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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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를 통해서 생물학을 위시하는 근대 자연과학이 주장하는 '객관성' 의 허구와, 그 신화가 체현된 영장류 실험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응하는 대안으로 '사이보그로의 정체성 선언' 을 주장한다.


"과학은 문화이다."


근대 이후 과학은 가설, 실험, 결과라는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자신의 객관성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과학자 개인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스며들어 있음을, 그것이 객관성의 이름으로 영장류를 비롯한 동물과 여성들의 신체를 무차별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할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 왔음을 폭로한다.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은 당대의 사회 및 문화가 인간 사회에서 알고자 하는 의구심을 해결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일견 "동물 세계에서도 그러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는 실험 결과들은 사실 당대 이념 체계에 의해 설계되고 구현된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이념 체계는 프로이트 및 진화론에서 비롯된 서구 남성/남근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후 국가사회주의, (군사주의적·가부장제적)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수많은 영장류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실험하고 차별하기에 이른다.


'우리' 와 '그들' 이라는 폭력적인 이분법은 나와 다른 존재를 타자로 낙인찍는 것을 정당화한다. 타자는 언제나 '괴물' 로 정의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괴물의 존재는 언제나 공동체의 한계를 드러낸다. 동물, 여성, 켄타우로스, 아마존, …, 그리스시대 폴리스로부터 비롯되는 서구의 남성중심적 세계관은 조화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식민화한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폭력적 이분법과 남성 지배하의 조화로운 존재에서 탈피하고자 스스로 "여신이기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선언한다. 근본 없고, 경건하지도 않은, 온갖 정체성이 이종교합 상태로 복잡다단하게 엮인 사이보그. 그 사이보그로의 선언 속에서, 끊임없이 읽고 쓰며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신화를 벗겨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원래 평소에는 출퇴근할 때 오디오북을 들으며 운전하는 편인데, 다른 책도 읽어야 하긴 했지만, 특히 이 책을 읽느라 몇 주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하하. 얼마 전 르몽드지에서 읽은 마녀사냥 편이 떠올라 그때 읽은 걸 곱씹으려 읽었고, 더불어 여성학적 측면에서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영장류에 대한 논의에서 사이보그 논의로의 전환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이후 도나 해러웨이에 대한 저서를 또 만나게 된다면 배경지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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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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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아일랜드의 투쟁의 역사. 그 속에서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바스러져 가는 개인들. 그러나 버티고 견뎌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면면이 곧 삶이란 걸 증명해 내는 작품.

 

작품은 정치적 투쟁, 스파이, 구교와 신교의 갈등, 젠더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아픔을 빌미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를 인물들이 겪는 상황 등을 통해 보여준다.

 

비극에 비극이 이어지는 작품이라 호불호가 갈릴지도. 그러나 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진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의 사랑이 주인공들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게 인상적이었고, 두 세대를 거쳐 주인공들의 딸인 이멜다에 이르러서야 그 화합이 이루어져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편지와 일반 서술을 오가고, 회상을 통해 개인의 삶을 반추하는 서술 방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당대를 살아낸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자아낸다. 아마 1인칭 서술이 아니었다면 객관성이라는 잣대로 두 사람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특히 남자 주인공이 아일랜드인이고 여자 주인공이 영국인인데 (부모 세대조차도) 성별이 바뀌었다면, 새로운 해석들이 무성했을 것 같다.

 

아일랜드인인 윌리엄 트레버는 조국의 무엇을 염원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을까? 일견 평생 화해하지 못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구부러진 평행선은 오점이 아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낳을 기회가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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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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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만큼 2023년 지금 현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야기인 조선희 작가의 <그리고, 봄>.

 

유신 때 고문을 받은 적 있는 교수 아버지, 진보 언론인 어머니, 같은 진보 성향이나 주류 정당을 지지하는 부모와 달리 소수 정당을 지지하며 결혼 문제로 부모와 이따금 갈등을 빚는 딸, 정알못이라 2번을 찍은 건 아닌지 부모의 우려를 사는 아들.

