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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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체제는 심리정치를 통해 개인의 영혼을 지배하고 '소통' 이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내면화한다. "고립은 완전한 예속의 첫 번째 조건" 이나 개인을 철저히 비가시화시키고 예속을 강제했던 푸코의 규율권력과 달리, 정보권력은 모든 개인을 가시화하다 못해 투명하게 만들어 예속의 영속성을 공고히 한다. 이제 체제의 '지배' 는 의심받지 않는다. 감시가 '자유' 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장이라 여겨지는 디지털 커뮤니티는 실상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품에 불과하며,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의 불가해함과 목소리는 없애야 할 고통으로 치부된다. 눈앞의 고통을 치워버리기 위해 다양한 스크린 화면을 통해 진통제와 같은 '중독' 을 제공한다.


<투명사회>, <심리정치> 및 <에로스의 종말> 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저자의 전작 중 <심리정치> 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렇기에 이번 논의도 공감이 많이 갔고 책 자체가 아주 얇아서 좋았다. 특히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만큼 내 시간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논조가 와닿았으므로 SNS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라는 구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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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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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모습, 같은 언어, 같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모난' 모서리를 다듬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난 모서리를 '다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자 파시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서리는 곧 부정성이고, 부정성은 갈등이자 고통이며, 다름이자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부정하고 눈 감는 사회는 사회 내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고통 없는 사회> 이다.

 

고통은 언제나 지배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그렇기에 한 사회 내 고통이 지니는 현재성과 의미는 복합적이고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찍은 고통의 낙인이 곧 훈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전근대사회와 달리 규율사회로 지칭되는 산업사회는 학교 및 공장에서부터 고통에 무디게 하기 위한 훈련을 행한다. 노동자의 몸은 자본가가 가지는 권력이자 그의 자본을 증식시킬 본질 및 핵심이므로 노동자가 고통을 인식할 수 없도록 그 개념 자체를 뿌리 뽑는다. 언제나 세상에 대한 낯섦(부정성)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은 자본과 결합하여 '편하고 기분 좋은' 진통 효과를 만들어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고통에 눈 감은 사회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고통과 문제가 발현되어야 고통의 변증법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의식 속 고통의 존재를 의식과 인지의 영역으로 언어화시켜야 한다. 소외된 타자의 고통을 언어화시키고 가시화시켜, 우리 자신을 지속적인 불편함에 노출시켜야 한다. 진보란 타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사회에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내가 누구의 피를 밟고 덮어쓴 채로 지금 이곳에 현존하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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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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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사람, 장소, 환대> 는 '사람' 이라는 개념에 관한 저자만의 정의와 더불어 한 인간이 공동체에서 사람으로서 연기하고 수행하기 위해 얻어야만 하는 성원권과 성원권을 얻기 위한 인정투쟁, 성원권을 유지하는 것과 그에 대응되는 모욕의 의미, 그리고 '사람' 이라는 개념의 외연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과 사람은 같지 않다. '사람' 이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한 사회의 성원권을 기저로 하는 어떤 자격이기 때문이다. 사회란 개별 개인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며, 한 사회 내에서 사람으로 인정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어떤 이들은 사회 속에서 가시화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비가시화되기도 함을 지적한다. 저자는 태아, 노예, 군인, 사형수, 여성, 외국인 등의 예를 통해 억압과 배제의 역사가 어떻게 한 개인을 사람으로 현상하지 못하는 비가시화의 원리를 작동시키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 속 '조건부 환대' 를 따지는 것의 모순을 지적하며, 한 인간이 성원권을 획득하고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 자체로 <무조건적인 환대> 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사실 '사람, 장소, 환대' 의 개념에 대해 알고 싶어 읽었다기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고 이야기하는 근대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인간은 더 평등하다" 여겨지며,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낙인을 지고 살아가야만 하는지가 궁금해서 펼쳤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외부로부터 피할 수 없는 낙인이 찍혔으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욕망을 분출하는 캐릭터들에 이끌리는 편인데, 그런 인물들을 볼 때마다 어렴풋하게 마음이 쓰이던 것이 책을 읽고 개념적·이론적 토대가 다져진 것 같아 유익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 의 외연을 인간에게만 국한시킬 것인가라는 논의였다. 언어가 인간이 정의 내리기 나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도덕적 공동체는 인간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이 맞는가라는 건 언제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 봄직한 사안이지 않을까.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일독해서 뿌듯하다. 조금 더 내공을 쌓아 재독 할 것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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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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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해 일이 존재한다. 산재는 그 관계를 뒤집는다. 일을 하다 삶을 빼앗긴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는 故 이선호 씨와 故 김용균 씨를 비롯한 산업재해 희생자들의 죽음을 되돌아보고, 더 이상 구조에 의한 '일터의 죽음' 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주시해야 하고 사회적 기억으로 합의해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글이다.

