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하리 남성 타자 학교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4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남아프리카 보츠나와의 가보로네에 탐정 사무소를 차린 '아줌마 탐정' 음마 라모츠웨.
<칼라하리 남성 타자학교>는 음마 라모츠웨를 주인공으로 하는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의 제 4탄이다.

음마 라모츠웨의 이제까지 삶은 이러하다.

아버지: 평화를 사랑하는 현명한 남자 오베드 라모츠웨. 여자였던 음마를 보츠나와의 어떤 남자에게도 밀리지 않는 당차고 멋진 여성으로 길러냄.
한번의 결혼 실패 경력 : 누구나가 사랑했던 재즈 뮤지션이었던 전남편. 가정에 무관심 하고 색과 약에 약했던 그는 음마 라모츠웨의 유산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일명 망나니.
현재의 정혼자 : 동네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자동차 정비소 주인 마테코니와 약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음.
현재의 직업 : 보츠나와 최초의 탐정 사무소인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를 창업, 바람난 남편 찾기, 잃어버린 첫사랑 찾기 등의 일을 돕고 있음. 최근 좋은 성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했으나 푸짐한 몸과 평범한 얼굴 때문에 취직길이 막힌 비서 마쿠치를 채용하여 회사의 기반을 더욱 견고히 다지는 중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는 보츠나와 최초의 여성 탐정인 '음마 라모츠웨'의 삶과, 그녀에게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전개된다. 탐정이 나오고, 외뢰인이 나오고, 뒤가 켕기는 사건들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비열하고, 피튀기고, 흥미진진한 스릴러가 살아있는 추리소설은 아니다.

탐정인 음마 라모츠웨가 의뢰인들이 부탁한 사람을 찾는 방식은 그녀가 사는 동네 만큼이나 투박하고 소박하다. 대체로 그 동네에서 가장 인맥 넓고, 남의 이야기 하는거 좋아하시고, 연륜 있으신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찾아가 '혹시 이런 사람 아세요?'라고 하면 대충 답이 나온다.(워낙 동네가 좁다.) 또 그 당사자를 만나서도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어요. 아무개씨 맞으시죠. 문패에 써있었어요.'가 전부다. 그러니 긴박감 있는 추리와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제 아무리 추리 섹션에 꽂혀있다 해도 절대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이 소설의 주제는 범인(예: 바람난 남편, 첫사랑 따위)을 '어떻게' 찾느냐가 아니다. 그 사람을 '왜' 찾으며, 찾아서 '또 어떻게' 할 것이냐도 아니다. 단지 외뢰인과 외뢰인이 찾는 대상자의 상처와 불신에 대한 안타까움, 측은지심, 그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 따위가 음마 라모츠웨와 이 소설의 최대 관심사이다.
그래서 모두가 해피엔딩일 수 있다면 음마는 가끔 선의의 거짓말도 한다. 이쯤되면 음마는 돈 받고 일하는 일개 탐정이 아니라 성격 좋고 맘 좋은 동네 아주머니 쯤으로 여겨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악질을 만나면 통쾌한 복수도 해준다.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음마 라모츠웨 이기 때문에.)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의 또다른 특이점은 남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일반적인 사회 속에서 능력자로 인정받는 남성은 이 소설 속에선 대접을 못 받는다. 작가는 엄청난 돈을 벌어도, 여자들이 줄줄 따르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져도, 관중을 휘어잡는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인간답게 살지 못하면 일개 '멍청이'로 치부해버린다. 오히려 작가와 음마 라모츠웨가 일관되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내를 위해 정원의 화단을 꾸미고, 고아원의 보일러 수리를 전담하고 있는 음마의 약혼자 마테코니이다.

또한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피해자 혹은 팜므파탈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여자들의 일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여성의 삶과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 바람난 남편을 쫓는 부인의 초조함, 난봉꾼 남자 때문에 상처받은 여자의 슬픔, 갑자기 반항기에 접어든 아들을 키우는 고민, 왕따 당하는 딸아이를 위한 해결법, 외모 때문에 취업이 안되는 여성의 좌절감 등, 어찌보면 참으로 신변잡기 스럽고 별것도 아닌 일로 치부될 수 있으나 엄마, 주부, 부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민거리가 될 수 있는 일들을 소소하게 서술해나가고 있다.

<칼라하리 남성타자 학교>에서도 그 특징이 고스란히 이어진다.
뺀질뺀질한 보조 수리공들 때문에 골치아픈 마테코니, 입양한 두 아이 때문에 걱정하는 음마 라모츠웨, 난생 처음 사랑에 빠진 마쿠치, 경제적 곤란을 타개하기 위한 음마와 마쿠치의 새로운 창업 아이템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거기에 새로운 의뢰인들이 맡긴 두 가지의 사건이 큰 줄기를 이루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이렇듯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책장을 덮게 해주는 작가의 배려가 감사하다.

앞으로도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나, 정부고위관리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 등을 의뢰해오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굵직한 사건이 아니어도 서민들의 삶을 곤란하게 하는 각종 사건들은 많이 있다. 사랑하는 개나 고양이가 사라지거나, 아들이 학교에서 맞고 들어왔거나, 나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셜록홈즈나 뤼팽이 들으면 코웃음 쳤을지도 모를 이러한 사건을 해결해주는 유일한 탐정이 바로 음마 라모츠웨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 동네에도 한 분 계셨으면 좋겠다.

해외에선 벌써 10권 넘게 시리즈가 나왔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쉽게 번역서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4권은 기대도 못했었는데 나와서 너무나 기뻤다. 앞으로도 5권, 6권 꾸준히 출간되어 음마와 음마의 친구들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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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롱이네 2009-04-0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너무 제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 같아서 추천하고 갑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