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슬럿 - 젠더의 언어학 Philos Feminism 3
어맨다 몬텔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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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내가 문자를 이해하고 독해라는 걸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곤 한다. 살아오면서 내내 가려웠던 곳을 긁어주는 책이라든가 전례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파묻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문학이라든가 소위 말하는 '빨간 약' 을 먹게 해주는 책이라든가. 

난 어릴 때부터 개(같은)년이란 말을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여성이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도 있지만 개년이라는 말에 함의된 모종의 뉘앙스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미디어에서 통쾌하답시고 싸질러지는 욕들은 왜 죄다 여성혐오적인 욕들 밖에 없는 건지. 욕은 안 해도 티비 속 수많은 그녀들을 입방아에 올려놓게 만드는 멘트들은 또 어떻고. 이런저런 '불편함' 으로 한국 예능을 안 보게 된 지도 꽤 되었으나 그 덕에 내 정신을 지킬 수 있게 된 건 또 하나의 기묘한 아이러니다.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페미니스트 킬조이' 처럼 하나의 지침서이자 이론적 지지대라고 생각하면 좋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호주 전 총리 줄리아 길라드의 연설이 떠올랐다. 정치적 실책에 앞서 줄리아 길라드는 일국의 수상 자리에 오른 여성임에도 반대파 당수들로부터 '여성' 이라는 이유와 그의 사생활을 빌미로 공격을 당했었다. 수상의 자리에 있는 줄리아 길라드를 상대로 캣콜링을 행했던 야당 당수는 말로 반죽이 되다시피 했고 그때의 연설이 몇 달 내내 잊히지 않아 계속해서 찾아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여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걸레라고 불러라. 남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여자라고 불러라." 

언어는 문화의 정수이고 언어의 특징을 알면 그 나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 내 모든 문화에 스며든 여성혐오적인 워딩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말들은 언제나 성적인 의미가 덧붙여지고, 그렇게 덧붙여진 말들이 다시금 여성을 향한 낙인의 말이 되어옴을 사회언어학적으로 짚어간다. '나의 언어' 를 교정하려 드는 불쾌한 경험을 해본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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