사냥의 희생물로 진흙 속에 처박기도 한다.

 

이야기는 제도와 관습의 중심뿐만 아니라 주류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특히 당대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억압과 고통과 슬픔을 여성 본인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제도와 관습의 정점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왕자가 자신이 원해서 정신병동에 돈과 마음을 쏟아붓는 모습, 세상 사람들이 아닌 정신병동 속 사람들이 '정상' 이라 이야기하는 모습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작품 초반 추앙받던 연기 인간은 작품의 말미에선 인간 사회에서 추방당한다. 사람들은 그가 늘 신고 있던 장화를 통해 그의 존재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나, 이제 페렐라는 하늘의 한줄기 빛과 함께 현세에서 영영 사라진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기독교 역사의 알레고리를 암시하듯, 페렐라를 현세에서 쫓아낸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또다시 “페렐라를 찾으러 간다” 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그렇게 영원한 메시아 찾기의 여정을 계속한다.

 

원제가 <페렐라의 법전> 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연기 인간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지만, 원제 그대로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아닌 페렐라가 가장 인간적인 법전을 만든다는 의미도 되겠고, 고통, 그물, 창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전쟁과 사랑과 철학의 결과물인 법전이라는 의미에서도. 뭐가 됐든 완독 해서 뿌듯한 작품이었고 역자인 박상진 교수님의 섬세한 어휘 선택과 문장 구성에 내내 감탄이 나오던 작품이었다. 최근 읽고 있는 언어의 무게에서 번역이란 작가의 세계를 번역자의 언어를 통해 번역자의 세계에 소개하는 말이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절감하는 계기였다.

 

발췌

 

[...] 페나! 레테! 라마! 이 장화를 신고 땅 위를 걸어 다니라고 당신들이 내게 주었지요, 그렇지요? 어쩌면 장화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 걸어 다녀야 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오늘처럼 나를 걸어 다니게 했더라면, 이 장화 밑창은 다 닳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늘 마차로 이동하게 해 줬기 때문에 장화는 아직 상태도 좋고 훌륭하고 빛이 나며, 밑창도 전혀 닳지 않았습니다. 장화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입니다. 오, 인간들이여, 장화는 나를 당신들과 연결해 줬습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이 장화 한 켤레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을 여기 남깁니다.

 

[...] 페렐라를 찾으러 가는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