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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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아일랜드의 투쟁의 역사. 그 속에서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바스러져 가는 개인들. 그러나 버티고 견뎌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면면이 곧 삶이란 걸 증명해 내는 작품.

 

작품은 정치적 투쟁, 스파이, 구교와 신교의 갈등, 젠더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아픔을 빌미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를 인물들이 겪는 상황 등을 통해 보여준다.

 

비극에 비극이 이어지는 작품이라 호불호가 갈릴지도. 그러나 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진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의 사랑이 주인공들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게 인상적이었고, 두 세대를 거쳐 주인공들의 딸인 이멜다에 이르러서야 그 화합이 이루어져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편지와 일반 서술을 오가고, 회상을 통해 개인의 삶을 반추하는 서술 방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당대를 살아낸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자아낸다. 아마 1인칭 서술이 아니었다면 객관성이라는 잣대로 두 사람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특히 남자 주인공이 아일랜드인이고 여자 주인공이 영국인인데 (부모 세대조차도) 성별이 바뀌었다면, 새로운 해석들이 무성했을 것 같다.

 

아일랜드인인 윌리엄 트레버는 조국의 무엇을 염원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을까? 일견 평생 화해하지 못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구부러진 평행선은 오점이 아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낳을 기회가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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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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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만큼 2023년 지금 현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야기인 조선희 작가의 <그리고, 봄>.

 

유신 때 고문을 받은 적 있는 교수 아버지, 진보 언론인 어머니, 같은 진보 성향이나 주류 정당을 지지하는 부모와 달리 소수 정당을 지지하며 결혼 문제로 부모와 이따금 갈등을 빚는 딸, 정알못이라 2번을 찍은 건 아닌지 부모의 우려를 사는 아들.

 

1인칭 관점으로 각자의 입장과 시각을 보여주며 서술되는 작품은 어머니, 딸, 아들, 아버지, 다시 어머니의 순으로 전개된다. 언론인인 어머니가 자신과는 지지 정당이 다른 같은 진보주의자인 딸의 속내를 듣고, 지지 정당도 다른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이 모든 정치적 불화가 시작된 근원을 온몸으로 겪어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순서 같았달까.

 

개인적으로는 딸인 하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하민의 연인은 여성이자 무슬림이다. 작중 무슬림은 히잡을 쓰는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슬림인데 동성연애 등이 가능하다니 등의 질문과도 같은 서술이 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점에서 나 또한 말로는 진보를 지지한다고 하나 혹 현실의 타자를 겨냥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를 반추해 보게 되는 장면이라 흥미로웠다.

 

네 사람이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도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의 노력을 통해 결국 그래도 '봄' 을 맞이한다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이기에 현 시대를 둘러싼 갈등과 억눌렸던 답답함을 느껴왔던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으리란 생각이 든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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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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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송골매가 어떤 밴드인지 잘 몰랐다. 그렇지만 표지에 있는 배철수 선생님의 추천사를 읽고 오, 했더랬지. 모르긴 몰라도 한국인이라면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990년 이래로 삼십여 년째 장수 중이라는 프로그램, 내가 어렸던 시절에도 이미 장수해 왔었고 굳건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주인인, 록 밴드라는 자유와 반항으로서의 상징이자 한국 방송계 성실과 관록의 상징인 배철수. 작품은 그 사람이 젊음과 청춘의 상징이었던 시기를 보낸 이들의 기억과 삶, 그리고 희망에 관한 글이었다. 

 

작품은 영화 '써니' 를 연상케 하면서도 일진 무리를 묘사했던 써니보다 조금 더 평범한 고교생들의 기억을 그려내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비록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한정되어 살고 있었으나, 그 시절 무대 위 빛나는 청춘을 '열망' 하며 각자의 계절을 살아온 삶들은 재결합 콘서트라는 소식과 함께 다시 봄의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작품은 빠른 템포로 무겁지 않게 솔직한 정서 표현에 기반하는데,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분명 즐겁고 유쾌하게 읽으리라 여겨진다.

 

몇 달 전 유퀴즈에서 배철수 선생님이 찌든 삶을 살다 반짝거리는 "일상" 의 삶을 사는 방송국 사람들과 일하게 되어 정말 많이 행복했다는 소회를 밝힌 걸 봤었다. 작품을 읽으며 그때의 말이 떠올라 다소 뭉클했다. 어쩌다 마주친 삶들은 각자의 열망이며 지지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평범한 '일상' 을 이어나갈 귀한 삶의 끈을 쥐어준 거겠지.

 

청춘을 노래한
청춘을 사랑한
그 시절 나의 청춘에게,

 

디어 마이 송골매.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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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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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체제는 심리정치를 통해 개인의 영혼을 지배하고 '소통' 이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내면화한다. "고립은 완전한 예속의 첫 번째 조건" 이나 개인을 철저히 비가시화시키고 예속을 강제했던 푸코의 규율권력과 달리, 정보권력은 모든 개인을 가시화하다 못해 투명하게 만들어 예속의 영속성을 공고히 한다. 이제 체제의 '지배' 는 의심받지 않는다. 감시가 '자유' 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장이라 여겨지는 디지털 커뮤니티는 실상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품에 불과하며,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의 불가해함과 목소리는 없애야 할 고통으로 치부된다. 눈앞의 고통을 치워버리기 위해 다양한 스크린 화면을 통해 진통제와 같은 '중독' 을 제공한다.


<투명사회>, <심리정치> 및 <에로스의 종말> 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저자의 전작 중 <심리정치> 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렇기에 이번 논의도 공감이 많이 갔고 책 자체가 아주 얇아서 좋았다. 특히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만큼 내 시간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논조가 와닿았으므로 SNS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라는 구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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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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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모습, 같은 언어, 같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모난' 모서리를 다듬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난 모서리를 '다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자 파시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서리는 곧 부정성이고, 부정성은 갈등이자 고통이며, 다름이자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부정하고 눈 감는 사회는 사회 내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고통 없는 사회> 이다.

 

고통은 언제나 지배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그렇기에 한 사회 내 고통이 지니는 현재성과 의미는 복합적이고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찍은 고통의 낙인이 곧 훈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전근대사회와 달리 규율사회로 지칭되는 산업사회는 학교 및 공장에서부터 고통에 무디게 하기 위한 훈련을 행한다. 노동자의 몸은 자본가가 가지는 권력이자 그의 자본을 증식시킬 본질 및 핵심이므로 노동자가 고통을 인식할 수 없도록 그 개념 자체를 뿌리 뽑는다. 언제나 세상에 대한 낯섦(부정성)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은 자본과 결합하여 '편하고 기분 좋은' 진통 효과를 만들어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고통에 눈 감은 사회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고통과 문제가 발현되어야 고통의 변증법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의식 속 고통의 존재를 의식과 인지의 영역으로 언어화시켜야 한다. 소외된 타자의 고통을 언어화시키고 가시화시켜, 우리 자신을 지속적인 불편함에 노출시켜야 한다. 진보란 타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사회에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내가 누구의 피를 밟고 덮어쓴 채로 지금 이곳에 현존하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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