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1
피터 마셜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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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마샬Peter Marshall 의 <종교 개혁>은 유럽사에서 종교·문화·정치적 대파장을 일으킨 종교 개혁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종교 개혁이라는 복수의 사건들이 시작되는 발단, 성장, 그리고 그 영향까지를 명확하고 통찰력 있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의 지배 하에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부터 종교적인 삶을 살았으나 그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온갖 부정부패를 (중세 후기의 부패는 이전보다 '덜' 했다고 한다!) 비롯한 면죄부 판매, 성직자들의 사치스러운 삶에 대한 개혁의 요구가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이에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에 의해 로마 가톨릭이 제공하는 신학적 근본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저자는 루터를 일례로 세수를 거둬들일 세속적 지배 권력의 약화 및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가진 개혁에 대한 열망을 비롯하여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요인의 영향력을 설명한다. 더불어 인쇄술의 발달이 어떻게 개신교 사상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까지 설명을 덧붙인다. 책의 시사점은 종교 전쟁, 이단자에 대한 박해를 비롯한 여러 혼란과 폭력적인 측면 또한 다루며 확장되나, 무엇보다 강조되는 바는 종교 개혁이 결코 단수의 결과물이 아닌 복수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다수의 열망이 시대적 조건을 만나 새로운 세계를 여는 초석이 되었으니 어찌 대사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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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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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스타가르트의 <독일인의 전쟁 1939-1945> 는 2차 대전 시기를 살았던 독일인에 대한 기록, 2차 대전에 대한 독일인의 기억, 그리고 그로부터 알 수 있는 그 내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사실 수많은 편지와 회고와 기록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향연이나 마찬가지라 하나의 공통분모로 엮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가이드를 잘 잡아주시고 본편에서도 몰입감 있고 일관성 있게 문헌들이 수록되어 있어 두꺼울지언정 어렵지 않게 읽었던 것 같다.


19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세기말 전환기. 독일은 새로운 흐름 속에서 새로운 '질서' 에서 도태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영국에서 전파된 산업자본주의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여러 문제를 낳았고, 특히 제국주의 열강들이 등장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독일은 먼저 제국주의 선봉장에 섰던 국가들, 특히 영국에 대한 질투와 애증을 드러냄과 동시에 당대 생물학의 발전과 함께 팽배해졌던 우생학을 이용해 동유럽권을 비롯한 러시아에 대한 우월의식 및 지배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들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연관시켜 자신들이 2차 대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조건화시키고, 양차 대전에서 어떻게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피해자' 가 되었는지를 설파하는 논리를 펼친다.

그들은 "전쟁에 비판적이었으나 동시에 전쟁을 정당화" 했고,
그들은 "나치를 혐오하였으나 독일의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 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당대를 지배하는 '정상성' 이 되어 홀로코스트라는 절대악을 정당화하는 기반이 된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피해자의 기억서사는 어느새 독일인의 기억서사로 둔갑하고, 독일인의 기억 속에 이미 독일인은 전쟁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흔히들 독일이라 하면 반성하는 양심 국가로 알려져 있고 나 또한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그 모든 것이 독일인이 내보인 '자기기만' 의 가면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반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면서도 동유럽권을 노예화하는 것, 그 과정에서 눈엣가시와도 다름없던 유대인을 '청소' 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습에 소름 끼쳤다. 몰랐던 것들이 많았기에 탄식하며 읽어나가는 순간들. 기록과 기억의 스펙트럼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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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Philos 시리즈 27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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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은 지금, 여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왜 다시 자본론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자본론을 읽어보지 않은 초심자부터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친절하고 쉬운 설명으로 쓰인 이 책은 코로나 시대 이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와닿을 법한 일상과 밀접한 예시를 풍부하게 들어 이해를 돕는다.


영화 <매트릭스> 속 주인공은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 속에서 갈등한다.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담보하는 빨간 약, 표면상의 질서 속에서 안온한 현재를 의미하는 파란 약. 주인공 네오는 기꺼이 빨간 약을 택하고, 그 뒤 그의 삶은 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열린다. 그러나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 이전에, 빨간 약의 존재조차 몰랐다면? 이 책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에서도 빨간 약과 유사한 '빨간 글씨' 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농담 속에서 빨간 글씨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렌즈가 된다. 그러나 그 렌즈가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틀 하나를 잃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책은 모든 것이 울타리 치기와 함께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역사 속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던 인간은 잉여생산물의 등장과 함께 강자의 논리에 따른 울타리 치기를 시작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가속화된 울타리 치기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더 철저하고 은밀하게 개인의 삶 속에 파고들고,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은 개인을 기계의 부품과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기업 정신을 위시한 자본가의 마인드를 내재화한 개인은 자유롭다 착각하며 더욱더 자본에 자신의 몸을 묶기에 이르고, 결국 피로사회의 굴레로 자신을 내던지고 만다.


