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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평점 :
경제학과 관련하여, 읽기 쉬우면서도 시의성 있는 책을 보고 싶어서 이 책을 구매했다. 책을 받아들고 목차를 보면서 갸우뚱했다. 제목을 다시 읽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제목과 어긋난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출판사 소개서나 목차를 보지 않고 제목과 저자만 보고 쉽게 산 것은 내 실수였다. 이 책은 애초 내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의 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경제를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경제학 분야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거나 경제학적 분석이 주를 이루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학자이자 교수, 그리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지닌 상식으로 정부, 언론, 각개각층의 시민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의 글쓰기를 모은 것이라고 보는 게 낫다. 실제로 책은 이준구 교수의 경제학계 내의 이론적 입장을 담은 논문류의 해설, 축약이기보다는 신문 지면의 칼럼이나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던 글을 묶은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논란 거리인 여러 사안들, 이를테면 대운하사업(녹색뉴딜, 4대강 정비로 이어지는), 종부세, 영어몰입교육, 한미FTA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학 이론을 끌어와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거나 저자에게 있어 가장 자신있고 믿음직한 경제논리로 각 사안들에 얽힌 사회 제 분야를 섣불리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가 유독 자주 쓰는 단어는 '상식'이다. 저자에게 있어 환경에 인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게 환경에 결코 좋을 리 없다는 것은 상식이며, 장기간에 걸쳐 집을 지어야 하는 주택공급책이 단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주택가격 폭등과 주된 상관 관계를 갖는다고 여기는 건 비상식적이며, 대다수 서민층보다 소수의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어 사회 양극화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불어 주로 정부의 정책논리, 추진과정을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시장주의자로서 저자는 정부가 시장을 시장답게 만드는 일,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에 따라 참여정부의 경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욕, 시장과 여타 분야에 대한 균형 감각을 잘 잡지 못한 점을 문제삼고, 현 정권의 경우는, 시장을 찬양하여 자신의 일을 방기함으로써 시장은 물론이고 사회 제 분야들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일관적이고자 노력하는 게 느껴진다.
이러한 저자의 글쓰기 작업은 저자가 스스로 말하듯 굳이 MB정권에 '악감정'이 있거나 이념적으로 '좌빨'이라 못 되라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논리, 정부를 지지하는 언론의 논리를 합리적으로 따지다 보니 문제가 있어 지적하고, 그들에게 되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무조건 맞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가 거친 부분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려깊은 부분도 많다. 자신이 주장한 것에 문제가 있으면 자신을 설득시켜 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저자의 상식,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무엇이든 진보니 보수니 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생각하던 게 얼마나 비효율, 비합리, 비생산적이었는가 새삼 탄식하게 된다. 섣불리 이념적으로 재단하거나 낙인찍은 후에 눈과 귀와 입을 막아버리는 일들이 아직까지 팽배한 것이 걱정도 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논리와 의견들이 모세혈관처럼 정치하고 자유롭게 흐를 수 있어야 건강하고 밝은 미래가 있는 사회가 아닐까. 저자의 책과 비교했을 때, 한 번의 투표, 여론조사 따위로 '국민의 동의'란 걸 너무나 쉽게 들먹거리는 정부나 언론들의 말하기/글쓰기 행태가 떠올라 분노하게 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바라는 것은, 거수기로 취급받으며 무시 당하거나 일방적인 소통 창구가 아니라 몇 마디 말이라도 서로의 진실, 서로의 진심이 외면받지 않으며 오고 갈 수 있는 소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