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의 랑데부 동서 미스터리 북스 54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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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던진 벽돌에 근처 사는 한 남자 교사가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약간 특이한 사건이다보니 뉴스나 신문 사회단신에 소개되어서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뒷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옆에 같이 걸어가고 있던 사람이 누구 남편이라더라, 한발 차이로 죽음을 면했다 등등.

결론적으로 초등학생이 한 일이고 살인의 의도도 전혀 없었으므로 특별한 처벌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다만 이 초등학생의 집에서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살던 집 전세금을 빼서 2~3천 정도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은 교사의 아버지가 이 돈을 받지 않고 돌려 주면서 아이나 잘 키우라고 했다네요. 전달할 수 있는 돈이 살던 집 전세금 정도밖에 없는 집이고보니 넉넉치 않은 살림임은 분명한 터고, 또 나중에 아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처도 배려한 것일 테지요.

오늘 문득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부>가 생각났습니다. 사냥을 위해 비행기에 탄 남자들, 그 가운데 하나가 부주의하게 술병을 창밖으로 떨어뜨리고, 그 술병에 맞아 한 여성이 죽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복수를 다짐하지요.

소설에서는 그 술병을 던진 남자가 약간 부도덕한 남자였다고 부연하고 있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그도 살인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때 그 비행기에 함께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인자의 처벌을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한 오이디푸스는 그 모든 일이 본인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임에도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형벌을 달게 받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를 처벌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면서 밀란 쿤데라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결론을 맺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처벌할 수 없을까? 우리가 모르고 쏜 화살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 가서 박혀 있을까? 저는 가끔 괴로운 일을 겪게 되면 예전에 내가 모르고 지었던 죄가 돌아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벌 받는다라는 말보다 죄 받는다라는 말을 더 자주 쓰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참으로 소설같은 이야기, <상복의 랑데부> 작가만이 상상할 법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소설은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것, 또한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이는 평생 멍에를 지고 살 것입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은 했을만한 장난을 친 것뿐이지만 한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2004년 2월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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