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서재지기 > 2005년 "꼭 한번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아래 페이퍼들은 11월29일부터 12월12일까지, 알라딘 서재 주인장님들이 2005년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 음반, DVD 페이퍼 쓰기 이벤트를 통해 접수된 페이퍼들입니다.

많은 서재 주인장님들이 참여를 해주셨고, 추천 내용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추천 페이퍼 카테고리가 되었습니다. 지기서재에 영구 보존할 카테고리로....

2005년에 이 책, 음반, DVD를 추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들만 모았으니, 페이퍼를 유심히 읽어봐주세요~

알라딘 여행의 귀중한 지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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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zipge > 재스퍼 포드의 매혹적인 발상―문학 텍스트와의 직접적인 만남
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제인 에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만으로 나의 시선을 확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주인공은 문학 관련 범죄를 담당하는 특수작전망(리테라텍)에서 수사관으로 일하는 ‘서즈데이 넥스트’이지만, 나는 줄곧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재스퍼 포드의 소설 안에서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을 것인지에 관심을 두었다.

내가 어렸을 때 맨 처음 읽은 사랑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연인의 사랑을 비중 있게 다룬 소설들 중에서 《제인 에어》와 같은 고품격 연애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마음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는지 지켜보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여전히 설렌다. 이 책에서는 로체스터에게 미치광이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인이 떠나는 것을 끝으로 샬럿 브론테가 《제인 에어》의 결말을 지었다는 가정하에 전개된다.

서즈데이 넥스트가 리테라텍에서 활약하는 시기는 1980년대 영국으로 시간의 틈이 벌어져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이 소설 속 1980년대는 우리 세대가 경험한 상식적인 시간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 현실, 허구가 혼재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에 광적으로 열광하고 유명 작가들의 초판본과 유명 화가들의 원화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당연히 이것들을 둘러싼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한 시간적 배경 속에서 《제인 에어》 초판본은 도덕적 양심이라곤 전혀 없는 악당 아케론 하데스에 의해 도난당한다. 이미 찰스 디킨스의 《마틴 처즐윗》 초판본을 훔쳐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살해한 적이 있는 그는 끔찍하게도 《제인 에어》에서 제인을 납치한다. 1인칭주인공시점으로 씌어진 《제인 에어》에서 제인이 사라지면 《제인 에어》라는 소설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이제 현실의 모든 《제인 에어》는 제인이 납치당한 순간에서 일그러진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넥스트가 하데스에 대항하여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서 넥스트는 《제인 에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망쳐놓았다. 바로 로체스터와 제인의 감동적인 텔레파시 장면이다. 손필드의 화재로 두 눈이 먼 로체스터가 제인을 그리워하며 그녀를 목청껏 부른다. 그의 절절한 음성은 멀리 있는 그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재스퍼 포드는 이 부분에 넥스트가 영웅적으로(?) 참견하도록 내버려두어, 그녀를 로체스터와 제인의 ‘사랑의 전령사(?)’가 되도록 했다.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말은 모두 넥스트 덕분이라는 듯이…….

물론 그토록 낭만적인 장면이 넥스트의 무례한 개입과 제인의 어이없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재스퍼 포드의 설정임은 알고 있지만, 왠지 내밀한 곳에 숨겨두었던 ‘순수’를 훼손당한 것만 같아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다른 ‘넥스트 이야기’가 나온다면 주저 없이 살 것이다. 어쨌든 ‘문학 텍스트와의 완전한 교감과 직접적인 만남’이라는 재스퍼 포드의 매혹적인 발상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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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2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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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nnerist > 죽지 않으려 무신경해지는 남자, 눈물 흘리다.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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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나절부터였을거다. 목욕을 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던 게. 내 나이가 한자리였을때보다, 십대였을때보다는 나았지만, 무엇을 하던지간에 퍽퍽한 그림자가 내 하루하루에 조금씩은 걸쳐져있던 건 변하지는 않았기 ‹š문일거다. 살집 많은 편인 내 얼굴에 어둑어둑함까지 묻어나오는 꼬락서니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 빨래비누로 머리를 문질러 거품을 내어 화장실 거울을 마주보고서 박박 머리를 밀 때, 어색하게나마 엷게 웃음짓는 내 꼴이 우스워 웃음의 골이 점점 깊어갔다. 결국 바가지에 물을 떠 머리에 부을 때 이 우스운 꼬락서니에 폭소를 터뜨렸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내 얼굴의 그늘은 사라져갔다. 벌거벗고 우스운 짓거리를 하던 스무살 소년은, 느끼하다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인상 더럽단 소리는 듣지 않는 스물 일곱 청년이 되었다.

