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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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봐서는 어느 기독교인의 간증 에세이 같기도 한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이기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의 표제작이다. 만화적인 표지 일러스트를 보건대 우스꽝스러운 내용이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펼쳐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경책과 같은 구성이다. 이 소설은 성경과 마찬가지로 장과 절로 되어 있고, 페이지 디자인마저 성경처럼 2단으로 해놓았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미디어가 범람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문자 텍스트를 부여잡고 있는 소설이 어떤 형식을 취해야 하는지는 모든 소설가들이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기호는 그에 대한 나름의 응답으로 '성경'을 빌어온 것 같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에는 표제작 외에도 랩 가사를 여기저기 들여온 '버니', 피의자 질의응답으로 되어 있는 '햄릿 포에버'처럼 소설 형식에 대한 작가의 분투를 볼 수 있는 소설들이 있었다.


성경을 차용한 것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문체를 구사하는 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하기를", "~하되", "~하더라", "~나이다" 등의 어미만을 사용해서 작가의 특징이 드러나는 문체를 쓸 수 있을지의 문제, 문장 하나당 한 절인 것이 아니라 때로는 두세 문장이 한 절에 때로는 한 문장이 두 절에 걸쳐서 등장하는 것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틀에 박힌 형식 같지만 거기에도 이기호라는 작가 개인의 표지가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형식이 다소 새롭다고 해서 무조건 신선하다거나 좋은 소설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주인공인 '최순덕'이라는 인물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엄숙해야 할 성경과 신앙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틀고 있다. 성경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기에 차츰 속살을 들여다볼수록 독자가 키득댈 수밖에 없는 효과를 빚어낸 것이다. 최순덕은 소설 내의 타인들, 소설 밖의 타인(독자)들이 보기에는 매우 답답하고 진지한 인물인데, 스스로 진지한 인물만큼 희극적인 인물은 없는 법인지라 소설 내내 웃음을 유발한다.


또 하나의 중요인물인 바바리맨 '아담'이 순덕과 짝을 이루면서 소설의 희극성은 한층 배가된다. 아담은 어머니 약값, 아이들 학원비에 시달리는 간호조무사 학원 총무다. 남성의 상징인 성기마저도 작고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왜소한 인간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담이 순덕보다 사회적으로 나은 인물일 수도 있다. 순덕은 대학도 떨어지고, 변변한 직장도 없으며, 신앙을 빙자해 현실 도피를 하는 인물이다. 아담은 직장과 가족이 있지만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흔하디흔한 인물이다. 두 인물 모두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 자신이거나 주변 사람들과 조금씩 겹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독자들은 깔깔대던 유머에서 코끝 시린 페이소스로 나아가게 된다.


최순덕이 '()'을 상징한다면 아담은 '()'을 대변할 텐데, 삶의 속속들이 성스러움으로 시종하는 순덕의 삶이 눈물 어린 웃음을 자아내는 것만큼이나 삶의 무게에 억눌려 있는 노출증 환자의 삶도 알싸한 웃음을 선사한다.


두 남녀의 결합으로 인해 속에서 살면서도 성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라는 생각이 뒤집힌다. 결말에 이르러 최순덕과 아담이 야채 행상을 하며 신실한 부부로 사는 것이 순덕이 비로소 현실에 뿌리내린 것인지 또는 아담에게 참다운 구원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작가는 범속한 것이 성스럽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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