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야. 지금 뭐 해? 잠깐 나올 수 있어?"

6화 '누구 맘대로 노처녀래'에 나왔던 20살 같은 30살 동생(줄여서 '이사미')으로부터 급호출을 받았다. 평소 애교 많고 늘 씩씩한 사미답지 않게 목소리가 축 처져 있어서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했다. 몇 분 후 만난 사미는 예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 주변 1미터의 조명을 사라지게 만드는 다크한 아우라를 뿡뿡 뿜어내고 있었다. '일단 입에 뭘 좀 물려야겠군.'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당분 섭취로 기분을 업시켜야 한다. 달달한 핫초코가 맛있다며 베시시 웃는 사미에게 물었다.

"사미야, 무슨 일 있었어?"

"하...언니, 접때 엄마가 나보고 노처녀라 그랬던 거 기억해?"

"응, 당근. 그래서 내가 요즘 시대에 서른은 절대 노처녀가 아니라고 전해달라했잖아."

"엄마가 문제야... 엄마가..."

사미는 고개를 저으며 크게 한 숨을 쉬고는 남은 핫초코를 쭉 들이켰다

"작년에도 결혼가지고 뭐라하긴 했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진짜 올해들어서 장난이 아니야. 오늘도 눈 뜨자마자 하나부터 열까지 계속 걸고 넘어지는데, 살이 쪘네, 피부가 푸석하네, 머리가 그게 뭐냐, 옷은 또 그게 뭐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싹 다! 정말 돌아버리겠어!"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은데.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왠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지만 설마하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 잔소리 듣기 싫으면 결혼해!'라는 거 있지!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는 거야!!"

이것은 데자뷰.
내 앞에 앉아 있는 게 사미야 어제의 나야?

이쯤되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노처녀 딸 못 살게 구는 법'이라는 단체교육이라도 받으신 걸까?
이렇게 하니 딸이 시집가더라는 비법서라도 파는 걸까?
만약에 그런 몹쓸 사교육장이 존재한다면 악의 축으로 규정짓고 김정은에게 그 건물을 폭파시켜달라고 할 테다!

사미랑 의기투합해서 구받 받는 노처녀 딸의 설움을 대폭발시키는데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잠깐.
나야 서른 여섯이니 그렇다치고 얘는 아직 어리잖아! 사미는 올해로 서른인걸!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에 해당되는 나이라고!
근데 나랑 일심동체 돼서 이러고 있는 건 이상하잖아!

"아빠다"

사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님? 뭐라셔?"

"엄청 긴 글이 왔어. 언니 같이 볼래?"

 

사랑하는 우리 딸, 사미야.
아침에 엄마 때문에 많이 속상했지?
왜 아침부터 애를 달달 볶냐고
아빠가 엄마한테 한 마디했다.
결혼문제는 우리 예쁜 딸 사미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아빠는 믿는다.
다만, 엄마는 네가 나이도 있다보니
걱정이 돼서 그러신가 보다.
우리 착한 딸이니까,
그런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그러니 서두르진 말되,
슬슬 시집 갈 생각을 하렴.
-아빠가

 

 

 ......

사미야.
언니가 그동안 넌 아직 애기라고
노처녀되려면 멀었다고 무시해서 미안했다.

노처녀는 나이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필링(feeling)으로 결정된다는 걸 잊고 있었어.
그렇지.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언니는 집에서 늦잠꾸러기로 통한다.
친구들 사이에선 아침형인간이거든.
평일엔 7시 반에 일어나고 주말엔 8시면 일어나는데
맨날 잠이 많아 큰일이래.
우리가 농사 짓는 집도 아닌데 말이야.
근데 그게 또 결혼이랑 이어져요.
낳지도 않은 애까지 등장한다니까?

더 말 안해도 그런 느낌적인 느낌, 알지?
'기승전결혼'
그거지 뭐.

에휴...
우리 핫초코 한 잔씩 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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