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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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겨레21> 에서 박노자 교수님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작가론이라기보다는 현대 러시아 사회와 한국 사회 내 상대를 향한 스테레오타입에 관한 글이었는데, "관료층의 상부와 밀접하게 유착한 골수 보수주의자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는다는 것은, 미국·서구 보수층의 ‘가치 서열’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말이 꽤나 흥미를 돋웠고 칼럼을 읽고 당대 지배층이 선호하는 '고전' 이 내포하는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하면 더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모두가 아는 전쟁이 발발했고, 이번 <전쟁 이후의 세계> 는 그에 대해 쓰신 책이라길래 냉큼 신청한 책이다. 최근의 전쟁을 비롯한 현대 러시아를 이해하기 위해 겹겹이 쌓인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가는 책. 왜 전쟁 직후 푸틴에 반기를 들던 이들도 이내 곧 '잠잠해' 졌는가? 푸틴은 왜 "국가, 군대, 종교" 라는 삼위일체를 구성하고자 하는가? 구미권에 대한 러시아의 열등감의 근원은 무엇이며 실제 그들의 관계 구도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 특히 구미권과의 관계적 측면이 많이 흥미로웠는데 읽으면서 국제 관계에서 '매력적인 문화' 란 뭘까, 즉 소프트 파워의 문제가 머릿속에서 뒤엉켜 떠오르곤 했다. 더불어 그러한 문화는 대체 어떻게 다시 제국의 힘으로 발동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책은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인접한 한반도가 '전쟁 이후의 세계' 에서 마주해야 할 진실은 무엇인가 등 남의 나라 전쟁이라 해서 결코 한반도와 무관한 게 아님을 짚으며 마무리된다.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주시기에 옆에서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니 추천하고 싶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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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슬럿 - 젠더의 언어학 Philos Feminism 3
어맨다 몬텔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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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내가 문자를 이해하고 독해라는 걸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곤 한다. 살아오면서 내내 가려웠던 곳을 긁어주는 책이라든가 전례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파묻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문학이라든가 소위 말하는 '빨간 약' 을 먹게 해주는 책이라든가. 

난 어릴 때부터 개(같은)년이란 말을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여성이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도 있지만 개년이라는 말에 함의된 모종의 뉘앙스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미디어에서 통쾌하답시고 싸질러지는 욕들은 왜 죄다 여성혐오적인 욕들 밖에 없는 건지. 욕은 안 해도 티비 속 수많은 그녀들을 입방아에 올려놓게 만드는 멘트들은 또 어떻고. 이런저런 '불편함' 으로 한국 예능을 안 보게 된 지도 꽤 되었으나 그 덕에 내 정신을 지킬 수 있게 된 건 또 하나의 기묘한 아이러니다.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페미니스트 킬조이' 처럼 하나의 지침서이자 이론적 지지대라고 생각하면 좋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호주 전 총리 줄리아 길라드의 연설이 떠올랐다. 정치적 실책에 앞서 줄리아 길라드는 일국의 수상 자리에 오른 여성임에도 반대파 당수들로부터 '여성' 이라는 이유와 그의 사생활을 빌미로 공격을 당했었다. 수상의 자리에 있는 줄리아 길라드를 상대로 캣콜링을 행했던 야당 당수는 말로 반죽이 되다시피 했고 그때의 연설이 몇 달 내내 잊히지 않아 계속해서 찾아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여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걸레라고 불러라. 남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여자라고 불러라." 

