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브]는 바로 전에 읽은 [냉소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책이었다. [냉소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치를 말했다면, [차브]는 허물어져버린 노동계급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엉겨붙어서 책을 읽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슬픔과 분노 속에 읽어내려갔다. 망해가는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득세하는 '여성혐오'가 [차브] 주위를 어른거렸다. 영국만의 상황이 아냐. 이건 나 자신의 현실이야.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구나.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그러나 이런 악마화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의제를 갖는다.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의는 특정한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이 빈곤이든 실업이든, 혹은 범죄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서진 영국(Broken Britain)에서 희생자들은 자기 자신들 말고는 탓한 사람이 없다."(270쪽)


이 책에서 말하는 노동계급은 전체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포괄하는 하위 노동계급에 가깝다. 이들의 문화에 관해서는 미국 얘기지만 [학교와 계급재생산]도 연결해서 읽어볼만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수많은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들은 '차브'라는 캐리커처를 특징짓게 됐다. 유모차를 미는 10대들, 깡패, 무책임한 성인들. 이런 것들이 많은 이들에게 '차브'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존재들이다. 미디어와 인기있는 연예 프로그램, 그리고 정치적 기구들은 이것들이 도덕적 이슈이며, 교정되어야 할 규율 결핍의 산물이라고 집요하게 우리를 몰아세운다. 희생자들을 비난함으로써 약물, 범죄, 반사회적 행동과 같은 사회문제들의 배후에 자리잡은 진짜 원인들은 의도적으로 은폐돼왔다. 한마디로 증상이 원인과 혼동되어온 것이다. 가장 고통을 받는 커뮤니티들이야말로 대처리즘에 의해 촉발된 계급전쟁의 최대 희생자들이다."(286쪽)


심리적인 타격이 커서 당분간 이런 류의 책을 고르지 않으려고 하는데, 여성운동, 정당운동, 노동운동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백인 하위노동계급 남성'이 소수인종화되는 것을 통해 극우정치와 여성혐오, 노동계급의식의 약화를 총체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므로.

핵심은 사회에서 정치경제적 힘으로 존재하는 노동계급을 지워버리고 그것을 개인들, 또는 기업들의 집합으로 대체하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투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지위향상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영국에서 모든 사람은 사다리를 오르려고 열망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개념으로서의 계급은 제거된 반면, 실제에서의 계급은 강화되었던 것이다.(72쪽)

"희망이고 어쩌고 하는 건 다 헛소리에요. 무언가를 희망한다는 건, 그것을 알고 이해할 때에나 가능한 거니까요."(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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