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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히 정교하게 사람과 사람이 얽힌 소설이었다 '모방범' 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소설 1권을 집어들었을 때부터 범죄를 모방한 모방범죄에 대해 다루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작부터 추리에 들어간 소설이다. 다만, 책 한권당 600페이지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이라 한 호흡으로 잘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방범」은 손을 댄 순간부터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광적인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방범」은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상당히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 사건에 관계한 각 인물들의 입장이 나타나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만큼 잔인하고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발견한 사람,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 범인을 쫓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수 많은 대중과 언론이 마치 현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황폐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실력이 뛰어난 탐정이나 형사가 범인이 만들어 놓은 알리바이나 트릭을 풀고 유쾌하게 범인을 체포하는 추리 소설이 아니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범죄소설이라고 보는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모방범」은 여성 연속살인사건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뼈대에 작게는 쓰카다 신이치와 히구치 메구미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으로 만나는 사건까지 곁들이고 있다. 처음 1권을 읽을 때는 '누가 범인일까?' 라는 의문에 모든 등장인물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쓰카다 신이치와 히구치 메구미 역시 처음엔 이 연속살인사건의 범인이 되지 않을까, 피해자가 되진 않을까 하는 어설픈 추리도 해보았으나 「모방범」의 인물설정은 그렇게 반전을 기대할만큼의 극적인 연출은 하지 않았다. 신이치는 연속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해를 발견한 목격자로, 메구미는 신이치의 가족을 죽인 살인범의 억지스러운 딸이라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누가 범인인지를 추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트릭을 사용했을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방범」이라는 소설 속에서 이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에 대한 르포를 쓰기 시작한 시게코의 말처럼 어떤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범죄를 일으키는지, 그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어둠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포인트가 아니었을까?
확실히 현대사회에 와서 연속살인사건같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유란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현대의 범죄는 동기를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다. '그냥' 이라는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내면의 어둠이란 무엇인지 새삼스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게도 그런 어둠이 있겠지. 어떻게 생겨난 어둠이든, 그 크기가 어느정도이든, 그것을 다스릴 수 없는 순간 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기도 했다.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생각지도 않게 가장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죽여놓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못하고 초연한 범인을 보면서 사람이 정말 무서운 존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추리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이 있었고, 그 때문에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었지만 「모방범」안에서 다뤄지는 사건은 단순히 '흥미진진했다.'라는 말로는 끝낼 수 없었다. 그 사건 때문에 다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끔찍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서 마음이 아팠고, 그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느꼈을 불안과 고통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정도로 눈물겨웠다. 마치 내가 그 상황에 처한것 같았고, 내 가족이 그 처지에 놓인 것같은 불편한 감정이입이 되는 소설이었다.
소설의 2권에서 신이치와 그의 여자친구인 히사미의 대화 중에 범죄를 문장으로 만들고 분석하고, 해명하는 것이 마치 인수분해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이 있다. 범죄에 대한 글들이 마치 범인을 비난하고 분노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비참함을 나타내고 결국 나쁜 것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며 그런 범죄사건의 뒤에는 불쌍한 '인간' 만이 남는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히사미의 이 말은 마치 저자인 미야베 미유키를 향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미야베 미유키는 히사미의 말처럼 「모방범」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엮인 이 사건을 잘게 인수분해 해놓았다. 피해자라는 이유로 피해자만 동정받지 못하게 하고, 가해자라서 가해자만을 욕하지 못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두번째 불편함이다. 정말 누구 한편만 욕할 수 없어서 그 분함이 내 가슴 속에 쌓인 탓이다. 다만, 진범X에 한해서는 앞서 말한 '인수분해'가 살짝 비껴간 느낌을 받아야 했다. 범죄자들을 위해 변명을 할 생각이었다면 진범X의 입장에서도 좀 더 자세히 어필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진범X의 이야기는 가슴에 와닿을만큼 절실한 무언가가 없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 때문에 진범X를 향해야 할 분노가 애꿎은 사람들을 향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잘 만들어진 범인보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기적인 입장을 보이는 히구치 메구미나 마에하타 시게코가 더 얄밉게 보일 정도였다.
범인과 사건이 백일하에 들어나고 일단 종결되어진 것처럼 보여진 「모방범」의 연속살인사건이지만 이 연속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 아리마 요시오의 말처럼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범인이 잡혔어도 그 범인이 만든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안타까운 결말이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런 상상은 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내 가족이 살해당할거라고 말이다. 나 역시 「모방범」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상상하는것조차, 머리에 떠올리는 것조차 죄스러운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제 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범인을 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에너지보다 슬픔의 에너지가 더 강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이면서, 가장 나약하고 슬픈 존재다.
인간 내면의 어둠이 무엇이든간에 내가 「모방범」을 읽고 느낀것은 그저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의 무서운 범죄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무서워 하는 이야기가 아닌 서로 보듬고 아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