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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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백육십여 년 전 미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던 혼란의 시대. 북부의 수장이었던 에이브러험 링컨은 게티즈버그에 모인 이들 앞에서 자신이 꿈꾸는 국가의 기틀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의 이면이 어떠하든 연설은 많은 이들을 감화시켜 전쟁을 북부의 승리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라는 그의 말은 세월을 넘어 21세기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지켜낸 미국은 진정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러한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장애물로 다양한 사회 갈등을 지목하나, 정작 <가난> 은 모른 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과 결탁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허울로써 그때 그 게티즈버그에서의 말을 이용하나 진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책 <미국이 만든 가난> 은 비단 입발린 소리만을 늘어놓는 위정자만을 겨냥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돌림노래인양 이야기하는 시스템의 문제 이면, 즉 진짜 '미국의 가난' 을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지목하는 글이다. 그리고 그 화살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에게 향한다.


이 책은 질 낮은 일자리, 업무 외주화, 기술 진보에 따른 착취, 기업 로비, 노조 가입 불가, 수수료 및 고금리 소액 대출 등의 여러 복합적 요인을 통해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추상화가 아닌 현실 속 우리가 행하는 착취에 반대할 것을 주장한다. 노동자의 주거 및 금융 착취를 중단해야 그들의 삶에 가해지는 신체적, 재정적, 정신적 충격을 없앨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제로섬 게임과 다름없는 정부 원조, 새는 바가지와 다름없는 복지 시스템. 국가의 발전과 함께 진보해 온 여러 사회 보장 시스템이 왜 가난한 이들에게 향하지 않는지를 함께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미국이 만든 가난은 곧 미국인이 만든 가난이며, 이는 곧 "우리" 가 만든 가난이다. 미국의 가난Poverty of America 을 이야기하며 미국이 만든 가난Poverty by America 을 모른 체하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충분한 돈이 없고 충분한 선택지가 없는 이들. "우리" 는 그 점을 이용해서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에게서 착취한 부를 "우리" 의 부를 축적하는데 이용한다는 점을 이 책은 끊임없이 지적한다. 그렇게 다른 이의 삶을 짓밟고 올라선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정치적 내전을 잠재우며 기틀을 다진 나라는 다시 한번 '가난' 이라는 거대한 내전 속에 휩싸인다. 높아진 경제력과 생산물만큼 인간의 욕망도 커져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욕망에 매몰된 나머지 시스템 속 약자들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진보는 요원하기만 하고, 이에 따라 끊임없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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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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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의 이야기가 멈췄다. 그로부터 일 년, 우리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하고 있다. 왜 그들의 이야기가 멈추었는지, 왜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는지, 왜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아직도, 여전히.

 

이 책은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 및 희생자의 가족·연인·지인들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인터뷰집이다. 희생자들의 존재를 지우려고 애쓰는 이들에 잊히지 않고자 저항하는 목소리. 이는 곧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이어지는 부재한 컨트롤 타워에 대한 이야기이며, 정부의 무능을 덮기 위해 희생자들을 향해 그 책임을 돌리는 비열함을 고발하는 이야기이다.

 

역사의 기록 속에 다수라는 이름의 권력이 지우고자 애쓰는 목소리와 기억들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그 힘에 대항하여 잊히지 않을 하나의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 위한 반성적 투쟁. 이제 우리는 "왜 그곳에 갔느냐" 는 말보다 <어째서 돌아오지 못했느냐> 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는 지금, 여기에 현존했고 현존하는 '우리' 의 기억을 말한다.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이야기가 스며든 그 길, 이태원을 향한다.

 

그곳 이태원에

우리가 있었고,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을 것임을 이야기하며.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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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2 벽 SF 보다 2
듀나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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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는 SF 라는 장르를 통해 여성을 둘러싼 억압적 삶의 규범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넘어설 수 없는 '벽' 을 고찰하며, 이 벽을 넘어서기 위한 "하이퍼 링크" 를 제시하는 작품이다. 단편 앤솔로지로 구성된 책이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이자 주제로서의 벽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나 의미심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작품은 작품 밖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벽이란 무엇인가. 그 벽은 누가 세운 것인가. 우리를 둘러싼 벽은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가. 우리는 벽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 우리는 벽을 긍정하는가, 외면하고 돌아서고자 하는가, 넘어서고자 하는가, 부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나만을 위한 것인가,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벽은 앞서 말한 이 사회가 제시하는 사회적 규범일 수도 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나 그 자체로 이미 현존하고 있는 타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벽을 부수면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과거가, 현실에 편재해 있는 현재가, 도저히 예상하지 못했던 과거와 현재로부터 이어지는 그 어떤 미래가 기다릴 수도 있다.

 

적사병, 사차원의 인간, 깡총 넘기, 틈과 리빌딩 등. 작품은 벽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묻는다. 벽은 인간의 조건이며, 벽이 곧 인간이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한 벽들. 벽은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고, 질문하게 만든다. 나와 너를 이어주며 함께 공존하게 만들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상상력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벽을 넘어서고자 맞잡은 손,
잊지 않고 잊히지 않고자 함께 낸 목소리,
그 소리의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길 바라며.

 

문학과지성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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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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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중세 이슬람 문명 황금기의 페르시아. 작품 <사마르칸트> 는 그 배경 속에서 당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한 천재 학자의 생애를 추적하며, 그가 걸어온 사마르칸트를 둘러싼 이슬람 역사를 조망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그가 남긴 작품집 <루바이야트> 가 거쳐온 세월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사후에도 작품이 세월을 너머 후대의 청년들에게 어떻게 힘이 되고 목소리가 되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와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사마르칸트, 거대한 대지와 같은 사막은 때로는 포근하게 때로는 무자비하게 인간의 역사를 포용하기도 쓸어버리기도 한다. 오마르 하이얌, 그 이름은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학자의 이름이자 저주의 뜻이 깃든 불운한 이름이었다. 작품은 일찍이 인간사의 무상함을 깨달은 오마르 하이얌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관조하면서도 개입하는 과정을 어떤 영웅담처럼 그려낸다. 더불어 액자식 구성으로 작품 속 작품이 겹겹이 포개진 액자 밖 이야기로 이어져 마치 신비로운 '천일야화' 를 연상케 한다.

 

하이얌은 인간사와 떨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는 연인과의 낭만 속에서 별을 보며 학문을 연구하며 살길 원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시대는 그의 천재성을 두고만 보지 못한다. 물론 그는 그 속에서 과거를 현재화하고, 현재 속에서 과거의 의미를 재현하며 삶의 의미를 구축해 나간다. 그런 그의 삶은 그의 작품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시대를 관통하여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내는 19세기 페르시아 젊은이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며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한다.

 

교양인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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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8
조너선 컬러 지음, 조규형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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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컬러의 <문학이론> 은 이론이란 무엇인지, 문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문학이론' 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선 이론이란 무엇인가. 이론은 읽기 행위의 틀을 다져주고 이해에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준다는 면에서 유익하다. 물론 다양한 말들이 있으나 결국 문학이라는 텍스트를 비롯하여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literature 은 다양한 문헌이란 말에서 시작되었고, 실제로 '그 어떤 것이든' 문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문학을 그 무엇이라고 콕 짚어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우리 세계를 둘러싼 <잡초> 라고 일컫는데, 이에 따라 문학은 곧 세계 그 자체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문학이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론이라는 틀을 통해 문학을 연구하다 보면, 곧 문화로 확장되고, 그 문화가 곧 우리 삶 자체다. 정리하자면 문학이론이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분석하는 다양한 틀을 알고, 그 틀에 따라 다층적·다면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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