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기까지에도 - 지쳐 있는 당신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윤문원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살아가면서 실패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 절망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 눈물 한번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꽃이 피기까지에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책을 읽을때면 책소개글도 한번 훑어보고, 서점에서 목차도 한번 훑어보고,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살펴보곤 한다. 어느정도 윤곽선이 보이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꽃이 피기까지에도」를 보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기도 했던 '독자들에게'라는 시작부분은 '나는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로 시작한다. 고민하는 당신, 시련의 터널 속에서 헤매이는 당신, 고통에 힘겨워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모진 시련을 겪은 저자 본인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고백하는 글이 왜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았다. 마치 나를 위해서 쓴 책인것 같아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지만 누구라도 살아온 인생의 시간에 상관없이 고민을 안고 살것이다. 고3 때 대입이란 벽 앞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울고, 힘들었던가.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 고비란것도 나중에 겪은 여러 고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초등학교때조차 잘 풀리지 않는 친구문제로 머리 아프게 고민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 타인의 입장에선 별것도 아닌 문제들이지만 당사자에겐 지금 처한 그 상황이 가장 풀기 힘든 난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스트레스가 우울증으로, 자살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생각하면 가볍게 웃어 넘길수만도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것이 힘든걸까?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닐텐데 똑같은 처지라도 왜 저 사람은 잘 되고, 나는 이모양인걸까? 그런 생각도 들곤 한다. 「꽃이 피기까지에도」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지침서 같은 책이다. 솔직히 나는 에세이라든가, 자기계발서적은 읽기 전부터 조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전부 옳은말만 하잖아. 도덕책에 나오는 그런 말을 누가 못할까? 나도 몰라서 안하는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피기까지에도」를 시간을 들여 정독했다. 스트레이트로 '화이팅!'을 외치는것이 아닌데도 문장 하나하나에서 힘내라고 말하는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삶에 장애물이 나타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장벽이 서 있는 것은 가로막거나 내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장벽은 그것을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은 찾아오지 않는다. 벽은 오직 뛰어 넘기 위해 있을 뿐이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구름판을 준비하는 것이다. (p. 186 中)

 

 성공의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수많은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더 강해진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좋은 글귀들과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돌이켜보니 나는 정면으로 그 위기에 맞서 싸워본적이 없는 것 같다. 제2의 선택지를 골라 우회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고 잘 헤쳐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꽃이 피기까지에도」속에서 언급된 닉 부이치치나 도스토예프스키, 링컨, 베토벤... 모두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사람들이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많이 본 사람들의 일화는 몇번을 들어도 참 존경스러울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내가 위인전에 나올법한 대단한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부정도 습관이 되는 모양이다. 이러니까 안돼, 그건 안될거야, 해보나마나야 라는 생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를 하는 마인드를 버리고 긍정적으로 살도록 노력한다면 내 앞에 있는 벽도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 
 

 불행을 치유하는 약, 그것은 희망 이외에는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어제를 되돌아보며 '어째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라는 후회로 살지 말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어진 순간순간을 마지막처럼 살았기 때무에 오늘날 대문호로 이름을 날렸다. 과거에 발목을 잡혀 오늘 한발작도 나아가지 못하는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생각이 문들 들었다. 「꽃이 피기까지에도」를 읽기 전과 읽은 다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역시 마음가짐인것 같다. 하루아침에 부정적인 모든 생각들을 떨쳐버릴 순 없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새는 무거운 날개를 달고 살아간다. 그 날개 덕분에 날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돛단배의 돛이 아무리 무거워도 떼지 않는다. 돛이 있어야 배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추시계에서 추가 무겁다고 해서 떼어버리면 그 시계는 멈추고 말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짐은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중략)... 커피에는 특유의 쓴맛이 있다. 커피에 쓴맛이 없으면 커피가 아니다. 삶도 다를 바 없다. 삶에서 시련이라는 쓴맛의 과정이 없으면, 그 뒤에 오는 달콤하고 오묘한 행복의 뒷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p. 21~2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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