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파버
막스 프리쉬 지음, 봉원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줄거리    


호모 파버는 실용주의적이고 기술만능주의에 빠져있던 냉전시대 미국적 사고방식의 전형인 사람이다.
사람의 일은 확률 상으로 계산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일은 인간이 치밀하게 계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절대적 믿음 안에서 50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부인하고 신의섭리, 인간의 운명, 불가사의 등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불가항력적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꿈도 안 꾸는 남자라고 소개하는 그는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고, 예술이나 감정, 사랑 등은 무시한다. 그러나 그는 우연한 돌발행위로 타게 된 파리 행 유람선에서 만난 소녀 자베트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그녀가 헤어진 옛 애인 한나와 자기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음을 알게 된다. 
 


 내용상의 차이점  

  영화 「사랑과 슬픔의 여로」와 문학작품 『호모 파버』에서 처음 발견한 차이점은 제목이 다르다는 점으로써 소설의 제목보다 영화제목이 더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원작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름들이 영화 속에서 전혀 다르게 변해있었다는 점이었다. 구조에서도 둘은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데, 영화는 원작과 달리 액자식 구조를 띄고 있다. 영화 속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뉴욕이 아닌 아테나의 공항장면이다. 과거부터 시작해 파버가 죽음을 맞기까지를 되돌아보는 보고서형태를 띠고 있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현재에서 시작해 현재로 끝난다.  

  또한 영화에서는 원작과 같은 시점을 사용하였는데, 근친상간을 중심으로 한 멜로에 비중을 둔 영화에 특성에 따라 인물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는 1인칭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주인공 파버의 심리상태와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격적으로 내용면에서 살펴보자면, 원작에선 공항으로 주인공 파버를 마중 나온 아이비가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 아이비는 등장하지 않으며, 또 비행기를 타지 않기 위해 피해있던 화장실은, 원작에선 바의 화장실로 바뀌어 있었고 화장실에서 만난 뚱뚱한 흑인 여성도 영화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쟈베트의 애정표현을 보게 되면, 원작에서는 못 느꼈는데, 영화를 보니까 굉장히 적극적이라고 느껴졌다. 원작에서는 그녀가 먼저 다가가고 리드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었는데, 영화에서는 쟈베트가 방까지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여줌으로써 서로간의 사랑이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살을 한 쥬라킴의 모습을 원작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글을 써가고 있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에 다른 이야기와 과거회상의 장면들과 함께 섞어가면서 전체를 다 보여주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훼이버가 여행을 하는 장면에 이어서 바로 보여주고 있다. 결말에 다다르면, 이 둘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원작과 달리 영화는 오픈 엔딩을 선택하여 파버의 병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운명적 체험을 겪고 난 후 원점으로 되돌아와 망연자실 앉아있는 파버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어 원작보다 오히려 더 서사적이고 현실적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 단적이고 평이하게 전개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정거장의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 영화에서는 자베트의 죽음 후 인식의 전환을 일으키는 파버의 모습이 빠져 있다. 특히 두 번째 정거장에서 하바나 체류에서 다시 한 번 체득한 자연에 대해 달라진 인식과 죽음을 앞에 두고 이성 및 기술 중심적 사고에 등을 돌리게 되는 파국부분은 영화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영화는 파버와 자베트 사이의 근친상간 문제에 비중을 더 실으면서 소설이 던지는 실존적 질문에 시각을 맞추기 보다는 멜로적 성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할리우드를 주요 타깃으로 삼은 감독의 상업적 계산이 반영 된 것 같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관객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이야기를 쉽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풀어간 것 같다. 
  


 원작과 영화 중 ‘주제’가 어디서 더 잘 나타나 있는으며, 원작과 영화 중 어느 것이 더 좋았나? 


주제는 물론 원작에 더 잘 나타나 있다. 앞에서 말했듯, 영화는 파버와 자베트 사이의 근친상간 문제에 비중을 더 실으면서 소설이 던지는 실존적 질문에 시각을 맞추기 보다는 멜로적 성향에 초점을 맞췄다. 여태 보았던 문학영화 중 에서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했던 작품이었지만, 나는 소설이 더 좋았다. 영화는 원작에 담긴 영화적 글쓰기 방식을 너무 충실하게 재구성했기에, 그래서 오히려 신선함이 떨어졌고, 원작에 비해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특히 두 번째 정거장 부분이 완전히 삭제 된 점. 나는 소설에서 파버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에 대해 달라진 인식과 죽음을 앞에 두고 이성 및 기술 중심적 사고에 등을 돌리게 되는 모습 등 이 담겨있는 두 번째 정거장을 무엇보다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영상매체의 다양한 기능을 통해 반영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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