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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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는 "취약한 사람이란 곧 취약한 조건 속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며, 취약한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 그 취약한 조건에 저항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그제야 그들을 둘러싼 이중성이 드러난다" 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겨레 출판에서 발행된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그 이후, 정부와 공기업의 계속되는 기만과 차별에 맞서 투쟁의 시공간을 이어간 톨게이트 노동자 12인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정규직화가 아닌 직접고용을 향한 투쟁. 한 사회가 의도적으로 비가시화하고 묵인하고 경멸하며 목소리를 빼앗았던 존재들, 결국 캐노피에 매달리게 만든 존재들. 캐노피에 올라서고서야 그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자격을 갖추고, 그제야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이도 많으면서, 결혼도 했으면서, 장애도 있으면서, 학력도 별로면서, 편한 일을 하면서, ···. 연령·성별·장애·학력 "차이" 를 이유로 "표 끊는 아줌마들" 이 어찌 감히 정규직화를 바라느냐 조롱하는 시선들. 능력주의라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들.

 

"지워지고 대체되어 마땅한 존재들" 이라는 압박 속에 <왜 싸우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뚜렷해진다. 정부와 기업의 자동화 시스템 구축은 무수한 대체 가능한 직업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동화라는 편리함으로 야기된 현장의 과잉착취는, 결코 대체 불가능한 존엄과 평등의 자격이 있는 구체적인 얼굴들이 존재함을 일러준다. 한 사회 속에 그 얼굴들의 존재를, 자리를,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필요한 연대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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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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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희귀 질병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외관을 가지게 하는 장애를 가진 클로이 쿠퍼 존스. <이지 뷰티> 는 그녀의 사유이자 세상에 대한 기록이자 성장 에세이인데, 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이유로 육체적 경험의 기회뿐만 아니라, 사랑, 섹스, 출산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통제하려 드는 사회를 경험한다. 특히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우생학적 논리를 들며 자신의 권리를, 존재 자체를 '부당한' 무언가로 낙인찍으려는 이들을 보며 분노와 무력감과 환멸이 뒤섞인다. 그녀는 세상이 그녀를 향해 내뱉는 '안돼' 혹은 은연 중의 네 존재 자체가 오점이라는 말에 반발을 하면서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려 외피 속 중립의 방으로 끝없이 숨어든다.

 

중립의 방에서 그녀는 수많은 생각을 펼친다. 특히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숱한 철학자들에 대한 생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예술품들을 떠올리고 마주하며, 현실 속 자신이 욕망하는 바와 저지당한 욕망을 생각하곤 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저지당한 욕망 중 하나였다. 현대 의학의 권위와 다름없는 의사가 클로이에게 "절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단언했었고, "그녀는 절대로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는 말을 내비치는 이들이 있었고, <그녀조차>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임신이 '있을 수 없는 일' 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클로이는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의 몸을 통해 사랑하는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태어난 아이와 함께 세상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다시금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고찰하게 된다.

 

신체적 장애와 그 신체를 둘러싼 일종의 사회 규범 및 시선의 정치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을 두고 네가 누구고 네가 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규명해주려 한다. 그들이 정한 기준과 다르거나 변형이 되어 있으면 오류로 결점으로 낙인찍는다. 개인은 살아가며 그런 생각을 내재화하고, 그렇게 자리 잡은 생각은 쉽사리 깨기가 힘들다. 저자는 그런 생각에 상처받을 때마다 과거의 철학과 예술로 회피하곤 했으나, 사실 이런 회피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삶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밖에, 타인의 생각 속에, 그리고 타인과의 대화 속에 있음을 무수한 철학자들과의 대화 속에 은연중에 깨달았던 거기도 하기에. 저자는 자신의 삶과 대조되는 버나드 보전켓의 "Easy Beauty" 라는 말을 제목으로 택했다. 일견 아이러니해 보이는 이러한 선택은 역설적으로 "Difficult Beauty" 라 여겨지는 삶이 드러내는 존재감, 가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장애와 젠더를 둘러싼 저자의 경험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에세이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시선을 파고 들어가 표현해 내는 언어도 놀랍다. 한 사람의 사유와 경험과 시선이 확장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동행하고 싶은 이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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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역사의 이면
조한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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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조한욱 교수님이 <차이나는 클라스> 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시는 편을 본 적이 있었다. 그 편은 프랑스 대혁명은 '대혁명' 이라고 일컫어질 만큼 인류사를 뒤바꾼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론 여성 혐오적 양상을 띠었던 미완의 혁명이기도 했다는 점을 알게 해 준 편이었다. 해당 회차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었기에, 선택도서를 고를 때 또 어떤 세계사 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기대하며 골랐던 책이었다.

