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스 컷

 

우타노 쇼고 장편소설

이연승 옮김

 

 

 


시끌벅적한 환호성 속에서 고스게 니나는 양손으로 스웨트 셔츠를 붙잡고 훌렁 벗어 던졌다.

 E컵으로 추정되는 가슴이 히비스 커스가 그려진 튜브톱 안에서 출렁인다.
“오오!” 하는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뒤이어 손 휘파람 소리가 삑삑 울려 퍼진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남자도 있다.


“니나! 니나! 니나!”


기세가 더해진 환호 속에서 니나는 트레이닝 바지 허리춤에 양손을 집어넣고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무릎 아래까지 내리더니 능숙하게 발가락을 움직여 벗어버렸다.

탄력 있는 장딴지, 적당히 살집 있는 허벅지, 그리고 하이레그 비키니 팬츠가 드러나자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좁은 코인 빨래방 안에 울려 퍼진다.


니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셀카 각도에서 손가락을 턱에 대고 V자 마크를 그리고는 다시 등을 돌려 눈앞에 있는 둥근 의자에 오른쪽 다리를 올렸다.

뒤이어 왼쪽 다리도 올려 좁은 의자 위에 올라선다.

큼지막한 엉덩이가 탄력 있게 흔들린다.

 

 

 
의자 너머에는 뚜껑 열린 세탁기가 있다.

니나는 아이가 담장 기어오르듯 세탁기 가장자리에 다리를 걸치더니 “영차” 하는 소리와 함께 세탁기 안으로 들어갔다. 세탁조 지름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형 세탁기다.

통통한 몸이 여유롭게 안에 담긴다. 니나는 허리를 조금 숙여 세탁기 가장자리에 양팔을 대고 그 위에 턱을 살짝 얹었다.

마치 욕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자, 그럼 온수를 채우겠습니다.”
오리타 유토가 샌들 소리를 터벅터벅 울리며 세탁기로 다가가 손뼉을 한 번 치고 100엔 동전을 넣는다.

 

“앗, 차가워!”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니나가 세탁조 안에서 일어섰다.

주수구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그녀의 등을 직격하자 열아홉 고운 피부 위에서 물줄기가 솟는다.
“온수가 나온다고 적혀 있는데.

 

 

유토가 세탁기를 확인한다. 껌을 짝짝 씹고 있다.

“뭐가 온수야. 그냥 찬물이잖아, 찬물. 덜덜덜. 응? 좀 따뜻해진 것 같네?”
니나는 호루스의 눈 문신을 새긴 어깨를 양팔로 감싸고 허리를 숙여 다시 세탁조 안으로 들어간다.
“니나, 스마일, 스마일. 여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멍키미아 해변에서 돌고래랑 놀다가 호텔로 돌아가 욕조에서 편히 쉬는 그런 느낌으로.”
구석의 둥근 의자에 앉은 작은 체구의 젊은 남자 구스노키 고타로가 주문을 덧붙인다. 셀카봉에 장착한 스마트폰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여긴 도쿄야. 하물며 빨래방 안에서 무슨.”
“네, 네. 손님. 그럼 이것으로 잠시 해변에 온 기분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허리를 숙이고 양 손바닥을 비비며 세탁기로 다가가는 장신의 남자는 이시하마 스미야다. 입욕제가 든 작은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세탁조에 투입한다.
“그런 느낌 전혀 안 나는데.”
니나는 짙은 파란색으로 물든 세탁조 물에 손가락을 담가 스미야를 향해 물방울을 튀긴다.
“야, 뭐야!

 


“겨우 한 방울 묻은 거 가지고. 난 지금 온몸이 다 젖었어.”

“넌 수영복 입었잖아.”
“그럼 너도 벗어.”
“그래? 벗고 같이 들어갈까? 그럴까?”
“죽는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유치한 말다툼 소리를 지워 없앤다. 보아하니 입구 유리문이 열려 있다.


“아, 추워. 바람.”
유토가 바깥에 있는 사람 그림자를 노려봤다.

그러자 잠시 후 유리문이 다시 조용히 닫혔다.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줄게. 스마일, 스마일. 불고기? 초밥?”
고타로가 니나의 비위를 맞춘다.
“빙수.”
“빙수? 이런 미친 추위에?”

가을비 전선의 영향으로 장마 비슷한 날이 이어져 이제 막 10월에 접어들었는데도 옷을 껴입고 있다.


명절 때 세 시간 기다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욕하면서 돌아간 니코타마의 거기, 이렇게 추우니까 이제는 줄 안 서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니나는 입술 끝에 검지를 대고 요염한 자세를 취한다.
그때 다시 빨래방 안에 찬 기운이 들어왔다.

“아, 춥다고 했지!”
유토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세탁물…….”


입구에 선 사람이 중얼거리면서 대답했다.


“뭐?”


“찾으러 왔습니다, 세탁물. 제 거를…….”


“얼른 챙겨서 사라져.”

 

 

 


그러자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주뼛주뼛 들어와 건조기로 향한다.
순간 요란한 알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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