 

책 전반의 얼개는 두 노동자의 죽음을 중심으로 (1) 어떻게 안전을 방치한 기업 구조가 노동자의 죽음을 조장하고 (2) 산재 사망사고의 유형은 어떠한지 (3) 산재 원인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의 면면으로는 무엇이 있는지를 기업, 정부, 노조, 언론을 중심으로 살핀 후, (4) 마지막으로 노동자 입장에서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구조 속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그 구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때, 구조 밖 존재인 양 개인적 문책을 당한다. 죽음의 이유는 마땅히 "그 조직의 안전관리가 어느 부분에서 실패했는가" 를 조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현실 속 관행은 으레 그 죽음을 "누가 잘못했는가" 라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그가 처했던 위험과 그의 죽음은 구조 밖으로 외주화 당하고, 그 누구도 그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산재 사건이 언론 보도를 타기 위해선 그의 죽음을 위해 구조에 맞서 싸워줄 동료와 언론을 비롯한 외부에 알릴 노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에 울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 지점에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터졌었다. 별이 된 이들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 답답하여 울분이 쌓인 까닭도 있지만, 나와 내 가족의 과거와 현재가 투영되는 것 같아서. 우리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책에 기록되지 못한 또 얼마나 많은 죽음과 아픔이 있을까 싶어서.

 

예방보다 사후 수습이 "더 싸게" 치기 때문에 돈을 주고 끝낸다는 마인드는 얼마나 저열한지. 그마저도 허망한 죽음을 개인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또 얼마나 무책임한지. "사고는 견고한 체계의 결과물이며, 산재는 누군가의 '실수' 가 아니다." 혹여 실수가 있었다 한들 인간은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실수는 우리의 디폴드 값이며 설령 실수하더라도 피해에 대해 처벌받기보다, 그 실수를 예방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아니 실수했다는 이유로 <죽지 않도록> 책임지는 것이 국가와 기업이 아닌가. 책임지려는 용기를 보이기가 어려운 면피 사회이나 회피할수록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인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의 두 명은 하루 평균 산재 사망자 수라고 한다. 읽기 쉬운 문체로 기자로서 보고 들은 걸 전달해 준 한겨레 신다은 기자에게, 더 이상 이 사회에 내 가족과 친구, 동료가 '당한' 죽음이 양산되지 않도록 지치지 않고 목소리 높이는 분들께 감사했다. 인류가 끝내 이룩해야 할 진보는 기술과 자본의 발달이 아닌, 안전이리라. 끊임없는 '왜' 라는 질문과 함께 그 목적을 향한 긴 여정("A long journey to safety")이 마침내 성취될 수 있길 바라며.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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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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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얻은 긴긴 휴가를 밀린 독서와 독후감 쓰기로 누려보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밀린 독후감이 많지만, 그 다짐의 시작은 코호북스에서 보내주신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에 관한 글을 쓰기로. 소개글에 워튼이 언급되어 있길래 군말 없이 신청했었는데 보내주셔서 감사했다.

 

미국 문학사에서 1920년대는 중요한 시기 중 하나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디스 워튼 등 내로라하는 문호들이 개성을 드러내던 시기였고, 그 속에서 이 작품의 작가인 부스 타킹턴 또한 소설로써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떨치던 시기였다고 한다.

 

작품은 앨리스 애덤스라는 인물의 부모를 그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자본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한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현실' 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옛 규범적 이야기들을 주절거리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 아버지, 자기가 아니면 딸이라도 눈에 보이는 화려한 현실의 변화를 좇아가며 살기를 바라지만 녹록지 못한 현실에 히스테리컬 하게 변해가고 있는 어머니, 누구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자각하는 듯 보이며 다소 무기력해 보이는 남동생, 그리고 주인공 앨리스 애덤스.

 

계층이 무엇인지, 자본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던 십 대 시절엔 누구보다 인기 있던 앨리스였으나, 성인이 되니 상황이 변해버린다. 얼굴만 예쁘면 되었던 시절과는 달리, '괜찮은' 배필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배경> 이 필수적이었다. 사교계에 진출하기 위해, 더 나아가 결혼을 하기 위해 그녀에겐 뒷배가 되어줄 배경이 필요했지만, 그녀의 가족은 그러한 '배경' 이 될 수 없었다.

 

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이상적 자아를 꿈꾸던 앨리스. 원하는 결혼 상대를 만난 이후 부유한 집안의 곱게 자란 아가씨인 척 거울 속 또 다른 자신을 연기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꼭꼭 숨기고만 싶었던 보잘것없는 배경을 조롱하듯 까발린다.

 

표지는 앨리스가 간절히 모으던 꽃을 형상화한 것일까. 러셀에게 앨리스의 실체가 밝혀지던 순간이 참 슬펐는데, 한편으론 작품의 끝이 앨리스의 수치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좋았다. 오히려 앨리스 자신을 감싸고 있던 몽상적 갈망이 깨지고 진짜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아서.

 

어려운 작품은 아니지만 오늘날 평범하지만 더 나은 삶을 욕망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작품인 것 같다. 무엇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앨리스들에게 사실 자본의 논리로 굴러가는 이 세계에서의 네 삶이 조롱당해 마땅한 삶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더 나은 삶을 욕망하며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자신을 좌절시킨 현실 속에서 성장하고야 마는 여성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

 

코호북스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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