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 헤리티지 - 공단과 구디 사이에서 발견한 한국 사회의 내일
박진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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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대선 시즌만 되면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랑삼아 내세웠던 구로공단의 역사가 떠오르고,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구로동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내 편협한 시각을 지적하듯 책 <구로동 헤리티지> 는 구로동이라는 지역, 혹은 하나의 세계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동시에 2023년 대한민국 내 수많은 '구로동' 을 둘러싼 우리의 인식을 재고할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은 구로동이 한국 사회의 발전과 떼려야 뗄 수가 없으며 한국 사회의 기둥과도 같은 곳이라고 곳곳에서 이야기한다. 재봉틀과 키보드로 이루어진, 산업사회와 디지털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초석을 다진 산업의 역군들이 존재했던 곳.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노동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 피와 눈물로 단단하게 다져진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그러나 세상이 잊은 수많은 '순이들' 이 사는 곳. 재봉틀과 키보드를 조작하는 손가락들은 첨단 AI의 도래와 함께 비가시화되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이 사회의 산업을 지탱하는 건 인간의 노동이었고, 코로나 사회는 그런 비가시화된 노동에 종사하는 취약 계층들을 수면 위로 곪아 있던 사회의 고름들을 드러내는 계기였다.

 

한국 현대사의 발전과 함께 한축을 담당해 온 구로동은,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에 의해 철저히 타자화되어 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를 포함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구로공단, 디지털단지' 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구로동. 그러나 최근엔 미디어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역과 결부시켜 재생산하고 확장하는 모습도 간과할 수 없지 않은가.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모자이크와 같은 다채로운 색깔로 덧입혀지며 발전하고 있는 구로동. 구로동의 역사와 그 속에 존재했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용당하고 철저하게 소외당해왔던 우리의 터전을 돌이켜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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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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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출간된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는 '죽어가는 행성' 에서 살고 있다고 자조하기보다는, 언제 올지 모를 타행성의 식민지화를 꿈꾸기보다는, 지금 여기의 지구를 돌보며 함께 공생하고자 하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사유와 실천을 담은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학제적으로, 교차적으로 입을 모아 함께 '지구에 재거주하기' 를 꿈꾸는 책인데 쉽고 구체적인 언어로 쓰여 있어 읽어내기 어렵지 않은 책이다.

 

책은 기후위기의 중대함에 대한 선언과도 같은 1부로 시작하여 지구를 살아가는 여성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어진다. 취약해진 삶들을 돌아보고, 연대하고, 함께 공존하는 상호 돌봄의 사회를 꿈꾸는 이들. 나(주체)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서 시작된 그 사유들은 생물학적 여성의 범주에서 퀴어 상상력을 가미한 트랜스 경험으로, 이어 비-인간 존재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책을 읽으며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생각했던 지점은, 인간은 '지금, 여기' 의 우리를 잊어버림으로써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학적 실천을 망각하나, 동시에 '지금, 여기' 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미래 세대를 무시함으로써 지구에 상처를 준다는 점이었다. 중첩된 타자화의 결과로 피라미드 최말단에 존재하는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무지함을 짚어주었던 점도 좋았다.

 

