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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 이탈리아 복원사의 매혹적인 회화 수업
이다(윤성희)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4월
평점 :
🔖프롤로그 : 우리의 인생도 하나의 작품
"천천히 가는 자가 건강하게 가고 멀리 간다."
이 이탈리아 속담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천천히, 오래 가야지.
무엇보다 건강하게.
그나저나 이 말이 이탈리아 복원사의 회하 수업의 프롤로그에 왜 등장하는 것일까?
낯선 타국에서 혼자 느리게 가는 저자 스스로에게 위로를 주는 말로 시작했지만,
천천히 멀리 가기는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도 적용되었다.
도통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는 그림들을 보며(이래서 서평도 늦어짐🥲)
요리보고 졸리보면서 한참을 머무르다 보니 프롤로그에서 만난 저자의 말이 떠올랐다.
🔖11p_ "만약 여러분이 수많은 미술 작품을 보았지만 작품 안에서 인간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작품을 보는 양을 줄이고 한 작품을 되도록 오래 보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작가들은 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단지 주제를 이해하도록 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문학을 공부하며 인간을 이해하고, 느끼고 보는 것에 대한 감각을 키운 후에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피에르 델라 프란체스카가 완벽한 원근법 공간을 그리기 위해 225장이나 되는 고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책을 모두 공부하고 그림을 그린 것처럼 말이죠."
와아... 이제 우리가 감상할 작품은 르네상스 미술이다! 인간에 대한 솔직한 기록. 이 책에는 인간의 특성을 주제로 13개 작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주제에 대한 역사적 기원, 화가의 삶, 그 시대의 생각 표현 방식 등을 천천히 살펴보자.
1. 지성 : 도나텔로 '다비드' 청동상
2. 사랑 : 마사초 '브랑카치 예배당 벽화'
3. 영혼 : 베아토 안젤리코 '수태고지'
4. 행복 : 필리포 리피 '리피나'
5. 이성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브레라 제단화'
6. 여성 : '비너스의 탄생'과 시모네타 베스푸치
7. 인문학 : 산드로 보티첼리 '봄'
8. 자연 :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9. 권력 : 안드레아 만테냐 '부부의 방'
10. 심리 : 안토넬로 다 메시나 '수태고지의 마리아'
11. 아름다움 : 라파엘로 산치오 '성모 마리아'
12. 불안 : 야코포 다 폰토르모 '그리스도의 매장'
13. 감각 : 틴토레토 '산 로코 회당 작품 시리즈'
📣급 질문 타임!!!
Q. 마음에 들어온 작품이나 화가가 있나요?
A. 마사초라는 화가를 새로이 알게 되었고 그의 연민어린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53p_ '천국에서 쫓가나는 아담과 이브'에서 마사초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쫓겨난 아담과 이브에게 공감합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탄하는 남과 여,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일지 상상한 마사초는 인간의 험난한 삶을 예고하듯 황량한 사막에 버려진 그들 뒤로 고독한 오후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198쪽에서 저자가 말하기를 '단지 그림 한 점일 뿐인데 한 작품을 두고 수많은 화가가 그 의미를 밝히려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봄'의 가치가 새롭게 보였'다고 한다. 나는 그런 감정을 이 책의 저자에게서 느꼈다. 그림 한 점을 두고 이렇게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글을 쓸 수 있는 해박함이 경이롭기 그지없다.
특히 안토넬로의 '수태고지의 마리아'라는 그림을 두고 그 속에 기하학이 담겨 있다느니, 마리아는 천사를 마주하고 성령 잉태를 예고받았지만 흐트러짐 없는 표정과 자세라느니, 그에 따라 마리아는 외유내강형 인간이라느니 해석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미 작품을 남긴 그들은 떠나고 없는데... 남겨진 자들의 아우성일 뿐이지만 나는 거기에 입하나 대지 못하는 입장이라 더 신기하게 여겨지는 모양이다.
🔖292p_ 안토넬로는 왜 우리가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지 그 의미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의 초상이란 앉아 있는 모습을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응시하는 시간이라고 말하죠. (...) 바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는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살고 있을까요?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자기 내면을 탐색하는 마리아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당신 자신을 탐색할 시간입니다."