언어는 문화의 정수이고 언어의 특징을 알면 그 나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 내 모든 문화에 스며든 여성혐오적인 워딩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말들은 언제나 성적인 의미가 덧붙여지고, 그렇게 덧붙여진 말들이 다시금 여성을 향한 낙인의 말이 되어옴을 사회언어학적으로 짚어간다. '나의 언어' 를 교정하려 드는 불쾌한 경험을 해본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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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니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2
라이먼 타워 사전트 지음, 이지원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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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먼 타워 사전트의 <유토피아니즘> 은 비/서구 사회의 '유토피아' 개념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유토피아가 하나의 사상으로서 어떻게 인류사에 영향을 끼쳐왔는가를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통찰과 더불어 그 기원을 분석하고, 진화 양상을 살피며,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의 역사적 분기점에서 유토피아니즘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은 서구 사회 지적 전통에서의 유토피아니즘을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추적한다. 더불어 "신의 도시" 를 만들고자 했던 중세인들의 열망과 더불어 원하는 이상이 실현되지 않을 시 발생할 수 있는 묵시록적apocalyptic 비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저자는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적 사상가들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대두된 유토피아니즘을 조명한다. 잘 알려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통해 당대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겼던 사회 운용 원리와 비전을 살펴본다. 더불어 "사회계약설", "영구평화론" 과 같은 수많은 사상가들이 주창했던 이론과 사상들은 사실 각자의 유토피아니즘을 실현하기 위함임을 짚는다.

이러한 유토피아니즘은 문학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도 주제 및 모티프로 활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작가는 당대 사상가 및 예술가들이 유토피아 도래만을 꿈꾸는 것이 아닌 유토피아 도래 이후 펼쳐질 수많은 사회적 문제 및 딜레마들, 더 나아가 디스토피아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음을 자각했다는 걸 짚는다. 예컨대 허버트 조지 웰스의 판타지 소설 "타임머신" 은 당대 허버트가 원하던 미래 세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에 더해 자신이 꿈꾸던 유토피아에서는 어떤 윤리적 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을지를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유토피아를 꿈꿔왔지만 80억 인구가 있다면 80억 개의 유토피아가 존재한다. 누군가 자신의 유토피아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부터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변질되고야 만다. 작품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유토피아니즘과 그 속에 내포된 정치적 이데올로기들이 어떻게 사회를 변혁의 길로 이끌었는지를 짚고, 독재 이데올로기의 가능성 또한 잊지 않는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열망은 인간을 꿈꾸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러나 너와 나의 유토피아가 다를 수 있음을, 그 속에서 끊임없이 타협점을 모색하는 것이 삶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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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 - 오늘은 일본 위스키를 마십니다
김대영 지음 / 싱긋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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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전혀 안 마시는지라 책을 받고 좀 당황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알지 못하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지.

책은 처음 일본에 위스키가 들어올 때부터 시작하여 각 증류소에서 어떤 식으로 첫 위스키를 만들어냈는지, 주세법의 변화에 따라 일본 내 위스키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함께 성장했던 위스키 붐은 어떠했는지를 일러준다. 일본 하면 사케라는 건 나도 들어봤는데 책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 5대 위스키 강국 중 하나라고 한다. 처음에는 영미권 국가들을 따라 들여왔는데, 이후에는 자국 나름의 위스키 제조법을 발달시켜 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여담인데 책이 종이 재질도 좋고 사진도 풍부해서 나 같은 술 문외한도 음 그렇구나, 라고 끄덕이며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게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자신이 향유하는 주류 문화를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아닐까. 문화 융성의 근간은 다양성인데 술에 있어서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어 좋은 책.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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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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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좋다. 뭐냐 하면 별생각 없이 읽게 된 에세이를 통해 새삼 기후위기에 대해 자각하고 몰랐던 부분을 깨우치게 되는 순간들. 두어 시간 동안 후루룩 읽을 가벼운 에세이를 기대하며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을 선택했는데 정말로 소중한 친구를 이야기하듯 정성 들여 찍은 사진들과 수많은 나무들을 소개해주시는 작가님의 정성에 감탄이 나온다. 나무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생각한다고? 시끌벅적 복잡다단한 도시 생활 속에서 나무를 이렇게까지 면밀하게 본 적이 없는 나는 신기하면서도 결이 고운 나무를 보는 양 이 책이 신기하기만 하다. 퇴근 후 머리가 복잡할 때 샤워 후 가볍게 읽기 좋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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