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줄거리  

 1738년 한여름 파리의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태어나자마자 그는 생선 내장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나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대신 그의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천재적인 후각의 소유자 그루누이. 처음 파리를 방문한 날, 그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 후,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주세페 발디니를 만나 향수제조방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간절해진 그는 마침내 파리를 떠나 ‘향수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그라스로 간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향수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사람냄새를 증류할 수 있게 되고,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젊고 아름다운 처녀들만을 골라 살인을 저지른다. 

 

  내용상의 차이점    
 

 영화와 소설에서 처음 발견한 차이점은 주인공 그르누이의 외모이다. 원작의 그르누이가 추한 외모와 성장 환경으로부터 비롯되어 사람들로부터 인간이하의 쓰레기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캐릭터라면, 영화 속 그르누이는 그런 면은 조금 줄어들면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은 가운데서도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눈망울을 통해 광기어린 천재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듯했다. 내용면에서 살펴보자면, 영화의 경우 첫 장면을 그르누이가 선고를 받는 부분부터 시작하는데, 소설에서는 클라이맥스 직전의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즉 영화의 경우 선고를 받는 부분을 먼저 보여주고 그 원이 되는 과거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기법을 이용함으로서 관객들이 2시간여 동안 소설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해야 하는 것을 돕고 있다. 그리고 내용상 가장 쉽게 눈에 띠는 차이는 몽펠리에 이야기의 통 편집이다. 시간이 한정된 영화에서는 빠른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느슨한 전개를 보인 이 부분을 과감히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내용 전개는 원작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를 재현시켰다. 그러나 그르누이라는 주인공에서 이 둘은 미묘하게 어긋난다. 처음 살구 파는 소녀 살인 장면을 보면, 소설과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짐승과 같이 소녀를 숨어 지켜보며 먹잇감을 노리듯 그녀를 노린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는 오히려 사랑을 찾은 소년의 모습에 가깝다. 또한 원작과 다르게 그 장면에서 소녀는 그르누이에게 말을 걸기까지 한다. 물론 소설에서처럼 그는 소녀의 향기에 집착하며 소녀의 몸 구석구석의 향기를 맡지만, 개인적으로 그것은 사랑을 모르는 소년이 어찌 할 바 모르는 모습과 같이 보였다. 이 후, 영화 중간 중간 그르누이는 살구소녀와의 만남을 회상한다. 마치 사랑했던 옛 연인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마 감독은 영화 속 그르누이를 좀 더 감정적인 인물로 표현한 것 같다. 이외에 살구소녀와의 만남에서의 발견했던 차이점은, 원작에서의 소녀는 오이를 팔았었지만, 영화에서는 살구로 바꿨다는 것. 향기와 새콤한 식감을 좀 더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서 소녀가 파는 것을 오이보다는 과즙이 뚝뚝 흐르는 과일로 바꾼 것 같다. 결말에 다다르면, 소설과 영화는 매우 미묘한 부분에서 어긋나듯이 다르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그르누이는 자신이 뿌린 향수를 맡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죽인 소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그르누이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일종의 깨달음인 것 같다. 그녀를 죽이지 않고 서로 사랑했더라면 영원히 그녀의 향기를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며, 또한 자신이 담아두고 싶었던 것은 그녀의 향(체취)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었음을 말이다. 이 장면을 보고나서 그르누이에 대하여 조금은 측은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래도 감독은 영화 속 그르누이를 좀 더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인물로 표현하여 그 역시 결국은 외로움을 느낄 줄 알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면모를 깊이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에게 동정과 더불어 감정이입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 같다.

 

  원작과 영화 중 ‘주제’가 어디서 더 잘 나타나 있으며, 원작과 영화 중 어느 것이 더 좋았나?  

 

 주제는 물론 원작에 더 잘 나타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는 소설의 부제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뛰어난 후각의 소유자 그루누이 보다는 살인자 그루누이에 더 비중을 둔 것 같다. 소설에서의 그루누이는 냄새라는 자기의 타고난 운명을 끝가지 추구하다가 살인까지 하게 된 것이라면, 영화에서의 그루누이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살인을 하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여태 보았던 문학영화 중에서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했던 작품이었지만, 나는 소설이 더 좋았다. 영화 '향수'는 영화적으로는 평범했고 소설의 영상화로는 너무나 부족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킁킁 거리면 향이 날 것만 같았는데. 영화는 나처럼 책에 매료된 독자들의 상상력에 조금은 미흡했다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느낌을 말하라면 원작을 읽은 독자를 위한 영화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듯하다. 보는 중간 중간에 소설에서의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영화는 소설에 굉장히 충실했지만, 그만큼 생략에 의해 결말이 조금은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다. 즉,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라면 결말에 대해서 수긍을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소설 속의 장 바티스트는 냄새에 대해서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서 향수 제조에 매달린다. 그리고 스스로 실패도 하게 되고, 급기야 살인이란 것을 저지르면서 향수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도 완벽하게 향수의 달인으로 나온 영화 속의 장 바티스트는 살인에 대한 정확한 의도가 나오지 않고 있다. 당연히 일대기적인 소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략을 해야 하지만, 살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야기 전개는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에게는 그저 한 미치광이의 미친 짓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 같더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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