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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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송골매가 어떤 밴드인지 잘 몰랐다. 그렇지만 표지에 있는 배철수 선생님의 추천사를 읽고 오, 했더랬지. 모르긴 몰라도 한국인이라면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990년 이래로 삼십여 년째 장수 중이라는 프로그램, 내가 어렸던 시절에도 이미 장수해 왔었고 굳건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주인인, 록 밴드라는 자유와 반항으로서의 상징이자 한국 방송계 성실과 관록의 상징인 배철수. 작품은 그 사람이 젊음과 청춘의 상징이었던 시기를 보낸 이들의 기억과 삶, 그리고 희망에 관한 글이었다. 

 

작품은 영화 '써니' 를 연상케 하면서도 일진 무리를 묘사했던 써니보다 조금 더 평범한 고교생들의 기억을 그려내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비록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한정되어 살고 있었으나, 그 시절 무대 위 빛나는 청춘을 '열망' 하며 각자의 계절을 살아온 삶들은 재결합 콘서트라는 소식과 함께 다시 봄의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작품은 빠른 템포로 무겁지 않게 솔직한 정서 표현에 기반하는데,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분명 즐겁고 유쾌하게 읽으리라 여겨진다.

 

몇 달 전 유퀴즈에서 배철수 선생님이 찌든 삶을 살다 반짝거리는 "일상" 의 삶을 사는 방송국 사람들과 일하게 되어 정말 많이 행복했다는 소회를 밝힌 걸 봤었다. 작품을 읽으며 그때의 말이 떠올라 다소 뭉클했다. 어쩌다 마주친 삶들은 각자의 열망이며 지지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평범한 '일상' 을 이어나갈 귀한 삶의 끈을 쥐어준 거겠지.

 

청춘을 노래한
청춘을 사랑한
그 시절 나의 청춘에게,

 

디어 마이 송골매.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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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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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체제는 심리정치를 통해 개인의 영혼을 지배하고 '소통' 이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내면화한다. "고립은 완전한 예속의 첫 번째 조건" 이나 개인을 철저히 비가시화시키고 예속을 강제했던 푸코의 규율권력과 달리, 정보권력은 모든 개인을 가시화하다 못해 투명하게 만들어 예속의 영속성을 공고히 한다. 이제 체제의 '지배' 는 의심받지 않는다. 감시가 '자유' 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장이라 여겨지는 디지털 커뮤니티는 실상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품에 불과하며,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의 불가해함과 목소리는 없애야 할 고통으로 치부된다. 눈앞의 고통을 치워버리기 위해 다양한 스크린 화면을 통해 진통제와 같은 '중독' 을 제공한다.


<투명사회>, <심리정치> 및 <에로스의 종말> 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저자의 전작 중 <심리정치> 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렇기에 이번 논의도 공감이 많이 갔고 책 자체가 아주 얇아서 좋았다. 특히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만큼 내 시간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논조가 와닿았으므로 SNS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라는 구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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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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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모습, 같은 언어, 같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모난' 모서리를 다듬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난 모서리를 '다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자 파시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서리는 곧 부정성이고, 부정성은 갈등이자 고통이며, 다름이자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부정하고 눈 감는 사회는 사회 내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고통 없는 사회> 이다.

 