 

1인칭 관점으로 각자의 입장과 시각을 보여주며 서술되는 작품은 어머니, 딸, 아들, 아버지, 다시 어머니의 순으로 전개된다. 언론인인 어머니가 자신과는 지지 정당이 다른 같은 진보주의자인 딸의 속내를 듣고, 지지 정당도 다른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이 모든 정치적 불화가 시작된 근원을 온몸으로 겪어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순서 같았달까.

 

개인적으로는 딸인 하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하민의 연인은 여성이자 무슬림이다. 작중 무슬림은 히잡을 쓰는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슬림인데 동성연애 등이 가능하다니 등의 질문과도 같은 서술이 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점에서 나 또한 말로는 진보를 지지한다고 하나 혹 현실의 타자를 겨냥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를 반추해 보게 되는 장면이라 흥미로웠다.

 

네 사람이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도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의 노력을 통해 결국 그래도 '봄' 을 맞이한다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이기에 현 시대를 둘러싼 갈등과 억눌렸던 답답함을 느껴왔던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으리란 생각이 든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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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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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송골매가 어떤 밴드인지 잘 몰랐다. 그렇지만 표지에 있는 배철수 선생님의 추천사를 읽고 오, 했더랬지. 모르긴 몰라도 한국인이라면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990년 이래로 삼십여 년째 장수 중이라는 프로그램, 내가 어렸던 시절에도 이미 장수해 왔었고 굳건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주인인, 록 밴드라는 자유와 반항으로서의 상징이자 한국 방송계 성실과 관록의 상징인 배철수. 작품은 그 사람이 젊음과 청춘의 상징이었던 시기를 보낸 이들의 기억과 삶, 그리고 희망에 관한 글이었다. 

 

작품은 영화 '써니' 를 연상케 하면서도 일진 무리를 묘사했던 써니보다 조금 더 평범한 고교생들의 기억을 그려내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비록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한정되어 살고 있었으나, 그 시절 무대 위 빛나는 청춘을 '열망' 하며 각자의 계절을 살아온 삶들은 재결합 콘서트라는 소식과 함께 다시 봄의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작품은 빠른 템포로 무겁지 않게 솔직한 정서 표현에 기반하는데,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분명 즐겁고 유쾌하게 읽으리라 여겨진다.

 

몇 달 전 유퀴즈에서 배철수 선생님이 찌든 삶을 살다 반짝거리는 "일상" 의 삶을 사는 방송국 사람들과 일하게 되어 정말 많이 행복했다는 소회를 밝힌 걸 봤었다. 작품을 읽으며 그때의 말이 떠올라 다소 뭉클했다. 어쩌다 마주친 삶들은 각자의 열망이며 지지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평범한 '일상' 을 이어나갈 귀한 삶의 끈을 쥐어준 거겠지.

 

청춘을 노래한
청춘을 사랑한
그 시절 나의 청춘에게,

 

디어 마이 송골매.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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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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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체제는 심리정치를 통해 개인의 영혼을 지배하고 '소통' 이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내면화한다. "고립은 완전한 예속의 첫 번째 조건" 이나 개인을 철저히 비가시화시키고 예속을 강제했던 푸코의 규율권력과 달리, 정보권력은 모든 개인을 가시화하다 못해 투명하게 만들어 예속의 영속성을 공고히 한다. 이제 체제의 '지배' 는 의심받지 않는다. 감시가 '자유' 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장이라 여겨지는 디지털 커뮤니티는 실상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품에 불과하며,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의 불가해함과 목소리는 없애야 할 고통으로 치부된다. 눈앞의 고통을 치워버리기 위해 다양한 스크린 화면을 통해 진통제와 같은 '중독' 을 제공한다.


<투명사회>, <심리정치> 및 <에로스의 종말> 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저자의 전작 중 <심리정치> 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렇기에 이번 논의도 공감이 많이 갔고 책 자체가 아주 얇아서 좋았다. 특히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만큼 내 시간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논조가 와닿았으므로 SNS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라는 구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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