피로사회를 비롯한 한병철 교수님의 저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가 배경지식이 되어 어렵지 않게 읽었던 것 같다. 다만 자본론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은 없었는데 입문의 물꼬를 튼 것 같아 만족스럽고, 특히 분업이 왜 인간소외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단계적인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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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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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겨레21> 에서 박노자 교수님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작가론이라기보다는 현대 러시아 사회와 한국 사회 내 상대를 향한 스테레오타입에 관한 글이었는데, "관료층의 상부와 밀접하게 유착한 골수 보수주의자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는다는 것은, 미국·서구 보수층의 ‘가치 서열’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말이 꽤나 흥미를 돋웠고 칼럼을 읽고 당대 지배층이 선호하는 '고전' 이 내포하는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하면 더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모두가 아는 전쟁이 발발했고, 이번 <전쟁 이후의 세계> 는 그에 대해 쓰신 책이라길래 냉큼 신청한 책이다. 최근의 전쟁을 비롯한 현대 러시아를 이해하기 위해 겹겹이 쌓인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가는 책. 왜 전쟁 직후 푸틴에 반기를 들던 이들도 이내 곧 '잠잠해' 졌는가? 푸틴은 왜 "국가, 군대, 종교" 라는 삼위일체를 구성하고자 하는가? 구미권에 대한 러시아의 열등감의 근원은 무엇이며 실제 그들의 관계 구도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 특히 구미권과의 관계적 측면이 많이 흥미로웠는데 읽으면서 국제 관계에서 '매력적인 문화' 란 뭘까, 즉 소프트 파워의 문제가 머릿속에서 뒤엉켜 떠오르곤 했다. 더불어 그러한 문화는 대체 어떻게 다시 제국의 힘으로 발동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책은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인접한 한반도가 '전쟁 이후의 세계' 에서 마주해야 할 진실은 무엇인가 등 남의 나라 전쟁이라 해서 결코 한반도와 무관한 게 아님을 짚으며 마무리된다.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주시기에 옆에서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니 추천하고 싶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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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슬럿 - 젠더의 언어학 Philos Feminism 3
어맨다 몬텔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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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내가 문자를 이해하고 독해라는 걸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곤 한다. 살아오면서 내내 가려웠던 곳을 긁어주는 책이라든가 전례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파묻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문학이라든가 소위 말하는 '빨간 약' 을 먹게 해주는 책이라든가. 

난 어릴 때부터 개(같은)년이란 말을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여성이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도 있지만 개년이라는 말에 함의된 모종의 뉘앙스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미디어에서 통쾌하답시고 싸질러지는 욕들은 왜 죄다 여성혐오적인 욕들 밖에 없는 건지. 욕은 안 해도 티비 속 수많은 그녀들을 입방아에 올려놓게 만드는 멘트들은 또 어떻고. 이런저런 '불편함' 으로 한국 예능을 안 보게 된 지도 꽤 되었으나 그 덕에 내 정신을 지킬 수 있게 된 건 또 하나의 기묘한 아이러니다.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페미니스트 킬조이' 처럼 하나의 지침서이자 이론적 지지대라고 생각하면 좋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호주 전 총리 줄리아 길라드의 연설이 떠올랐다. 정치적 실책에 앞서 줄리아 길라드는 일국의 수상 자리에 오른 여성임에도 반대파 당수들로부터 '여성' 이라는 이유와 그의 사생활을 빌미로 공격을 당했었다. 수상의 자리에 있는 줄리아 길라드를 상대로 캣콜링을 행했던 야당 당수는 말로 반죽이 되다시피 했고 그때의 연설이 몇 달 내내 잊히지 않아 계속해서 찾아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여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걸레라고 불러라. 남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여자라고 불러라." 

언어는 문화의 정수이고 언어의 특징을 알면 그 나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 내 모든 문화에 스며든 여성혐오적인 워딩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말들은 언제나 성적인 의미가 덧붙여지고, 그렇게 덧붙여진 말들이 다시금 여성을 향한 낙인의 말이 되어옴을 사회언어학적으로 짚어간다. '나의 언어' 를 교정하려 드는 불쾌한 경험을 해본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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