여기 현역시절 지지리 재수없는 사건이 드리운 지독한 트라우마의 그늘에 시달리는 남자가 하나 있다. 그는 매일매일을 괴로워하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내지 못하고 '그냥'하루하루 밀어낼 뿐이다. 아파하면서도 능동적으로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지도,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길이 있으니 걷고, 일이 있으니 한다. 삶에 대한 보람도, 희망도 없다. 그렇다고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져 하루하루 가라앉아 가는 것도 아니다. 800만가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야말로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이 지독하게 암울한 사나이가 가진 최악의 불행은 그 자신이 불행한지, 얼마나 마음이 망가져 있는지 모른다는 데, 알려하지 않는 데 있다.

읽는 내내 어거지로 웃는 연습을 해서 인상을 바꿔 낸 스물 일곱 먹은 청년과 이 중년의 남자를 겹쳐 생각했다. 어둠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 몸부림친다는데 있어서 둘은 별 차이가 없다. 하나는 그 반대 방향을 향해 어거지로 몸을 비튼다. 맘이 변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저 믿을 뿐이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한다고. 다른 하나는 그 방향의 모든 신경을 절단해 버린다. 자신이 가진 문제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무관심함으로 말이다. 그저 덮고 또 덮어서, 언젠가 무덤덤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후자의 바람은 적절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책장마다 사람들의 죽음이 넘쳐 흐른다. 칼로 난도질당하고, 전철에 몸을 던지며, 총에 맞고 강바닥에 몸을 던진다. 탁한 도시의 공기 속에 피냄새를 더 짙게 흩뿌리는 작자들의 사진잔치, 말잔치 속에 자신 반 발자욱 뒤에 따라붙은 죽음의 그림자를 잊거나, 차라리 덤덤해질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나보다. 그래서 이 남자, 어찌 보면 자신과 별 상관 없는 창녀의 죽음을 비정상적으로 쫓는다. 어리석다는걸, 바보짓이라는 걸 다른 사람도, 그 자신도 안다. 몸을 섞었다 하나 그 자신도 알고 있듯, '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대체 왜? 계속해서 자신이 고개 돌리려고 하는 죽음의 그림자와 간격을 벌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쫓는 게 아니었을까. 그러는 와중에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양아치의 다리를 분질러뜨리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의 가슴에 네 발의 총탄을 박아넣는다. 지독한 역설이다. 자신의 죽음을 잊기 위해 다른 이의 죽음을 쫓아가며, 그 와중에 자신의 죽음과 몇 번이나 손을 잡을 뻔 했다는 거.

잘 짜여진 '추리'소설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메튜가 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란 놈이 작가가 전혀 제시하지 않은 곳에서 대사 한 마디 치지 않는 인물이 사건의 열쇠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해결의 물꼬가 터지는 건 다소 생뚱맞다. 하지만 그런 거 다 필요없다. 어차피 이 '추리소설'의 강조점은 '추리'에 찍혀있는 게 아니라 '소설'에 찍혀있으니까. 자신의 죽음을 피해 타인의 죽음을 쫓으며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는 남자의 마음속을 파해치는 데 있으니까. 그래서다. 이 지독한 악순환을 끊고 다른 이들 앞에 서서, 자신에게 드리워진 어둑어둑한 그림자를 힘들게나마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는 알콜중독자입니다"라며 눈물흘리는 메튜의 모습에 가슴 먹먹해지면서도 웃어줘야 하는 이유가.

거울 마주하며 웃는 연습하는것 만으로 모든 게 변할 리 없다는 걸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자기 전 다시 방에 올라가 머리를 감으며 거울을 마주할 때, 습관적으로 또 웃음지을지 모르겠다. 머리 감을 때 화장실 거울을 마주하지 말아야겠다. 대신 자기 전 일기장 앞에 서서 펜을 들고, 정자로 또박또박 적어야겠다. 마침표 마저 찍지 못하고 눈물지을지 몰라도.

"내겐 문제가 있습니다."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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