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곽선생뎐 싱긋나이트노블
곽경훈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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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왕의 암행총관, 곽곽선생. 왕의 사냥개를 자처하며 전국 각지를 돌며 왕의 명을 받들어 왕의 이름으로 불온한 자들의 처벌을 대행한다.

 

조선과 비슷해 보이나 비슷하지 않은, 어느 가상의 공간을 다룬 이 작품은 현실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했을 법한 갈등과 아이러니를 그리며 전개되어 나간다. 세습되는 신분제와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열망을 하나로 묶어주는 종교. 평범한 이들이 높이는 각자의 목소리에서 타오르는 열망과 바람은 결코 순수하고 아름답지만은 않고, 때론 비정하게 때론 계략적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돌진한다.

 

작품은 결코 낙관적인 세계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왕의 사냥개는 무엇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가. 왕의 사냥개를 자처하면서도 지배층과 그들의 우두머리에 서 있는 왕이 만들어낸 세계에 한껏 조소를 내비치는 곽곽선생. 어쩌면 그의 칼춤은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내밀한 욕망이 폭력성으로 발현된 것은 아닐까. 어떤 세상을 위한 칼춤인지, 그 칼춤이 옳은지 그른지는 읽는 자의 몫이 되리란 생각이 든다.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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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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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딘 스트로슨 변호사의 혐오HATE 는 '표현의 자유' 국가 미국에서의 혐오표현에 관한 논의와 혐오표현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만이 답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를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오히려 해악이 될 수 있으며, 그보다는 혐오를 뒤덮는 더 많은 긍정의 목소리를 낼 것을 주장한다. 사실 이는 저자뿐만 아니라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같은 인물들 또한 언급해 왔던 바로,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혐오에 대한 '억압' 이 아닌 편견과 혐오에 대항하여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높인 목소리요, 그들이 필요할 때 입을 다문 침묵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의 모호함과 광범위함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혐오표현을 배설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꼭 필요한 순간의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혐오표현과 관련해서는 처벌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법의 경계를 어디까지 그을 것인가에 대한 모호함에 대해 저자와 의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네가 말하는 꼴은 보기 싫지만 네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어느 유명 어구처럼 차라리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혐오를 덮고자 하는, 저자가 제안하는 '대항표현' 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게 맞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혐오자들의 목소리보다 내 사랑이 더 커, 내 사랑이 이겨" 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들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혐오표현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쉽사리 단정 지어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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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12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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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가운데 하마수의 행보를 두고 "문명과 야만" 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 그 경계를 설정하는 이는 누구이며, 경계는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왔는가. 이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2월호에서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며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지적하며, 세계 각국에서 발생 중인 정체성 투쟁으로 인한 극우화를 조명한다. 더불어 문명이 자행한 '문명화된' 학살 이면의 양면성과 잔혹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각국의 부르주아들은 마치 동맹이라도 맺듯 비슷한 위치를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 내 지배자로서의 동일한 위치를 가지고, 선동적 미디어를 소유한 이들은 앞다투어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실제로 그 동맹의 정점에 이스라엘이 위치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언급되는 여러 혼란 속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다룬 꼭지가 흥미로웠다. 나와 다른 이들을 야만으로 낙인찍고 그들을 짓밟고 학살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과연 사유하지 않는 이들이 가진 절대악의 단면인가? 해당 꼭지를 쓴 저자는 외면과 보상으로 말미암은 평범한 사람들의 '깊은 사유' 가 전체주의적 악행의 원동력이었음을 지적하며,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 개념에 대한 보충을 제안한다. 2차 대전 당시 학살 피해의 당사자들이었던 유대인들은 이제 아이히만의 위치에서 가자 폭격의 장면을 '극장' 처럼 전유한다. 마치 현실의 고통이 아닌 극장의 재현인양 감상하면서.

 

현시대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대한 허구를 논하는 글을 읽고 싶다면, 이번 호를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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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크M Critique M 2023 Vol.7 - 몸몸몸, 자본주의의 오래된 신화
김정은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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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 몸' 인 게 맞을까? 이번 <크리티크M> 은 인간 신체를 둘러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짚는다. 더불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오래된 '신화' 를 넘어서 실제 지금 현재의 내가 내 몸과 어떻게 교류하며 살아나갈 것인가를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근 바디프로필을 비롯하여 '보이는 몸' 을 만들기 위한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이상적 몸으로 우리 몸에 투영하는 몸은 어디에서 비롯된 상일까? 인류 문화는 몸의 신화화와 함께 발달해 왔다. 특히 미술을 비롯한 시각문화는 여성의 몸을 집요하게 관음증적으로 관찰하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정의하며 재현해 왔고, 자연스레 사회는 코르셋을 착용하고서라도 "아름다워져야 한다" 라는 당위를 생성해 왔다.


그런데 누구의 기준에서 아름다워져야 하는 것이고, 그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란 말인가? 그 주체는 몸을 대상화하고 관음 하는 주체가 아닌가. 신체 주인의 욕구가 아닌 시각 주체의 욕구에 따라 관음의 대상이 되기도, 단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오랜 기간 관음당한 대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단죄하고자 하고, 관음 한 주체에 대한 처벌은 오랜 기간 부재해 왔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더해서, 자본주의와 SNS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코르셋 감옥에 가두게 만든다는 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SNS가 주는 자기 노출에 대한 강박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피트니스 및 필라테스 센터로 발을 향하게 만들지 않나. "자기만족이라는 내부 동기가 사실상 수많은 타인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만들어 낸 통제" 라는 통찰.


중반부 신체와 관련된 흥미로운 영화 리뷰들도 많다. 특히 올해 <더 웨일> 을 재밌게 봤었기에 영화의 원전이나 다름없는 고전 <모비 딕> 과의 교차 언급과 해석이 흥미로웠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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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꿈의 바다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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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어머니 곁에 세 남매가 모인다. 당사자인 어머니의 의사와 반하여 남매는 자신들의 욕심에 따라 어머니의 삶을 계속해서 연명시킨다. 가장 소중한 이의 절규에도 자신들의 욕심이 먼저인 세 남매.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끝없이 늘어나는 삶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자신의 손가락 하나와 무릎이 없어져가는 중에도 지금 당장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갸웃하고만 마는 이들. 그들은 어머니를 위해 모였다고 하나 사실상 자기 자신밖에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 모습은 작은 스마트폰 창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강조된다. 최악의 산불로 인해 외부의 온 세상이 들끓고 있는 와중에도 손바닥 크기의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크롤만 이어나갈 뿐이다.

 

첫 장에서의 '그녀의 손.' 그 손이 모든 것을 의미한다. 존엄한 삶과 죽음을 원하는 어머니의 삶을 한없이 이어나가게 만든 무자비한 손, 들끓는 불의 바닷속에서도 무심하게 자신의 스마트폰 세상만 유랑하는 손. 그 손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화면 위에서 떼어내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내뻗었다면 슬픔과 고통은 덜하지 않았을까.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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