 

짧은 에피소드 혹은 단상으로 이루어진 책은 기대했던 바와 같이 세계사와 관련된 이면, 혹은 인류사 진보와 관련된 '소소한' 사건과 관련하여 기술되어 있다. 각 챕터마다 '인종,' '환경' 과 같은 관련 키워드가 첨가되어 있고, 이 키워드가 기본 목차 외에 별도의 색인으로 쓰일 수 있도록 미주에 정리되어 있다. 연도별로 정리된 건 아니지만, 부담 없이 가볍게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소소한 지식을 쌓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법한 책이다.

 

교유서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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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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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틸러는 백인 청년이다. 아시안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다고는 하나 그게 무슨 대수랴, 그의 외관으로는 그 누구도 그의 인종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이며, 틸러 또한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부유한 백인 동네인 던바 출신이다. 어머니의 가출 후 틸러는 던바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고, 대기업 관리직인 아버지 덕분에 동네 친구들만큼 유복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저냥 만족하며 살곤 했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삶이 틸러 자신을 부유하는 삶을 산다 생각하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더불어 어머니의 가출은 무의식적으로 빈자리를 느끼게 만들었고, 그렇게 틸러는 채워지지 못할 결핍을 안은 채 현실에 발 딛지 못한 부유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틸러는 사업가 퐁을 만난다. 그는 자수성가한 아시아계 사업가로, 틸러와 다르게 어쩌면 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산 사람일지도 모른다. 틸러는 퐁을 따라 아시아로 사업 여행을 떠난다. 타국으로 떠난 일 년 간 틸러는 인생의 황홀경 및 쓴맛을 두루 경험한다. 그는 왜 퐁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걸까. 어쩌면 평범한, 너무도 평범한 삶을 부유하는 것에 지쳐 자신을 다른 이와 다르게 만드는 어떤 한 방울을 쫓아 퐁을 따라나섰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끝에 공항에서 틸러는 밸을 만나고, 그녀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은둔 아닌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밸은 남편의 범죄를 연방 정부에 고발하여 목격자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밸의 아들은 전 남편의 이름을 딴 빅터 주니어. 틸러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 여행 이전 미숙하고 방황하는 청년에 불과했던 그는 '타국에서의 일 년' 을 보낸 이후, 밸을 만난 이후, 자신이 직면하며 살 삶을 선택하고 정착하며 밸과 빅터 주니어를 지켜준다.

 

"나는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영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 이창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 7년을 집필했다는 작품. 감정의 끝단까지 파고 들어가는 예리한 묘사에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지 싶어서 감탄하곤 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끝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어구가 인상적이어서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했었다. 가제본 서평단이라 해서 작품의 일부만 보내주실 줄 알았는데, 알에이치케이코리아에서 전체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RHK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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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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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를 통해서 생물학을 위시하는 근대 자연과학이 주장하는 '객관성' 의 허구와, 그 신화가 체현된 영장류 실험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응하는 대안으로 '사이보그로의 정체성 선언' 을 주장한다.


"과학은 문화이다."


근대 이후 과학은 가설, 실험, 결과라는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자신의 객관성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과학자 개인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스며들어 있음을, 그것이 객관성의 이름으로 영장류를 비롯한 동물과 여성들의 신체를 무차별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할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 왔음을 폭로한다.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은 당대의 사회 및 문화가 인간 사회에서 알고자 하는 의구심을 해결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일견 "동물 세계에서도 그러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는 실험 결과들은 사실 당대 이념 체계에 의해 설계되고 구현된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이념 체계는 프로이트 및 진화론에서 비롯된 서구 남성/남근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후 국가사회주의, (군사주의적·가부장제적)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수많은 영장류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실험하고 차별하기에 이른다.


'우리' 와 '그들' 이라는 폭력적인 이분법은 나와 다른 존재를 타자로 낙인찍는 것을 정당화한다. 타자는 언제나 '괴물' 로 정의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괴물의 존재는 언제나 공동체의 한계를 드러낸다. 동물, 여성, 켄타우로스, 아마존, …, 그리스시대 폴리스로부터 비롯되는 서구의 남성중심적 세계관은 조화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식민화한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폭력적 이분법과 남성 지배하의 조화로운 존재에서 탈피하고자 스스로 "여신이기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선언한다. 근본 없고, 경건하지도 않은, 온갖 정체성이 이종교합 상태로 복잡다단하게 엮인 사이보그. 그 사이보그로의 선언 속에서, 끊임없이 읽고 쓰며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신화를 벗겨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원래 평소에는 출퇴근할 때 오디오북을 들으며 운전하는 편인데, 다른 책도 읽어야 하긴 했지만, 특히 이 책을 읽느라 몇 주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하하. 얼마 전 르몽드지에서 읽은 마녀사냥 편이 떠올라 그때 읽은 걸 곱씹으려 읽었고, 더불어 여성학적 측면에서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영장류에 대한 논의에서 사이보그 논의로의 전환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이후 도나 해러웨이에 대한 저서를 또 만나게 된다면 배경지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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