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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히 정교하게 사람과 사람이 얽힌 소설이었다 '모방범' 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소설 1권을 집어들었을 때부터 범죄를 모방한 모방범죄에 대해 다루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작부터 추리에 들어간 소설이다. 다만, 책 한권당 600페이지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이라 한 호흡으로 잘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방범」은 손을 댄 순간부터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광적인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방범」은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상당히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 사건에 관계한 각 인물들의 입장이 나타나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만큼 잔인하고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발견한 사람,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 범인을 쫓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수 많은 대중과 언론이 마치 현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황폐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실력이 뛰어난 탐정이나 형사가 범인이 만들어 놓은 알리바이나 트릭을 풀고 유쾌하게 범인을 체포하는 추리 소설이 아니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범죄소설이라고 보는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모방범」은 여성 연속살인사건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뼈대에 작게는 쓰카다 신이치와 히구치 메구미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으로 만나는 사건까지 곁들이고 있다. 처음 1권을 읽을 때는 '누가 범인일까?' 라는 의문에 모든 등장인물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쓰카다 신이치와 히구치 메구미 역시 처음엔 이 연속살인사건의 범인이 되지 않을까, 피해자가 되진 않을까 하는 어설픈 추리도 해보았으나 「모방범」의 인물설정은 그렇게 반전을 기대할만큼의 극적인 연출은 하지 않았다. 신이치는 연속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해를 발견한 목격자로, 메구미는 신이치의 가족을 죽인 살인범의 억지스러운 딸이라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누가 범인인지를 추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트릭을 사용했을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방범」이라는 소설 속에서 이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에 대한 르포를 쓰기 시작한 시게코의 말처럼 어떤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범죄를 일으키는지, 그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어둠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포인트가 아니었을까?

 확실히 현대사회에 와서 연속살인사건같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유란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현대의 범죄는 동기를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다. '그냥' 이라는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내면의 어둠이란 무엇인지 새삼스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게도 그런 어둠이 있겠지. 어떻게 생겨난 어둠이든, 그 크기가 어느정도이든, 그것을 다스릴 수 없는 순간 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기도 했다.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생각지도 않게 가장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죽여놓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못하고 초연한 범인을 보면서 사람이 정말 무서운 존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추리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이 있었고, 그 때문에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었지만 「모방범」안에서 다뤄지는 사건은 단순히 '흥미진진했다.'라는 말로는 끝낼 수 없었다. 그 사건 때문에 다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끔찍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서 마음이 아팠고, 그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느꼈을 불안과 고통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정도로 눈물겨웠다. 마치 내가 그 상황에 처한것 같았고, 내 가족이 그 처지에 놓인 것같은 불편한 감정이입이 되는 소설이었다.

 

 소설의 2권에서 신이치와 그의 여자친구인 히사미의 대화 중에 범죄를 문장으로 만들고 분석하고, 해명하는 것이 마치 인수분해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이 있다. 범죄에 대한 글들이 마치 범인을 비난하고 분노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비참함을 나타내고 결국 나쁜 것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며 그런 범죄사건의 뒤에는  불쌍한 '인간' 만이 남는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히사미의 이 말은 마치 저자인 미야베 미유키를 향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미야베 미유키는 히사미의 말처럼 「모방범」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엮인 이 사건을 잘게 인수분해 해놓았다. 피해자라는 이유로 피해자만 동정받지 못하게 하고, 가해자라서 가해자만을 욕하지 못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두번째 불편함이다. 정말 누구 한편만 욕할 수 없어서 그 분함이 내 가슴 속에 쌓인 탓이다. 다만, 진범X에 한해서는 앞서 말한 '인수분해'가 살짝 비껴간 느낌을 받아야 했다. 범죄자들을 위해 변명을 할 생각이었다면 진범X의 입장에서도 좀 더 자세히 어필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진범X의 이야기는 가슴에 와닿을만큼 절실한 무언가가 없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 때문에 진범X를 향해야 할 분노가 애꿎은 사람들을 향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잘 만들어진 범인보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기적인 입장을 보이는 히구치 메구미나 마에하타 시게코가 더 얄밉게 보일 정도였다. 