고통은 언제나 지배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그렇기에 한 사회 내 고통이 지니는 현재성과 의미는 복합적이고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찍은 고통의 낙인이 곧 훈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전근대사회와 달리 규율사회로 지칭되는 산업사회는 학교 및 공장에서부터 고통에 무디게 하기 위한 훈련을 행한다. 노동자의 몸은 자본가가 가지는 권력이자 그의 자본을 증식시킬 본질 및 핵심이므로 노동자가 고통을 인식할 수 없도록 그 개념 자체를 뿌리 뽑는다. 언제나 세상에 대한 낯섦(부정성)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은 자본과 결합하여 '편하고 기분 좋은' 진통 효과를 만들어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고통에 눈 감은 사회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고통과 문제가 발현되어야 고통의 변증법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의식 속 고통의 존재를 의식과 인지의 영역으로 언어화시켜야 한다. 소외된 타자의 고통을 언어화시키고 가시화시켜, 우리 자신을 지속적인 불편함에 노출시켜야 한다. 진보란 타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사회에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내가 누구의 피를 밟고 덮어쓴 채로 지금 이곳에 현존하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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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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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사람, 장소, 환대> 는 '사람' 이라는 개념에 관한 저자만의 정의와 더불어 한 인간이 공동체에서 사람으로서 연기하고 수행하기 위해 얻어야만 하는 성원권과 성원권을 얻기 위한 인정투쟁, 성원권을 유지하는 것과 그에 대응되는 모욕의 의미, 그리고 '사람' 이라는 개념의 외연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과 사람은 같지 않다. '사람' 이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한 사회의 성원권을 기저로 하는 어떤 자격이기 때문이다. 사회란 개별 개인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며, 한 사회 내에서 사람으로 인정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어떤 이들은 사회 속에서 가시화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비가시화되기도 함을 지적한다. 저자는 태아, 노예, 군인, 사형수, 여성, 외국인 등의 예를 통해 억압과 배제의 역사가 어떻게 한 개인을 사람으로 현상하지 못하는 비가시화의 원리를 작동시키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 속 '조건부 환대' 를 따지는 것의 모순을 지적하며, 한 인간이 성원권을 획득하고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 자체로 <무조건적인 환대> 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사실 '사람, 장소, 환대' 의 개념에 대해 알고 싶어 읽었다기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고 이야기하는 근대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인간은 더 평등하다" 여겨지며,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낙인을 지고 살아가야만 하는지가 궁금해서 펼쳤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외부로부터 피할 수 없는 낙인이 찍혔으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욕망을 분출하는 캐릭터들에 이끌리는 편인데, 그런 인물들을 볼 때마다 어렴풋하게 마음이 쓰이던 것이 책을 읽고 개념적·이론적 토대가 다져진 것 같아 유익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 의 외연을 인간에게만 국한시킬 것인가라는 논의였다. 언어가 인간이 정의 내리기 나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도덕적 공동체는 인간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이 맞는가라는 건 언제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 봄직한 사안이지 않을까.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일독해서 뿌듯하다. 조금 더 내공을 쌓아 재독 할 것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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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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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해 일이 존재한다. 산재는 그 관계를 뒤집는다. 일을 하다 삶을 빼앗긴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는 故 이선호 씨와 故 김용균 씨를 비롯한 산업재해 희생자들의 죽음을 되돌아보고, 더 이상 구조에 의한 '일터의 죽음' 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주시해야 하고 사회적 기억으로 합의해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글이다.

 

책 전반의 얼개는 두 노동자의 죽음을 중심으로 (1) 어떻게 안전을 방치한 기업 구조가 노동자의 죽음을 조장하고 (2) 산재 사망사고의 유형은 어떠한지 (3) 산재 원인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의 면면으로는 무엇이 있는지를 기업, 정부, 노조, 언론을 중심으로 살핀 후, (4) 마지막으로 노동자 입장에서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구조 속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그 구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때, 구조 밖 존재인 양 개인적 문책을 당한다. 죽음의 이유는 마땅히 "그 조직의 안전관리가 어느 부분에서 실패했는가" 를 조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현실 속 관행은 으레 그 죽음을 "누가 잘못했는가" 라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그가 처했던 위험과 그의 죽음은 구조 밖으로 외주화 당하고, 그 누구도 그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산재 사건이 언론 보도를 타기 위해선 그의 죽음을 위해 구조에 맞서 싸워줄 동료와 언론을 비롯한 외부에 알릴 노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에 울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 지점에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터졌었다. 별이 된 이들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 답답하여 울분이 쌓인 까닭도 있지만, 나와 내 가족의 과거와 현재가 투영되는 것 같아서. 우리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책에 기록되지 못한 또 얼마나 많은 죽음과 아픔이 있을까 싶어서.

 

예방보다 사후 수습이 "더 싸게" 치기 때문에 돈을 주고 끝낸다는 마인드는 얼마나 저열한지. 그마저도 허망한 죽음을 개인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또 얼마나 무책임한지. "사고는 견고한 체계의 결과물이며, 산재는 누군가의 '실수' 가 아니다." 혹여 실수가 있었다 한들 인간은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실수는 우리의 디폴드 값이며 설령 실수하더라도 피해에 대해 처벌받기보다, 그 실수를 예방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아니 실수했다는 이유로 <죽지 않도록> 책임지는 것이 국가와 기업이 아닌가. 책임지려는 용기를 보이기가 어려운 면피 사회이나 회피할수록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인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의 두 명은 하루 평균 산재 사망자 수라고 한다. 읽기 쉬운 문체로 기자로서 보고 들은 걸 전달해 준 한겨레 신다은 기자에게, 더 이상 이 사회에 내 가족과 친구, 동료가 '당한' 죽음이 양산되지 않도록 지치지 않고 목소리 높이는 분들께 감사했다. 인류가 끝내 이룩해야 할 진보는 기술과 자본의 발달이 아닌, 안전이리라. 끊임없는 '왜' 라는 질문과 함께 그 목적을 향한 긴 여정("A long journey to safety")이 마침내 성취될 수 있길 바라며.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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