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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가 돌아왔다.
<퀴즈쇼> 이후로 5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이다.
김영하는 그 이름만으로도 무조건 구매하게 되는 나의 무한신뢰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퀴즈쇼>는 김영하라는 작가에게 푹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었다.
10대의 마지막과 20대 시작을 인터넷 통신에 푹 빠져지냈던 나에게 너무나 신선한 이야기였고,
중간중간 퀴즈로 주고받는 그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박학다식함에
매번 놀라워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해줄 일이 생길 때마다 빼놓지 않고 추천하는 책이다.
(더불어 비슷한 류의 장강명의 <표백>도 추천하는 바이다.)
오매불망 그의 재기 발랄한 글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나온 신간..그것도 장편소설!
어떤 정보도 없이 무조건 구매한 이 소설의 첫 느낌은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가사와 같은 제목,
그리움과 애틋함이 느껴지는 표지.
김영하가 그리는 연애소설 정도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 김영하잖아.(김영하와 연애소설은 왠지 안어울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고아가 이번에도 등장한다.
그는 결핍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다. 『검은 꽃』의 이정, 『퀴즈쇼』의 민수가 그랬다. 『빛의 제국』의 기영 역시 낯선 땅에서 스스로 습득한 규칙과 정보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중앙일보 INT, 12.03.03)
그의 작품에서 고아란 결핍이 아닌 통제가 없는 선택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제이도 그러했다. 작가는 원래 책의 제목을 "무숙자 소년의~~(정확한 제목이 기억이 안난다..;;)"
로 지으려 했다고 한다. (결국 무숙자가 노숙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고 하지만)
제이는 고아로 태어나 무숙의 삶을 살아가고, 동규는 그렇고 그런 가정 불화를 겪으며
스스로 고아적(孤我) 삶을 택한다.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제이와 동규,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던 동규의 마음을 읽어주던 제이.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또다른 자아로 성장하게 된다.
(동규는 제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소개하지만 난 이 부분이 이해가 안갔다.
무엇이 제이와 동규를 이렇게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했는지 나에겐 설득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님 동규의 아픔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동규는 그렇고 그런 평범함을 가장한 가정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제이는 홀로 무숙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불량 청소년들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죄책감 없이 행해지는 폭력, 폭력으로 정해지는 서열, 하루를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아이들,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런 생활이 여과없이 그려진다.
사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제일 힘들었다.
왜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써내려가야 하는건가.
가르침과 통제가 없는 청소년기란 이런 것인가.
김영하라는 작가는 그 어떤 작가보다 동시대인들과 자주 소통하고, 흐름을 반영하는 작가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오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껄끄럽기까지 했었다.
결국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이 부분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내가 듣지 못했던, 그들의 또다른 목소리였다는 것을..
제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물의 아픔을 읽는 신비스런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영적인 모습이 좀 더 서술되길 바랬지만 결국 동규와 제이는 폭주족이라는 또다른 청소년 문제로 변신한다.
제이의 사라짐이 그나마 영적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묶음만 계속 되고 풀어줌이 없어 읽는 동안 조금은 답답함을 느꼈다.
소설이란 것이 꼭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재의 신선함, 이야기 풀어감의 재미, 유려한 문체, 강렬한 메시지, 화두의 제공
이 중 하나만 만족시킬 수 있다면 나에겐 좋은 소설이다.
그런 면에 있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나에게 소재의 신선함과 화두의 제공이 긍정적이었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었고, 조금은 충격이었고, 조금은 힘들었다.
그리고 트랜디한 김영하는 좋지만 트랜디한 문체를 쓰는 김영하는 아직 부담스럽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밧줄을 타고 사라진 어린 조수, 피가 흥건한 현장에 홀로 남겨진 소년.
제이와 동규.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고통의 목소리.
어떤 목소리를 들었어. 이건 내 운명이야.
"가끔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것과 다른 것이 도착하는데,
실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을 꺼야.
바로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