 범인과 사건이 백일하에 들어나고 일단 종결되어진 것처럼 보여진 「모방범」의 연속살인사건이지만 이 연속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 아리마 요시오의 말처럼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범인이 잡혔어도 그 범인이 만든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안타까운 결말이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런 상상은 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내 가족이 살해당할거라고 말이다. 나 역시 「모방범」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상상하는것조차, 머리에 떠올리는 것조차 죄스러운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제 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범인을 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에너지보다 슬픔의 에너지가 더 강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이면서, 가장 나약하고 슬픈 존재다.

 

 인간 내면의 어둠이 무엇이든간에 내가 「모방범」을 읽고 느낀것은 그저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의 무서운 범죄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무서워 하는 이야기가 아닌 서로 보듬고 아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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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보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7-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7
앤드루 테일러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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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서 말하는 '아메리칸 보이'란 과연 누구일까? 바로 에드거 앨런 포라는 소년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전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도 불리우는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를 무척 재밌게 읽은 나에게 있어 「아메리칸 보이」는 모처럼 현대적 고전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소설이 아닌, 에드거 앨런 포가 '등장' 하는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 그런지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과는 다른 정통 추리소설 특유의 섬세함과 빈티지한 분위기가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을 압도했다. 그 강한 흡입력으로 단숨에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메리칸 보이」 속에 등장하는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은 사건의 중심이라기 보다 조커같은 역할로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키가 되었던 것 같다. 저자는 이야기 속의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해 경첩의 축과 같다고 표현했다. 모든 일의 중심이 되며, 사건의 전환점마다 어김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아메리칸 보이」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토머스 쉴드다. 쉴드가 브랜스비 목사의 소개로 일하게 된 매너 하우스 학교에서 에드거 앨런 포와 첫만남을 가진 이후 사건의 전개와 함께 필요한 순간 적절한 등장과 조언을 한다.

 

 처음 책소개만 읽었을 때는 에드거 앨런 포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자전적 추리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주고 있었다. 예상을 깨는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쉴드가 매너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키는 일을 하며 앨런을 비롯해 그와 똑 닮은 소년 찰리가 등장하고, 찰리 프랜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프랜트 가(家)와 인연이 닿아 그 집을 오고가는 사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프랜트 가(家)와 카스월 가(家)의 뿌리깊은 증오의 역사, 때마침 등장하게 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생부, 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앵무새. 궁금증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통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라는 실존 인물이 소설 속에 나오기 때문인지 팩션인 것을 알면서도 묘한 현실성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메리칸 보이」를 다 읽고 난 뒤 그의 흔적을 검색해 보았다.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아메리칸 보이」가 그에 대한 꽤 사실적인 묘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입양되었다는 점이나 미국 출생이라는 점 등이 그러했다.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을 사이드로 배치하고 완전히 새로운 쉴드라는 인물을 중심에 배치해 1인칭 시점으로 긴박감 넘치게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가는 방식이 참 독특했던 것 같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묘사가 판을 치는 추리/미스테리 소설들의 홍수 속에서 모처럼 좋은 작품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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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틀리
알렉스 플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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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 많은 미녀와 야수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1991년 개봉한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 역시 그 영화를 보며 성장한 전세계 수많은 여자아이들 중 하나니까. 기본적인 플룻은 어떤 버전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마법에 걸려 야수로 변한 왕자는 마법의 성에 살고 있다. 야수가 돈 왕자는 21세 생일까지 진실한 사랑을 찾지 않으면 그에게 걸린 마법을 풀 수 없다. 그리고 그 야수와의 만남을 인도하듯 야수의 성에 침입한 남자와 그 남자의 딸. 아버지를 대신해 야수의 성에 남은 미녀는 야수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야수는 마녀의 저주가 풀려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해피엔딩을 맞는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말'은 참 쉽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 말을 고스란히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누구라도 겉모습에 현혹될 것이고, 그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래왔지만 외모지상주의에 기인한 수 많은 사건고 이야기의 역사는 뿌리깊고 길다. 못생기고, 흉칙한 공주나 왕자가 등장하는 동화를 본적 있는가? 만약 있더라도 그 겉모습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주인공은 없다. 그러한 겉모습을 갖게 되는 것은 항상 마녀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동화 속 저주란 풀리기 마련이라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마지막엔 항상 아름답다. 끝까지 개구리거나 끝까지 야수인 왕자를 사랑하는 공주와 미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결말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곤 한다. 

