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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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기 위해서는 '떠나고(leave)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재학하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만 21 세에 SBS 아나운서가 된 김수민 작가는, 약 3 년 동안의 방송국 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실패라 명명했다. 더 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아 한 선택이라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하지만 내게 '떠나고(leave) 싶은 상태'는 작가가 도망치고 현재 머무는 곳이다. 이십대 중후반의 아직 마땅히 직업이 없는 여성 말이다. 스물여섯에 취직이 아닌 퇴사를 하고 이 글을 쓴 작가의 삶을 실패라고 부른다면, 취직을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고 있는 스물여섯인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마음이 가난했고 행복하지 않았던 작가가 스스로를 되찾기 위해 퇴사를 택했다는 것을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냥 산뜻한 마음으로 이 글을 볼 수는 없었다. 작가가 스스로의 선택을 대단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했어도, 내 실패는 괜찮은 실패라고 말하는 글은 어쩐지 내가 상처가 됐다.


물론 작가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커리어를 시작했고, 시작한 상태에서 새출발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누군가가 나는 아니었다.


작가의 삶을 응원한다. 개인으로서의 당신도, 아내로서의 당신도, 엄마로서의 당신도 모두 응원한다. 어쩐지 씁쓸한 마음으로 말이다.


'실패'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실패한 사람이 아니니까. 당신이 실패한 사람이라면, 내 인생은 실패도 되지 못한 무언가가 되고 마니까. 내 눈에 당신은 이미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다.


(작가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 인스타그램으로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 내 인스타그램만 봐도 알 수 있건만 자꾸 마음이 옹졸해진다. 이게 무슨 실패야. 이게 무슨 실패냐고. 나는 부러운 것 같다. 최고점은 아닐지라도 인생의 고점을 찍어 본 사람의 삶이, 그리고 그 삶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안정적인 가정과, 그를 인정해 주고 있는 제도가 말이다.)



출판사에게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한히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저 미래의 긍정을 가불하며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언젠가 긍정이 동나면 파산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긍정이 가불해준 정신승리로 살다가 어느 날 억눌러오던 비관 인플레를 견디지 못하고 자기혐오의 늪에 빠질 내가 그려지자 눈앞이 아찔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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