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들은 노처녀 친구얘기다. 치매 걸린 할머니 병문안을 갔는데, 할머니가 친구를 보자마자 손을 덥썩 부여잡고 "아이고, 우리 손녀가아, 우리 손녀가아..." 를 무한 반복하시며 그렇게 우셨다고 한다. 바쁘다고 통 병문안을 가지 못 했던 친구는 마음이 짠해졌다.

 

 '할머니가 그간 혼자서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스스로를 반성하며 울지 마시라고, 더 자주 찾아뵙겠다고 할머니를 다독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더욱 구슬프게 울며 말했다.

 

"아이고야, 이래 살다 죽으면 억울해서 우짜노... 우리 손녀 처녀귀신 되면 우짤꼬..."

 

웃픈 일화이긴 하지만,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노처녀'라고 하면 그렇게들 안쓰럽게 본다. '연애를 못 하고 독수공방하는 외로운 여자' 라는 선입견 때문이리라. 노처녀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노처녀는 으레 사랑에 목마르고 몸이 안달이나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겉으론 아닌 척 해도) 여자로 다루어지곤 한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노처녀라면 다 그런 줄 알고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수 쓰는 남자다. 이런 남자들은 노처녀 알기를 우습게 알아서 조금만 잘해주면 홀랑 넘어올 거라 착각하고는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치며 들이댄다. 그런 개수작에 넘어갈 거였으면 이날 이때까지 노처녀로 남아있지도 않았다는 걸 왜 모를까.

 

우선 '노처녀=건어물녀'라는 인식부터 바꿔야한다. 연애세포가 바싹 말라 버려서 연애를 포기한 여자를 '건어물녀'라고 한다는데, 단언컨데, '노처녀=건어물녀' 는 절대 아니다!

1년 365일 내내 활발히 사랑 중인 노처녀들도 있다. 나 역시 남자친구가 있다. 문어발인 노처녀도 봤다. 썸을 타든 연애를 하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기도 한다.

물론 모태쏠로인 노처녀도 있고 건어물녀도 있다. 하지만 소위 '건어물녀'라고 하더라도 외롭고 불쌍한 여자라고 보는 건 착각이다. 건어물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일본 만화 '호타루의 빛'의 주인공 '아메미야 호타루'도 연애를 못 하는 여자가 아니라 연애생각이 없는 여자다(연애하기로 작정하고 난 뒤에는 심지어 양다리까지 걸친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에 쩔어서 집에 돌아온 뒤에는 아무에게도 일절 간섭받지 않고 가장 편한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뒹굴면서 가장 좋아하는 책과 TV를, 가장 사랑하는 맥주와 건어물안주를 먹으며 보는 게 행복의 극치라 표현한다.

결혼했다고 해서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니듯, 노처녀라고 해서 '홀로 외로이 삭막하게 지내다가 우울증으로 고독사했습니다'는 아닌 것이다. '사랑 밖엔 난 몰라'인 노처녀도 있고, '사랑 따윈 필요 없어'인 노처녀도 있고, '사랑,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노처녀도 있는 법이다.

유부녀들이 가끔 그런 질문을 한다. 외롭지 않느냐고. 물론 노처녀에게도 외로운 밤이 있다. 지독한 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엔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었다. 둘인데도 하나인 것만 못했던 때가 가장 고독했다.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고, 사랑을 안 해도 웃기도 하고, 우리 노처녀들은 이렇게 희노애락을 느끼며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러니 처녀귀신될까 걱정마세요, 할머니. 사실 할머니 손녀 딸은 실버타운 들어가서도 섹시한 할아버지랑 눈 맞아서 꽁냥꽁냥 아주 자알~ 지낼 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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