 

 현대판 <미녀와 야수>를 지향하는 「비스틀리」. 영화가 개봉되어 예고편을 보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본적인 베이스가 똑같기 때문에 잘생긴 남자가 야수가 될 것이고, 그를 사랑하는 소녀가 나타날 것이고, 그 두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날거란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비스틀리」를 읽기 전 기대한 부분은 그런 줄거리가 아니라 현대판 미녀와 현대판 야수라는 캐릭터들과 그들이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과 그 전개방식이었다.

 

 오만하고,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열여섯의 카일 킹스버리. 이름마저도 잘생긴 이 남자가 어느 날 야수가 되어버린 뒤 겪게 되는 사건과 사고, 야수가 된 이후 변해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느끼지 못한 야수의 갈등이라든가, 고독이 열여섯이라는 주인공의 나이에 어울리게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배려심 깊은 사람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닥친 불행한 시련을 거부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진정한 사랑에 눈 뜨는 카일이 마음에 들었다. 여 주인공인 린다는 미녀라고 하기엔 평범한 소녀지만 불행한 가정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면서 카일의 야수같은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상냥함을 찾는 똑똑하고 슬기로운 캐릭터였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마녀의 저주가 풀리기까지 그다지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지만 큰 모순이나 억지 없이 현대적인 재해석을 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람들은 외모에 대해서 그렇게 법석을 떠는데, 한동안 상대를 알고 지내고 나면

그 다음엔 더 이상 외모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게 되거든. 안그래?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얼굴일 뿐이야."

<p. 212 中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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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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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주택가 히바리가오카 다카하시 가(家)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다카하시 가족을 중심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참 인상적인 소설이다. 사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다카하시 가족의 이야기보다 그 이웃에 살고 있는 엔도 가족의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웃 가정에서 일어난 존속살인에 가려져  다른 이웃 가정의 어둠이 겉으로 표출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만약 사건이 발생한다면 '다카하시 가족' 이 아니라 '엔도 가족' 일거라는 책속 누군가의 말에 나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엔도 가족은 문제가 많은 가정이었다. 다카하시 가족과 엔도 가족의 교차 전개방식 속에서 타트를 끊은것이 엔도 가족이었기 때문에 그 인상이 강했던 것도 있고, 이미 상황이 종료된 다카하시 가족보다 현재 진행중에 있는 엔도 가족의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머니를 향해 망할 할망구라고 부르는 엔도 아야카. 학교에서와 집에서의 태도가 확연히 다른 아야카의 집에서의 만행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사춘기를 이런식으로 나는건지, 단순한 부모에의 반항인지 어느쪽이건간에 그런식으로 불만을 드러내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나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는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아야카가 삐뚫어졌는지 그 내막도 서서히 밝혀졌지만 히스테리밖에 부릴줄 모르는 중학생 여자애의 행동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릴수밖에 없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아야카의 어머니 마유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마유미도 아야카와 마찬가지로 공감을 할 수 있거나 동정이 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두 모녀의 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자이고, 가해자였다.  어쩌면 그런 관계가 현실 속에서도 꽤 많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 오히려 그런 관계가 현실적인지도 모른다. 사실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악당이고,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피해자일 순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일어나는 집과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집은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 싸움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는가. 가족이니까, 편하니까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수도 있는 것이고, 짜증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족을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미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 결혼이나 가정에 대한 동경, 환상이 있다. '나중에 결혼하면 이런 가정을 만들어야지.'라든가, '내 배우자나 자식은 이랬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림같은 커플들을 보면 그런 기대가 더 없이 커진다. 가족간에 느끼는 피해의식과 보상의식, 경쟁의식, 기대감의 고조나 강요가 가져오는 피폐함이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행복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이상적인 그림작품 같았던 다카하시 가(家)의 살인사건은 화려한 과거가 있었던 것도, 불순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람이 죽은 마당에 대단하지 않은 사건이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명백한 타인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그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만큼 사소하고, 단순한 것이었다. 어디에서 살의를 느꼈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동기. 다카하시 히로유키를 죽였다고 자백한 다카하시 쥰코를 보면서 이집트 왕 프사메니투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프사메니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지고 포로가 된다.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는 이 포로에게 최대의 굴욕을 주기 위해 페르시아 군대가 승리 행진을 하는 길가에 그를 세워둔다. 프사메니투스는 자기 딸이 노예가 되어 물항아리를 들고 우물로 끌려가는 장면을 보아야 하고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것도 자기 눈으로 목격해야 한다. 잡혀온 이집트인들은 대성통곡한다. 그러나 프사메니투스는 돌처럼 꼼짝 않고 서서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집트인 포로들의 마지막 행렬에서 그는 자기를 모시던 나이 많은 시종 하나가 남루의 모습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 시종을 보는 순간, 프사메니투스는 통곡하기 시작한다. 딸과 아들의 굴욕 앞에 미동도 않던 왕이 어째서 늙은 시종의 운명 앞에서 무너졌을까? 그것은 늙은 시종을 더 각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등장한 시종의 모습이 방아쇠가 되어 왕의 가슴 속에 담긴 끝 모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흘러넘친것이리라.