'죽어가는 행성' 을 누가 만들었는가. 죽어가는 행성에서의 삶에 대한 자조가 어떤 희망을 낳을 수 있는가. '죽어가는 행성' 이라는 담론 속에서 지워지는 존재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지워지고 있는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들은 담대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겠다" 라고, 이 푸른 행성에서 서로의 취약함을 보듬으며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는 법을 끝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겠노라고.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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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 놀랍도록 허술한 연금 제도 고쳐쓰기
김태일 지음,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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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하고 문명과 사회가 발달한다는 것은 그 속의 개인이 살아가면서 짊어져야 할 다양한 책무를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나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화와 함께 급성장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20세기 초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복지국가의 출현을 알렸다. 대략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제 복지국가로서의 기능과 역할 수행이 21세기 선진국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음은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복지국가로서의 기능과 역할 수행 중 하나로 연금 제도를 들 수 있는데, 책 <불편한 연금책> 은 2023년 대한민국 연금제도의 실태에 대해 여러 데이터를 통해 논하고, 저자 나름의 결론을 내는 책이다.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이기도 하기에 읽는 내내 곧이곧대로 읽어도 될까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자신이 속한 연구원 또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까닭에 찬찬히 읽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연금 문제는 늘 까다롭고 골치 아프게 여겨지는 문제다. 난 사실 사설 투자기관보다는 국민연금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한편으로는 책을 통해 사설 운용기관보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더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안심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면 환경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걱정되어 불안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노인의 연금소득보다 근로소득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에 슬펐다. 현실로 접하고 있는 까닭에. 책은 저축이냐 세대 간 계약이냐에서부터 논하지만 사실 난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묻어두고 있었던지라 좀 머리가 아파졌다. 다음주부터 지금까지 낸 것에 대해 다시 좀 따져봐야 할 듯. 책을 읽고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에 천착하게 되었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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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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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백육십여 년 전 미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던 혼란의 시대. 북부의 수장이었던 에이브러험 링컨은 게티즈버그에 모인 이들 앞에서 자신이 꿈꾸는 국가의 기틀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의 이면이 어떠하든 연설은 많은 이들을 감화시켜 전쟁을 북부의 승리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라는 그의 말은 세월을 넘어 21세기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지켜낸 미국은 진정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러한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장애물로 다양한 사회 갈등을 지목하나, 정작 <가난> 은 모른 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과 결탁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허울로써 그때 그 게티즈버그에서의 말을 이용하나 진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책 <미국이 만든 가난> 은 비단 입발린 소리만을 늘어놓는 위정자만을 겨냥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돌림노래인양 이야기하는 시스템의 문제 이면, 즉 진짜 '미국의 가난' 을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지목하는 글이다. 그리고 그 화살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에게 향한다.


이 책은 질 낮은 일자리, 업무 외주화, 기술 진보에 따른 착취, 기업 로비, 노조 가입 불가, 수수료 및 고금리 소액 대출 등의 여러 복합적 요인을 통해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추상화가 아닌 현실 속 우리가 행하는 착취에 반대할 것을 주장한다. 노동자의 주거 및 금융 착취를 중단해야 그들의 삶에 가해지는 신체적, 재정적, 정신적 충격을 없앨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제로섬 게임과 다름없는 정부 원조, 새는 바가지와 다름없는 복지 시스템. 국가의 발전과 함께 진보해 온 여러 사회 보장 시스템이 왜 가난한 이들에게 향하지 않는지를 함께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미국이 만든 가난은 곧 미국인이 만든 가난이며, 이는 곧 "우리" 가 만든 가난이다. 미국의 가난Poverty of America 을 이야기하며 미국이 만든 가난Poverty by America 을 모른 체하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충분한 돈이 없고 충분한 선택지가 없는 이들. "우리" 는 그 점을 이용해서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에게서 착취한 부를 "우리" 의 부를 축적하는데 이용한다는 점을 이 책은 끊임없이 지적한다. 그렇게 다른 이의 삶을 짓밟고 올라선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정치적 내전을 잠재우며 기틀을 다진 나라는 다시 한번 '가난' 이라는 거대한 내전 속에 휩싸인다. 높아진 경제력과 생산물만큼 인간의 욕망도 커져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욕망에 매몰된 나머지 시스템 속 약자들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진보는 요원하기만 하고, 이에 따라 끊임없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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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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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의 이야기가 멈췄다. 그로부터 일 년, 우리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하고 있다. 왜 그들의 이야기가 멈추었는지, 왜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는지, 왜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아직도, 여전히.

 

이 책은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 및 희생자의 가족·연인·지인들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인터뷰집이다. 희생자들의 존재를 지우려고 애쓰는 이들에 잊히지 않고자 저항하는 목소리. 이는 곧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이어지는 부재한 컨트롤 타워에 대한 이야기이며, 정부의 무능을 덮기 위해 희생자들을 향해 그 책임을 돌리는 비열함을 고발하는 이야기이다.

 

역사의 기록 속에 다수라는 이름의 권력이 지우고자 애쓰는 목소리와 기억들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그 힘에 대항하여 잊히지 않을 하나의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 위한 반성적 투쟁. 이제 우리는 "왜 그곳에 갔느냐" 는 말보다 <어째서 돌아오지 못했느냐> 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는 지금, 여기에 현존했고 현존하는 '우리' 의 기억을 말한다.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이야기가 스며든 그 길, 이태원을 향한다.

 

그곳 이태원에

우리가 있었고,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을 것임을 이야기하며.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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