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그들이 또 나를 찾아왔다.

늘 그랬듯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내 침대 앞에 섰다.

늘 그랬듯 나도 몸이 굳은 채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까맣게 타버린, 머리 없는 몸뚱이들을 두 눈으로 마주했다. 이번에도 그는 내 귓가에 대 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너도 나와 같아.

한밤중에 그들과 만나는 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식은땀이 흘렀다.

그들이 아무 말없이 떠난 뒤에야 나는 맞은편 침대에서 두 위杜宇의 잔잔한 숨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창밖에서 서늘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기숙사 안에 가득하던 불길은 사라지고 썰렁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나는 힘겹게 몸을 뒤척이며 베개 밑에 둔 군용 칼을 손으로 더듬었다. 투박하고 다소 굴곡이 있는 칼자루가 느껴지자 서서히 호흡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가끔 나도 사범대학에 가보곤 했다.

학교에 가면 제2남자기숙 사 문 앞 화단에 앉았다. 예전에 그곳엔 오래된 회화나무가 한 그 루 있었는데, 지금은 가지각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미풍에 몸을 맡기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7층 높이의 화학과 학생 기숙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예전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색이 바란 붉은 벽돌, 흔들흔들하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목 재 창문, 페인트 자국이 얼룩덜룩한 철제 대문. 그리고 이 건물을 드나들던 새파란 젊은이들. 나약한 감정에 크게 한 대 얻어맞기라 도 한 것처럼, 순간 열린 기억의 수문으로 걷잡을 수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말수가 적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걷는다.

수업을 들을 때도 다른 사람과 함께 앉는 걸 꺼린다.

내게 다가오지 마. 나는 눈빛으로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지만, 나는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성격, 천성, 생활 습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만약 교실, 식당, 교정에서 창백하고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 을 살피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일 것이다.

 

 

나는 J대학 난 위안南原 5기숙사 B313호에 산다.

내 룸메이트는 대학원에서 법리학을 전공하는 두위다. 같은 방을 써서 그런 지, 두위는 법대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두위는 내가 외로워 보일까 봐 늘 옆에서 챙겨 주었다. 사실 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두위와 그의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교스러운 여자 친구와 이야기하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이, 같이 먹자.”

 나는 양푼을 들고 고추장을 넣은 비빔국수를 먹으며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뜬 사진과 밑에 적힌 설명을 보느라 집중해 서 두위와 그의 여자 친구가 기숙사에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어느 새 내 눈앞에는 고춧가루와 찌란紫煙, 향신료의 하나 가루를 뿌린 갓 구 운 양꼬치가 누런 기름을 줄줄 흘리며 탄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걸 보자 내 안색은 등 뒤의 벽 색깔보다 더 창백해졌다.

 두위 가 눈앞에 들이민 양꼬치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목구멍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곧 반쯤 먹은 점심이 손에 들고 있던 양푼으로 쏟아졌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토사물로 가득 찬 양푼을 들고서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윽고 등 뒤에서 천야오陳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저래?” 나는 힘없이 화장실 세면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대충 얼굴을 물로 씻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군데군데 얼룩이 진 벽거울에 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눈빛은 흐리멍덩했고 입가에는 미처 닦지 못한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두위는 난감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야오야오도 방금 전까지는 네가 왜 그러는지 몰랐어. 근데 네가 컴퓨터로 뭘 보고 있던 거 같아서 자기도 따라 보더니만 결국 저렇게…….”

나는 두위 말에 대꾸도 없이 곧장 컴퓨터 앞으로 갔다.

내가 보고 있던 화면에 사진이 몇 장 있었다.

그중 한 장은 썩어 뭉개진 머리, 두부頭部와 목의 피부가 벗겨진 사진이었고, 나머지 세 장은 각각 피해자의 사지가 절단된 몸통, 왼팔과 오른팔 사진이었다. 2000년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하드 디스크에 있는 심각한 시신 훼손이라는 이름의 폴더에 저장했다. 나는 일어나서 천야오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괜찮아?”

 

심한 구토로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천야오는 나를 보더니 순간 질겁하며 뒤로 움츠렸다.

가까이 오지 마!”

천야오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이내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두 글자를 내뱉었다.

괴물!”

야오야오!” 두위는 버럭 소리를 질러 제지하면서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두위를 보며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괴물인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 이름은 팡무方木,

 2년 전 발생한 재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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