 

 다카하시 쥰코도 엔도 마유미와 아야카도 한계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별것도 아닌 무언가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것. '가족' , '집'이라는 테두리가  안식처가 아닌 족쇄로 작용한 것 같아 씁쓸했다. 「야행관람차」는 살인사건 이후 범인을 쫓는 범죄/추리소설이 아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 역시 사건 발생 후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 주변인들의 상황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되집어 가는 방식을 쓰고 있다. 덕분에 다양한 접근을 통해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 사회 뿐 아니라 핵가족화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암적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앞으로 한 가정이 불행한 이야기보다 행복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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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제왕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통지아위 지음, 정우석 옮김 / 꾸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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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기디데스는 역사를 "이미 일어난 일들과 인간사의 속성상 언젠가 똑같게 또는 유사한 방식으로 다시 일어날 일들에 관하여 명백한진리를 얻기 원하는 자들이 나의 글을 유일하다가 판단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록된 역사란 바로 그런것이 아닐까? 당시대적 의미를 가지며 후세에게까지 영향려을 작용시켜 지속적인 의미를 갖는 것 말이다. '역사' 를 논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왕조라고 생각한다. 어떤왕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역사 흐름이 달라진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한 국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고, 또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와 '제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존재인것이다.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제왕」속의 100명의 왕들은 과거 오천 년간, 그리고 앞으로 또 오천년 이상 그 이름을 떨칠 위인들이다. 너무 유명해서 굳이 책을 통해 확인할 것도 없는 왕들도 있었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왕들도 있었다. 함무라비, 다윗왕,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람세스2세, 이성계, 헨리8세, 루이14세, 강희, 마리아 테레지아... 그들의 업적을 모르더라도 이름은 알고 있다. 100명의 제왕 이름이 목차로 주욱 나열되어 있어서 우선 관심이 가는 제왕들의 이야기부터 찾아 읽었다. 기원전 3100년 이집트의 메네스를 시작으로 1953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이븐 사우드까지 연대별로 왕들을 기록해놓았지만 사건의 개연성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익숙한 이름부터 찾아 읽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집트나 로마, 영국, 프랑스의 왕들에 대해서는 그동안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조금이나마 사전지식이 있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당연스레 포함시켜 놓았어던 제왕들의 기록을 간추려 읽는것도 사뭇 즐거웠다. 이미 영화나 책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나폴레옹이나 빅토리아 여왕, 카이사르는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올정도로 친근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 때문에 2~3장 정도로 제왕들의 생애나 업적만을 압축해놓은 분량이 아쉽게 느껴졌다. 익숙한 이름들만큼이나 익숙하지 못한 제왕들과의 만남은 더욱 흥미로웠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신바빌로니아왕국의 국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였다. '바벨탑'과 '공중정원'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것을 세운 왕의 이름은 처음 듣는것 같았다.

 

 그 외에도 인도 마우리아앙조의 아소카왕, 스페인 나바라의 산초 가르세스 3세, 덴마크의 하랄1세, 비잔틴제국의 바실리우스2세, 티무르제국의 티무르, 오스만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대제, 태국 방콕옹조 출라롱코 국왕등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세계의 수많은 역사 속에 등장했던 왕조의 제왕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알차고 유익했던 것 같다.

 

 



 

Louis XIV

프랑스 부르봉왕조 국왕

1638~1715년

 

짐이 곧 국가이다. 국왕의 위대함과 존엄을 구성하는 것은  

수중이 권력 봉이 아니라 권력 봉을 쥐는 방법에 있다.

오직 군주만이 생각하고, 결정할 권력이 있고 다른 사람은 집행할 의무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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