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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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을 잡은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지순한 사랑이 상대에겐 집요한 폭력이 되고, 배려는 친구에게 상심이 되며, 나의 수단이 상대에겐 감동적인 목적이 되어버리는, 대단히 매력적이며 독특한 구조에 퐁당 빠져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장편 소설『농담』은 1948년 체코 공산혁명 직후 혁명적 낙관주의가 강요되던 시대에, 제목 그대로, 한마디 '농담'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삶으로 내몰린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와 그러한 사회 자체가 악몽과도 같은 농담임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인용하고 풀이하면? 


 우선 소설이 장편이고, 내용면에서도 여러 챕터로 나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을 뽑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특이하게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거론하겠다.
 소설 전반에 걸쳐 여러 인물들을 통해 뚜렷하게 제시하는 고약한 관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젊음 혹은 어리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냉소이다.
 검은 견장 군대에서의 루드빅 자신과 알렉세이 그리고 중대장, 루체의 고향에서 루체를 강간하는 동갑내기 막내의 행동,

 루체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최연소였기 때문에, 루체는 용기를 내어 소년을 힘껏 밀어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제일 어렸기 때문에 누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소년은 자신의 그런 생각을 보여 주기 위해 루체에게 따귀를 갈겼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p.323)


 특히 헬레나를 사수하려는 인드라의 치기어린 행동들.

 이 어린애 같은 표정은 스무 살의 소년을 기쁘게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연령에는 실격이어서, 그에게 남은 것이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어린애다움을 감추는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예컨대 소년은 복장이나 행동거지로 그것을 감추려 했다. 그래서 그는 다신 만만한 듯이 약간 거칠게 굴고, 때로는 냉담한 무관심을 가장했다. (p.401)


 작가의 젊다는 것에 대한 반감은 검은 표지 부대에 새로 부임한 젊은 신임 중대장을 비롯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을 심문한 사무국 동료들, 마르케타, 제마넥 등의 모든 젊음에 대해 공평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중대장을 상대로 한 루드빅의 사유는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 무렵 나는 대장이라는 인물 속에서 복수심에 불타고 간계를 꾸미는 비열한 사나이를 발견했을 뿐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는 젊고, 그래서 잘난 체해 본 것뿐이었다.
 젊은이들이 그런 연기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죄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는 자신의 겉모습이 어리게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그 냉혈인 역할을 더욱 광신적으로 수행하려 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열심히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p.131)

 그런데 어쩌다가 나는 맨 먼저 이런 풋내기 배우와 부딪치게 되었단 말인가? 그림엽서 문제로 서기국에서 심문받았을 때 나는 겨우 스무 살을 넘었었고, 나를 심문한 그들도 나보다 고작해야 두 살 정도 위였다.

 그들도 역시, 자신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가면, 금욕적이고 의지가 확고한 혁명가의 가면으로, 자신들의 미숙한 얼굴을 숨기고 있는 애송이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p.132)


 그 외에도 연주회장 등 여러 곳에 등장하는 조연급 젊은이들 통해 그러한 냉소를 겹겹이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밀란 쿤데라는 유치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 쓰면서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을 한 두 마디로 요약해서 감상과 비평을 한다면? - 가끔 인생은 지독한 농담 같다.

 이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에 혁명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책을 덮으려고 했다. 근데 예상외로 잘 읽혔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니 사상이니 하는 말들이 나올 때 마다 내가 예전에 느끼던 멀미가 예상보다 매우 적게 일어났다. (더군다나 그것에 대해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래서 혼자서 뿌듯해 하면서 읽었다. 이 책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루드빅이 말할 때, 나처럼 괄호를 써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또한 한 부마다 시점이 바뀌면서 서술해 가는 것도 신선했다. 산뜻한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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